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순 반장과 피자 공약에서 배운 정치
        2008년 05월 14일 03: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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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20대와 정치’라는 주제 아래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이 쓴 글 몇 편을 싣는다. ‘총선, 민주주의 그리고 나’라는 제목의 이 글들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근현대 한국정치사 과목의 과제물이다.

    제출된 과제물 전체 중에서, 글의 완성도나 빼어남보다는 정치에 대한 20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 글들을 추려 뽑았다. 한창 배우고 커가는 학생들의 글이니 만큼 충분하게 숙성되지 않은 생각이 드러날 때도 있겠지만, <레디앙> 독자들이 따뜻한 애정과 조언으로 이 글들을 보아주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정치라는 것을 배웠다. 중학교에 다닐 적에도 사회라는 과목에서 정치를 배우기는 했겠지만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라는 과목을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과목으로 배워보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정치는 굳이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아도 TV뉴스나 신문, 그리고 라디오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다. 매일 정부가 어떤 식으로 정책을 세우고 외교를 어떻게 했는지가 나오고 엄마와 아빠는 “에휴, 저래서 되겠나” 하시다가도 “뭐, 별 수 있나”라는 말로 마치셨고, 나는 정치권력에 의한 정책에 특히 공교육, 그리고 학벌 제도에 분개했다.

    “별 수 있나…”

    이는 과거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과 학교 구조, 이와 연결되는 교학사제도, 정부에 의한 교육 정책 그리고 교육부에 편성된 예산 비율 같은 것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것의 가장 큰 계기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의 일이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이 담임선생님께 불려 나갔다. 한참 후에 친구가 들어왔고 우리는 으레 그랬듯이 성적 상담인 줄로 짐작했지만 그 친구가 들어오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 신문사에 다니시는데 선생님이 친구에게 부탁해 지면상에 학교 소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난감해 했지만 어쨌든 아버지께 부탁드렸고 그 신문사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어서 우리는 그 문제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다음해 학교에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학교에는 공원이 생겼고 교무실은 더 좋은 환경으로 변해갔다. 그 때쯤 학교 옥상에 골프장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후에 학교 발전 자금의 출처와 이용 문제로 인해 학교가 소란스러워졌고 그 과정에서 학생과 교장 선생님 간에 충돌이 빚어졌다. 결국 학교 발전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선생님들 간에 투표가 이루어졌는데 이 투표는 황당하게도 유기명이었다.

    나는 매우 경악스러웠고 아직도 이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구나, 라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투표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그 투표는 거의 만장일치로 타결되었고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만큼 멀게만 느껴졌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교과서에 쓰여 있는 정치란 말이 너무나 이상하게 혹은 웃기게 생각되었다. 정치는 정사 政에 다스릴 治자를 썼는데 이 교과서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의아했다.

    우선, 이런 학교 분위기 속에 배운다는 것이 불신감을 커지게 하는 큰 요인이었고 그 다음에는 수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 방식이 외우는 문제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책에서 민주주의는 정치 형태로서의 민주주의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를 구성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거나, 공동체 생활을 운영하는 방향에 관한 신념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 존중,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생활 원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간 존중, 자유, 평등의 이념을 바탕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생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중, 자유, 평등 이런 말들은 절대적인 가치로서 언제나 들어왔던 말들이지만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질문하면 이상한 아이

    아직까지의 내 일생의 주요 무대는 학교와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학교를 살펴보자. 점수 서열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어 버리는 학교에서는 ‘인권’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머리, 복장단속으로 심한 모욕감을 주었던 선생님들의 언행과 체벌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곳에 자유와 평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을 들어야 할 의무만 있을 뿐 선생님과의 혹은 학생들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은 없다.

    선생님에게 수업에 관련되어 있거나 과목에 관련한 질문을 하려고 한다면 간혹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가능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무시를 당하거나 더욱 심한 경우에는 이상한 아이로 찍히기까지 한다.

