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일 전쟁 발발 가능성 높다"
        2008년 06월 14일 05: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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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들의 제국주의’ 제목의 책을 받아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누가 ‘촌놈’이고 누가 ‘세련된’ 제국주의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004년의 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2004년 12월은 인류 최악의 자연재앙의 하나로 기록된 지진해일 ‘쓰나미’가 발생했던 해이다. 23만명 이상이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복구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제국의 차이

    ‘쓰나미’가 발생하자 각국 국가들은 앞다투어 구호와 원조의 손길을 보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연 영국 정부와 국민들이 보여준 신속하고도 놀라운 구호의 물결이었다.

    영국정부는 재난 발생 직후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인 5천만파운드(9600만달러)를 신속하게 원조하였으며, 영국 국민들은 옥스팜, 영국 적십자 등 12개 영국 자선단체가 공동으로 구호기금 모금에 나선 지 48시간만에 모금한 돈은 총 3200만파운드(6150만달러)에 달했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제국중의 제국’이라는 미국이 세계여론에 떠밀려 3500만달러 지원에 그친 것과 비교하여 보면 영국인들의 활약은 당연 눈에 띄는 것이었다.

    당시 이러한 영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미국 정부의 좀스러운 대응을 두고 뒷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왜 영국은 자신의 국익과 ‘무관한’ 재난에 열성을 보이는 반면, 미국은 뒷짐 지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두 ‘제국’의 서로 다른 행동의 근저에는 과거 식민지 경영의 역사가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과거 영국은 전 세계에 걸쳐 100여개 이상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직까지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70여개의 국가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식민지라고는 과거 필리핀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미 제국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촌스러움

    즉 이런 식민지 경영 경험의 차이로 인해 자국의 이해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여타국의 불행에 대한 반응의 차이로 나타났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국과 같은 경우 자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라 하더라도 결국은 자국의 도덕적 지위, 식민지 경영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친 반면, 미국은 보다 자신의 직접적 이해에만 반응하여도 충분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논의가 맞든 틀리든 자신과 관계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파괴된 상황에서 나몰라라 하거나 복구사업과 같은 이해에 주판알 튀기기는 짓은 참으로 천박하고 ‘촌스러운’ 짓이긴 하다. 속으로야 어떤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자애롭고 인도적인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야 말로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모습일 것이다.

    하여튼 때가 때인 만큼 2004년 쓰나미가 보여준 촌스러운 미국 제국주의와 최근 이명박 정부의 천박한 촌스러움과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울트라 얼치기 촌놈 제국주의

    우석훈 박사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3권인『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가 출판되었다.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국제경제학과 동북아 경제통합에 관한 내용으로 우석훈 박사가 기획하고 있는 시리즈 중 가장 장기적 전망과 과제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제 한국 자본주의가 그 내부적 모순과 불균형으로 인해 특단의 대안 없이는 제어하기 어려운 단계, 즉 식민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를 만들어낼 능력도,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으면서 생존의 돌파구는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까닭에 한국 자본주의를 저자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전환을 보여주는 주요한 변곡점으로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결정된 이라크 파병, 경제영토의 확장이란 기치를 앞세운 한미FTA, 한국경제의 마지막 비상구 남북경협을 꼽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해외에서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식민지에 해당하는 다른 나라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경제협약 중의 하나일 뿐인 한미FTA에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집착한 것은 일종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가 이로써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이것이 사실상 국정홍보처가 얘기한 ‘경제영토’의 실질적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오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히 현신을 짚었던 셈이다. 미국을 등에 업은 ‘경제영토’의 확장, 그것이 바로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본문 98쪽)

    한·중·일 전쟁의 가능성은 오후 10시

    한국-중국-일본 간의 전쟁을 저자는 동북아 3국의 국민경제와 경제학적 근거해 전쟁의 기운이 점증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이 지역 내의 긴장도와 자원 사용양식, 시장의 해외 의존도 등 객관적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동북아에서 전쟁이 발발한 가능성은 ‘12시를 기준으로 할 때 이미 10시를 넘은 상태’라는 것이다.

    왕년의 제국이 아닌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팽창적 중화주의를 우리는 멀리서가 아닌 서울 한복판, 성화 봉송 폭력사태에서 볼 수 있었으며,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전통적 공산주의 역사관이 ‘동북공정’을 통해 ‘민족’ 혹은 ‘국민경제’의 역사로 전환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도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천황제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 어떤가? 패전 후 이른바 평화헌법 아래 ‘평화국가’로 강제되었던 일본은 이제 자위(自衛)를 빌미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두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중국, 일본과 별 다를 바가 없다. 2002년 ‘붉은 악마’, ‘새만금사태’, ‘독도문제’ 등 수도 없이 사례가 많다. 이중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은 대표적인 ‘수출 중심주의’와 ‘쇼비니즘적 열광’의 결합된 사건이다.

    이미 한중일 세 나라는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주요 유전에서 잠정적 경쟁자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자원수송로다. 보통은 해상수송로와 파이프라인 두 가지 형태로 자원수송로가 만들어지는데, 사실 한중일의 전쟁 개연성을 가장 높이는 것은 이 자원수송로의 확보를 둘러싼 군비경쟁이다.(본문 201~202쪽)

    암울한 미래, 희망은 남아있는가?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한국의 10대, 20대가 어떻게 불행해지는가를 다룬『88만원세대』, 20대 가운데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5%의 승자들이 질식해 가는가를 다룬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어 한·중·일 동북아 3국의 국민경제를 분석하여 ‘전쟁’이라는 불행과 암울함을 그리고 있다. 저자 스스로 말하듯 그야말로 ‘본격 호러 경제학’의 연속선상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중·일 3국의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전망은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이 절망을 넘어 우리 사회, 아니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로 미래를 가꿀 제5원소는 과연 있는 것일까?

    ‘전쟁 없는 상태’가 열정의 대상이 되고, 그 자체가 하나의 파토스가 되는 그런 문명 혹은 그런 사회를 만들 희망은 저자가 그의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숨겨 놓았다. 독자는 그 숨겨진 희망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함께 실천해야 할 의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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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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