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감선거는 노명박의 독사과”
        2008년 07월 23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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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교육분권화를 저지할 때지 놀아날 때가 아니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분권화라는 몸통의 한 부분이다. 좋은 후보를 위해 운동하건 나쁜 후보를 위해 운동하건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손오공처럼, 분권화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15년간 분권화 정부를 경험했고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분권화의 ‘끝장’을 보려는 중이다. 노무현 정부가 남겨 놓고 간 유산이 교육감 직선제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받아 국가의 권한을 교육감에게 넘기는 방안, 즉 학교자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조합되면 각 지역별 직선에 의한 교육자치가 완성된다. 그것은 교육의 종말이 될 것이다.

       
     
     

    대통령과 싸우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먼저 정치적인 차원에서 보자. 자, 교육감 선거를 했다. 좋은 사람을 교육감으로 뽑았다. 우리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족, 불신이 사라질까?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초중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 안 하고, 0교시 안 하고, 야자 안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일류대를 ‘슴풍 슴풍’ 들어갈 때 나머지 국민들이 소외되는 한 한국인의 교육불만족은 영원하다. 잘 사는 집 애들이 공부 잘 하는 건 학교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설사 못 사는 집 애들이 일류대를 간다 해도 그렇다. 대학서열체제 승자독식구조에서 승자는 언제나 소수다. 그러므로 다수는 언제나 불만족스럽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육이 영원히 동네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감에겐 이 구조를 해체할 권한이 없다.

    노무현-이명박식 분권화 구조에서 교육감에겐 초중등교육을 말살할 권한은 있지만 살릴 권한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설명했듯이 한국 초중등교육은 대학입시에 종속된 신세이고, 입시경쟁을 초래하는 대학서열체제는 교육감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아무리 잘 해 봐야 현상유지다. 교육파탄엔 변함이 없다는 소리다.

    이 상황에서 직선 교육감이 생기면 국민 입장에선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교육불만족의 원흉이 대통령인가, 교육감인가? 행여 전교조가 미는 ‘좋은 후보’가 당선되기라도 하면, 그때부턴 전교조가 불만족의 표적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와 비슷한 일을 이미 당했었다. 민생파탄에 대한 국민의 불만족이 좌파 빨갱이 때문이라는 황당한 선동이 먹힌 것은, 국민이 보기에 좌파가 민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었다.

    더 중대한 함정은 권리를 찢어놓으면 최종 책임주체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 숭례문이 불탔을 때 도대체 어디에 책임이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교육이 불탔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 된다. 일부는 교육감을 원망하고 일부는 대통령을 원망하고 일부는 전교조를 원망하다 결국 불탄 잔해만 남는다.

    한국인이 관심 갖는 선거는 대선이 유일하다. 국회의원 선거에도 꽤 관심을 갖는다. 광역지자체장? 여기서부터 조금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그 외 선거들에는 관심도 없고 관심 가질 시간도 없다. 자기 동네 구의원, 시의원이 누군지 아는 사람 못 봤다. 나도 모른다.

    대선은 전 국민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공공적 민주적 이해가 결집된 바람선거가 가능하다. 잘게 쪼개진 선거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조직선거로 결판나기 쉽다. 즉 한국에선 대선이 가장 민주적이고 세부단위 선거일 수록 봉건적이다. 교육감이 아닌 대통령과 끝장을 봐야 한다.

    각 지역별로 직선 교육감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중구난방으로 당선돼 국가적 책임주체가 사라지면 ‘콩가루 판세’가 된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때는 촛불집회라도 할 수 있지만 각 지역 교육감과 줄다리기할 때는 일부 운동권만 쓸쓸히 기자회견하게 된다.

    모든 불만족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덮어씌우고 국민적 바람몰이로 결판내는 것이 가장 유리한 방법이다. 분권화는 이 바람을 잘게 쪼개 미풍으로 만든다. 교육감들과의 싸움으로 솔솔 바람 빼는 방식이 아닌, 불만의 에너지를 증폭시켜 청와대에 터뜨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광장에 모일 수 있다.