    가정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위계질서와 서로의 위치로 인한 의무, 책임 의식으로 인해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개념들의 경계선이 애매해지며 지켜질 수 없는 부분도 발생하게 된다. 그 밖에 소소하게 부딪히는 사회 속에서는 외모적으로 일단 어리면 가해지는 행동들이나 언행에 의해서 그 ‘연령주의’ 속에서 민주주의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민주주의가 그래도 가능할 수는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대학이었다. 첫 번째 의미에서는 대학의 친구들과 선후배 관계 그리고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언어를 통해 평등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나의 결정권과 같은 것으로 책임을 동반한 자유를 느꼈고 이를 토대로 인권을 좀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다른 측면에서는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그 자체는 나의 성숙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 속에서 많은 것을 내포한다. 특히 연령주의 사회 속에서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야 나를 하나의 존재로 봐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내가 사회 속의 하나로서 나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처음 선거를 했던 2007 대선에서였다. 사실 선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선거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거의 선생님들이 후보들을 정해주다시피 하든가 금권선거식의 선거가 비일비재했다.

       
    ▲ 충남 한 초등학교의 선거 모습
     

    피자 선거

    그것은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후보를 뽑는 방식은 후보 추천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성적순으로 잘라서 1등부터 10등까지 후보가 칠판에 적히는 식으로 투표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공약은 항상 피자가 주를 이루었다. 제대로 된 공약과 그것이 지켜지는 것을 본 적이 없던 나와 학생들로서는 투표 행위로만 선거가 끝날 뿐이었다. 더 이상의 진전이나 선거의 의의를 묻는 이도 없었다.

    선거를 통해 공표된 공약들을 실천하고 반년간의 성과를 재검토할 시간을 가졌다면 더 바람직한 선거 교육의 장이 되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선거 나이 제한이 더 낮아졌으면 학생들의 선거 의식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위의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요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거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선거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내 첫 선거는 비 호감으로 가득차 있기는 했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이 이명박과 박근혜, 문국현, 정동영 후보에게만 집중할 뿐 다른 후보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듯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다만 대선 막바지에 등장한 허경영 후보가 이슈가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후보들 중에서도 정책 검토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만이 민심을 휘어잡았다.

    이명박의 시사토론이나 정책으로 내세우는 것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왜 이명박을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경제성장 6%는 시민들의 목표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경제가 살아나고 그로 인해 우리들도 모두 다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과거 독재시절 반성 없는 엄청난 경제 발전이 지금도 필요하다고 믿고, 그것이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컸다. 매일 뉴스나 신문에서는 거의 주요 후보들에 관한 이야기만이 보도될 뿐이었다.

    다른 모임에서 선배들과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경제 얘기를 운운하면서 이명박 후보를 너무 지지하는 것 같아서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네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래. 비정규직도 생각해야지. 그러려면 일단 실업이 감소해야 하는 거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날아오곤 했다.

    타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명박과 문국현 중에 누구를 찍을까 고민하든가 아니면 이명박 욕을 하면서 그래도 문국현 후보가 낫다는 식의 의견을 표명한 이들도 있었다. 왜 이들은 그것이 미칠 영향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은 채 표면적 경제성장론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 그 정책이 미칠 영향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왜 후보들은 서로 인신 공격적인 비판들과 발언을 주로 할까.

    “살아돌아가겠다”는 친박연대

    결국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가 선출되었다. 취임 후부터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웠던 경제를 위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겠다고 하면서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정책들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물가 규제 상품들을 밝히고 취임 후 FTA 협상을 추진해 빠른 시일 내에 결실을 맺겠다고도 하였다. 대운하 건설 문제는 취임 직후 잠시 잠잠하는 듯하더니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명박 인사 문제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명박과 박근혜계 간에 정치적 공방이 일어나면서 친박연대라는 웃지 못할 이름의 정당도 생성되었다. 통합민주당에서는 공천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면서 많은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진보신당이 떨어져 나오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지난번 대선과 비슷하게 정당의 색깔이나 정책들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지와 호소를 통한 표 얻기가 난무했다. 통합민주당의 공천의 시도를 통한 이미지 쇄신은 괜찮은 전략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다였다. 정책을 제고하거나 당의 특색을 드러낼만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강금실을 필두로 내세워 표심잡기에 연연할 뿐이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분파되어 두 당으로 나뉘어서 그 만큼 표를 얻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 색깔이 뚜렷하고 정책을 엿볼 수 있었던 당이라고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황당했던 것은 친박연대의 존재였다. 친박연대의 구호는 무려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였다. 이것은 정당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회의감마저 갖게 하였다.

