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들이 거리로 나선 진짜 이유
        2008년 05월 17일 02: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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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청소년들이 ‘미친 소’ 관련 시위를 하는 걸 보면서 두 가지 느낌이 교차됩니다. 한 가지는 ‘광우병 대통령’에 자극을 받아 드디어 10대들이 사회, 정치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지요.

    그런데 또 하나는, 도대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얼마나 앞이 안보이기에 이렇게 촛불을 들고 나왔나 싶은 것입니다. 고1, 고2, 고3, 공부가 아닌 ‘공부’에 숨쉴 틈이 없을 이들은 이렇게 꾸준히 촛불을 들고 나오는 걸 보면 이는 범상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 자신의 미래에 모종의 커다란 문제, 커다란 장벽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들 운명의 불길한 징후를 자각하다

    ‘미친 소’ 수입 허용 문제에서 보여준 이 정권의 안하무인 식의 태도, "광우병 위험이 있든 없든 빨리 빨리 FTA 체결하고 휴대폰, 자동차 수출을 늘리자"는 식의 천민 자본가 수준의 사고는 도화선이 됐지만 ‘청소년 반란’의 원인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배후를 찾아내는 데에 혈안이 돼 있지만 따로 찾을 것도 없어요. 이명박씨가 청소년이었을 때에 그에게 ‘꿈’이라는 게 있었을까요? 잘 모르긴 해도 아마도 "공부를 잘 하고 취직을 잘 하고, 윗사람을 잘 섬겨 결국 나도 윗사람이 되고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입신출세하자"는 정도의 꿈, ‘샐러리맨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글쎄, 알 수야 없지만 지금도 이명박씨가 이 청소년 집회들을 보면서 "에,, 젊은 것들 말이야, 뭐하는 짓이냐? 어서 공부나 잘하고 나처럼 출세해봐, 왜 시간 낭비나 하냐, 응?"라고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아무리 자신과 남을 다 희생시키고 암기 ‘공부’와 윗사람을 섬기는 데에 정과 성을 다 바쳐도 지금 ‘두번째 이명박’이 나오기에는 틀려도 아주 틀렸습니다.

    고교생이 이명박씨의 모교에 입학부터 하자면 우선 그 부모들이 일단 대한민국 평균 월 사교육비 60만 원 이상을 써주어야 할 터인데(암기의 완벽한 천재가 아닌 이상), 비정규직의 한 달 평균 월급의 거의 70~80%에 달하는 이 돈을 아무나 쉽게 쓸 수 있겠습니까?

    비정규직의 아들딸이 이명박씨의 모교에 들어갔다고 쳐도 그 다음이 문제일 것입니다. 전체 강의의 3분의 2를 곧 차지할 영어 강의를 제대로 알아듣자면 현지 언어 연수가 거의 필수일 터인데, 그걸 누가 공짜로 보내줍니까?

    그리고 유명 재벌 입사에 거의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싶은 각종의 자격증, 연수 경력 등을 쌓자면 학생 시절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 재정적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합니까? 그러니까 이명박씨는 이 집회 참석자들보고 "왜 나처럼 못하느냐"라고 야단칠 입장이 못돼요.

    꿈 또는 악몽

    1960-80년대 류의 ‘샐러리맨의 꿈’은 이미 다 산산이 깨지고 만 것입니다. 이를 대체할 만한 ‘꿈’이란 것 있나요? 정규직이라도 돼서 웰빙이나 하면서 좀 건실히 살자는, 아주 온건하고 얌전한 꿈도 비정규직이 56%나 되는 곳에서 꾸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청년들의 취직 경향을 보면 거의 70~80% 가까이 비정규직이 되는데, 아마도 이번에 촛불을 들고 나온 이들은 그걸 인식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미친 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그들의 운명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이명박씨가 정말로 ‘국민을 받드는 대통령’이었다면 이러한 절규를 지금처럼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人情’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적 ‘정치적 능력’의 문제인데, 이번 정권에 그것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 청소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의 미래 인생은 ‘꿈’이라기보다는 ‘악몽’ 중의 최악의 악몽입니다. 고1~3의 지옥은 대입 성공으로 이어진다 해도, 바로 거기에서 그 다음 지옥은 시작됩니다. 등록금 마련, 융자 받기, 상환 부담과 스트레스, 1학년부터의 취업 준비와 해외 연수 등에 필요한 돈, 돈, 돈 걱정…

    운동이고 친구고 연애고 낭만이고 다 옛날 이야기, 한국형 재벌 자본주의 전성기인 1960~8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낭만을 즐길 여유가 안생깁니다. 그런데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잡아 괜찮은 기업에 들어가도 다음은 무엇입니까?

    해외연수를 갔다온 아이라면 유럽에서 여름 휴가 기간이 보통 한 달 정도 된다는 것 정도는 알 터인데, 운이 좋아 들어온 기업에서는 잘돼봐야 1주일 정도입니다. 그것도 첫해에 쓸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요.

    진보신당, 이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야

    사랑, 우정, 자연 감상, 사회에의 공헌… ‘내 집 마련’이 불가능에 가깝고 노후부터 불확실한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건 다 외계인 세계 이야기입니다. 한국 청소년의 입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결국 각종 지옥들의 연속입니다. 그들의 촛불에 담겨져 있는 뜻은 "제발 이 지옥을 같이 탈출하자",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것이 아닌가요?

    ‘학벌 타파, 공공 일자리 창출, 공공 임대 주택 증설, 점차적 고등 교육 무상화’는 그러한 면에서는 추상적 담론이라기보다는 다음 세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지금 진보신당은 제대로 하면 바로 ‘꿈을 찾고 있는 10대’들은 그 대중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 운동권 특유의 계몽주의적 오만을 버리고 겸허하게 10대들에게 다가갈 수만 있으면 말입니다.

                                                  * * *

    * 이 글은 박노자 글방에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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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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