    지역간 경쟁 초래하는 수요자요구를 분쇄해야

    이젠 본질적인 차원에서 보자. 우리나라에 절대로 지역주민의 손을 타선 안 되는 분야가 두 개 있다. 바로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역주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가 두 개 있다. 바로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이다.

    지역민심은 이 두 가지 이슈에 ‘환장’한다. 지난 총선 때 모든 후보들이 저마다 자기 동네 부동산, 교육 발전시키겠다며 환장한 민초들에 영합했다. 오죽했으면 진보신당마저도 교육특구라는 말을 써야만 했을까? 범국민적으로 미쳐 있는 상황이다.

    교육분권화는 미친 상황을 미치고 환장할 상황으로 만든다. 직선제는 주민들의 ‘광기’가 지역 교육에 압력으로 작용할 통로가 된다. 이때의 주민은 공화국의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서의 교육수요자다.

    이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 지역의 학교가 다른 지역보다 성적이 잘 나오는 우수학교가 되는 것이다. 각 지역이 부동산 정책을 결정하면 난개발경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런 수요자들의 요구가 교육정책에 반영되면 성적경쟁이 가중된다.

    지역 단위 교육수요자들의 요구를 ‘분쇄’하는 것이 한국에서 교육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다르게 생각한다. 노명박 정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수요자 중심주의’다. 그것은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로 나타난다. 교육감 직선제는 수요자의 선택권을 극대화하는 방편중의 하나다. 선택권 극대화를 다른 말로 하면 ‘시장화’가 된다. 즉,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시장화 패키지의 한 구성품이다.

    소외지역, 소외서민 죽이는 독사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율 뒤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필연적으로 교육감과 교육청의 자율성을 확대한다. 그에 따라 지역별 책무성이 커지면 결국 각 지역의 교육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보고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좋아한다면 노무현식 신선놀음이다.

    이건 지역으로 보면 소외지역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각 지역이 독립하게 되면 서울 부자들이 호남교육비를 보조해줄 이유가 없어진다. 있는 지역의 교육은 유복하게 되고, 없는 동네는 가난한 교육을 하게 된다. 서울-수도권-영남대도시 지역 아이들만 OECD 회원국다운 교육을 받고 나머지 지역은 소외될 것이다.

    분권화가 세분화되면 결국엔 서울 강남, 목동, 경기도 분당, 과천 등 중상층 밀집지역의 학교들만 승천하게 된다. 이런 지역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일반적인 농어민-노동자-영세자영업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교육감 직선제-교육분권화는 계층 차원에서 보면 서민차별정책이 된다.

    잘 사는 지역은 잘 사는 지역대로 자기 교육감 뽑고, 없는 동네는 없는 대로 자기 교육감 뽑아서 각자 자율적으로 잘해보는 나라의 공교육 붕괴는 필연이다. 마치 민주주의의 진전인 것 같은 외피의 교육감 직선제는 노무현의 독사과다. 달콤한 듯하나 그 안엔 독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이 추진하는 학교자율화의 짝일 뿐이다. 노무현이 토스하고 이명박이 받았다.

    직선제에 현혹돼선 안 된다. 국가에 교육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국가와 싸워야 한다. 교육감들과의 싸움으론 대중적인 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 지금은 촛불집회라는 특수한 국면이라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바람선거의 특성을 조금 보이고 있지만, 교육감 선거는 근본적으로 조직선거일 수밖에 없다. 수요자들의 이기심과 조직의 힘. 딱 토호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양이다. 이런 구조에 교육을 맡길 수 없다.

    선거운동이 아니라 교육분권화 반대 싸움을 해야 한다. 국가의 차원에서 광장에 모여 전 국민이 단일한 대상을 향해 촛불이든, 무엇이든 드는 방식으로만 미친 교육을 끝장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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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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