    이번 해에도 여전히 금권선거가 등장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현수막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을 감추거나 없애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들로 보아 우리 사회 속에 여전히 바른 선거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고 의식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헌정사상 최저 득표율인 46%를 기록했다. 50~60대가 최대 득표율을 가지고 있고 20대가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고 한다. 20대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유권자 중 20대의 비율이 투표율로 잘못 알려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라느니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20대가 보수화되었는가라는 정치적 사안은 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지며 논란이 되었다.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사실 이번 해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20대의 투표율은 기성세대의 투표율에 미치지 못했다.

    투표자가 20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기준이 되고 있는 20대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20대의 생각을 통칭해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연령대로 묶어서 선거 결과를 분석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해왔고 분류하기에도 쉽다. 그런데 20대에서 투표하는 이들이 20대의 의견을 모두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20대라고 나이만을 통해 묶어 두기엔 한계성을 지닌다.

    20대가 투표율이 낮다고 이를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마냥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0대가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정치 경험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정치 경험의 부족은 선거에 대한 홍보의 부족에서도 나타난다.

    단지 선거를 부추기는 홍보만 할 것이 아니라 부재자 투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만약 신분증을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연유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한 친구들이 주위에 꽤 많이 있다.

    정치의 무관심은 단순히 관심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지 않아서 투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경제 살리기라는 말에 혹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살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당장의 자본주의 철폐라는 구호보다는 비정규직 철폐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현실에 맞닿아 있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정치적 대안들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정치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정치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그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후보자 중에 자신이 원하는 인물이 없기도 하고 미디어에서 특정 후보자만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인물들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20대 투표자 중 과반수가 보수정당을 선택한다는 이유에 근거한다.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더욱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요구하는 바가 다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진보냐 보수냐로 나누어 버린다.

    그들은 단지 보수와 진보만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진보, 보수 양 진영의 기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인다.

    대학생 정당, 대학생 의석

    우리는 이 시점에서 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개선점을 탐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장을 열어주기 위해 대학생들을 위한 정당이 생기고 각 정당별 대학생 의석수를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가 사는 곳에서는 고등학생들은 물론 고학년의 중학생까지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청년 청소년 조직이 정당마다 있으며, 중고등학교 학생회 선거 때 정당 소속별로 선거전을 벌이기도 한다.

    ‘정치운동 하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일제 강점기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사상서클 정도가 연상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에게는 정치활동 등을 통해 자아를 확립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고, 주관도 개성도 아무 의미도 없이 학습 노동에만 강제로 ‘몰입’했다가 비인간적 경쟁 속에서 인생 비관에 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이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성인 노동자에게는 적어도 노조를 만들어 공장 주인에게 ‘대꾸’할 권리라도 있는 것이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인에게는 그나마 정치적 사회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존재하기라도 하지만,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시키는 대로’만 해야 칭찬받는 청소년에게는 이것마저도 박탈된다.

    새롭게 진보 깃발을 든 진보신당에는 학습 노동자인 청소년도 그의 일터인 학교와 나아가서 사회, 정 치의 공론의 장에서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노력하자고 조언하고 싶다. 고등학생이 교장에게 필요할 때 “당신은 이 점이 틀렸다”라고 주저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 청년사회주의자국제연합(IUSY)의 선거 모습
     

    위의 글은 박노자씨가 한겨레에 쓴 칼럼 중의 일부이다. 이 글에 쓰인 것처럼 우리도 청소년 정당과 대학생들의 정당이 생긴다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할 해방구가 생길 것이고 이것을 통해 선거의 의미에 대해서도 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선거는 끝이 났다. 선거는 선거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선거 결과에 대한 대가에 몸살을 앓고 있다. 청와대 인사 문제와 FTA 문제로 대두된 광우병 소고기 문제, 물가 안정 문제, 경제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현 상황 속에서 이를 어떻게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선거는 끝이 났지만 문제는 선거 이후이다. 우리가 얼마나 참여하고 대응해내고 바꾸어내는가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20대와 정치’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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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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