촛불도 전진도 넘어선 새로운 실험으로
    2008년 08월 05일 04: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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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보신당 홈페이지 게시판이 ‘전진’ 문제로 소란스럽다. 이른바 ‘의견그룹’ 또는 ‘정치조직’인 전진이 내놓은 강령 문건 때문이다.

논의는 갑자기 나온 문건의 내용에 대한 소박한 질문에서 ‘전진’ 조직의 성격과 활동방식에 대한 찬반으로 발전하였고 어느덧 진보정치와 노동계급 중심성 문제,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기존 운동조직 비판과 새로운 진보정치의 가능성,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과 성격, 낡은 운동권 방식의 관행과 그 한계 비판 등의 묵직한 주제들로 크게 확대되었다.

‘당게 낭인’들 한가해진 것도 논의 활성화 원인

   
 ▲노중기 진보신당 정책위원장

어쨌든 풍부한 논쟁과 말의 성찬 속에 오랜만에 게시판에 정신을 빼앗기며 빠져들 수 있었다. 필자의 느낌으로 이런 소동은 꼭 ‘전진 문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봄 선거 이후 몇 달 동안 촛불집회로 시간을 내지 못했던 ‘당게 낭인’들이 최근 갑자기 한가해진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전진’이나 ‘전진 문건’은 의도치 않게 그들이 판을 벌일 수 있는 장을 제공해 버린 셈이다. 고로 굳이 따지자면 하나의 원인은 촛불인 셈이다. 물론 촛불로 인해 미뤄진 제2창당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참가 열기가 갑자기 분출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 촛불은 상당히 힘이 약화된 상황이다. 더불어 촛불에 대한 학술적, 운동적 평가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많은 논자들은 촛불로부터 우리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전망을 찾아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관점, 끈기 있는 비폭력 투쟁, 축제로서의 집회, 여러 가지 창발적 사고와 활동 등이 침체된 사회운동, 정치운동에 빛을 던지고 있다는 해석들이다. 척박한 우리의 정치 사회현실에서 갑자기 나타난 촛불은 과연 우리 운동의 희망인가?

촛불은 과연 우리의 희망인가?

촛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다수 해석들에 (부분적으로)동의하면서도 필자는 여전히 그 반대의 상념을 떨어버릴 수 없다. 즉 촛불은 질곡에 처한 우리 사회, 그리고 특히 운동 주체들의 위기 상황을 반영한 거울상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전방위 공세 속에서 운동 전체를 기획하고 통제할 정치적 중심이 부재한 우리 운동의 현실, 그리로 기존의 운동 중심이 조합주의적 한계와 낡은 실천 관행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패러디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낡은 관행, 협소한 경제주의와 패권주의에 매몰된 ‘민주노조운동’,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정치이념과 조합주의의 굴레에 묶인 이른바 ‘진보정치 세력’, 민주화의 주술에 빠진 제반 ‘시민사회운동’들의 무대책 무능력 상태를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촛불’도 그만큼 대책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진 문건이 문제가 된 것은 그것이 ‘촛불스럽지’ 못했던 것과 연관이 있다. 너무 ‘전진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촛불스럽거나 전진스럽거나 우리의 척박한 현실은 여전히 남아 있고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촛불을 제대로 평가하는 만큼 그 한계도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전진’의 문제 제기의 경우도 그 한계와 의의가 충분히 평가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촛불과 전진 양자의 의미와 한계를 충분히 되씹어보고 촛불도 전진도 아닌 새로운 정치 실험으로 나아가는 일, 그 일이 제2창당이 아닐까하는 막연하고 구름 잡는 상념을 지울 수 없다.

* 이 글은 주간 <진보신당> 6호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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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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