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직 안 죽었어요, 독하죠?“
        2008년 05월 06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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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일이란다. 숨이 턱 막힌다. 오는 5월 9일 KTX 여승무원들은 투쟁 800일 문화제를 광화문에서 연다. 처음 <레디앙>에 이런 인터뷰를 하자고 말하면서, 민세원 지부장과 얘기한 게 2006년 11월 이었다. 세월은 잔인하게 흘렀다.

    고립된 섬

    오미선 KTX 철도노조 승무지부 새 직무대행을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는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방에서 커피숍으로 이름이 바뀐 입구에는 ‘첨단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진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고립된 섬! 어째 KTX의 현재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교선실장을 해 온 그녀에게 언제 직무대행이라는 명칭을 떼고 지부장이 될 것인지를 먼저 물었다.

    – 선거를 해서 뽑아야 하는 데 선거 이전에 끝내야죠. 하고 싶지 않아요. 왜 짐을 지우려고 하세요? 부담스러워요.

    곱게 흘긴다. 아주 가까이 앉아서 눈을 보며 얘기한다. 오늘 보니 눈이 정말 예쁘다. 언젠가 우리 딸이 다니는 학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중3이었던 딸은 덕분에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다방 안에는 경찰들이 잔뜩 있다. 집회를 감시 중이다. “경찰 아니에요?” 한 눈에 그들을 알아본다. “얼굴에 쓰여 있어요. 경찰이라고..” 모두 투쟁이 가르쳐 준 감각이다. 2년 넘게 활동을 함께 했던 간부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힘들지 않을까?

       
      ▲인터뷰 중인 오미선 직무대행. 왼쪽이 이근원 현장기자.
     

    일했던 시간보다 투쟁한 기간이 더 길다

    –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알았어요. ‘아, 다 나가고 혼자 남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 기분이 묘했어요. 380명이 투쟁을 시작했는데….잘 표현하질 못하겠어요. 지금은 활동하는 간부가 저 포함 3명이에요. 총무, 상황실장. 지부장인 제가 뭐 교선실장도 됐다가, 대협실도 했다가, 대변인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지금.(웃음)

    간부였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세원도, 도경, 효미, 지선, 해인, 혜주도 없다. 함께 울고 웃던 그 발랄하고 싱그럽던 웃음들은 기억만 남겨둔 채 과거가 되었다. 그녀가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거 같아요.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과 소신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승무원이 하고 싶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승무원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다 나갔는데도 남아 있는 이유는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마무리는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어떻게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지금 와서 그만 두면 나중에 나이를 더 먹어 되돌아 볼 때 조금 더 버티지 못해서 마지막 마무리를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아요. 정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성질이 있거나, 주장이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둥글둥글하게 지내다 보니까 정말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많아요.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800일이 되었어요. 처음 3기와 4기 후배들이 일했던 시간보다 파업했던 시간이 더 많다고 했는데 이제 1기인 우리도 그렇게 되었어요.

    2004년 4월에 입사해서 2006년 2월 28일까지 일하고 3월 1일부터 파업을 시작했어요. 결국 우리도 일했던 시간보다 투쟁했던 시간이 더 많아진 거죠. 오늘 문득 그 생각을 하는 데 점점 KTX 승무원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어요.

    9일에 열리는 8백일 투쟁문화제에 많이 와주세요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나눈 동지들이 떠났을 때의 고독함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83년 공주교도소에서의 어느 날 새벽, 많은 동지들이 내 방 앞에 왔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곤 모두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92년 울산, 같이 조직운동을 하던 동지들이 하나 둘 떠났다. 만세대 뒷산엔 그 때 혼자 먹은 소주병이 많다. 그런 기억은 오래 남는다. 오미선은 그 고독을 가슴에 안고서도 여전히 조분조분하다. 나는 그녀 특유의 ‘착함’이 투쟁을 계속하면서 남게 했을 것이라 내심 짐작한다.

    동료들은 농담 삼아 그녀를 ‘오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을 모두 가졌다는 얘기일까? 솔직히 최근 투쟁에서 KTX 동지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사실 두세 달 정도 공백기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만 둘 거냐?” “똑바로 안 하냐?”’라고 말들 하는 데 나쁜 시각으로 보지 마시고, 그저 “얘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봐 주셨으면 해요. 지금도 1인 시위를 계속 하고 있어요. 한 2주 됐어요.

    5월 9일 다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려고 해요. 저녁에는 우리가 이전에 매주 금요 촛불 집회를 하던 광화문에서 투쟁 800일 문화제를 하려고 해요. 마침 9일도 금요일이에요. 그리고 21일하고 22일에는 그동안 투쟁했던 영상도 틀고, ‘아직 우리가 죽지 않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대의 밤 행사도 할 거에요. 많이 오셨으면 해요.

    기자회견은 서울역에서, 문화제는 저녁 8시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서 열린다. 연대의 밤 행사는 철도 웨딩홀에서 열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꼭 와주면 좋겠다. 철도공사에는 아직 사장이 없다. 5월말 정도에나 임명된다고 한다. 이철 사장은 아주 힘들고, 어렵게 만든 합의문에 서명을 거부하고, 그냥 떠나 버렸다.

    인간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을까?

    – 이철 사장이 합의서에 조인 안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죠. 그런데 사장으로서는 제대로 못했다는 것에 감정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 없어요. 화를 내고 원망을 한들 이철 사장이 다시 와서 문제를 해결할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나간 사람이니까.

    그런데 다음 사장이 왔을 때 이게 정말 그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라면 그냥 인간적으로 풀어 주었으면 해요. 신임사장이 오면 그러시겠죠. “나는 지금 왔기 때문에 업무파악도 해야 하고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할 것 같아요.

    사장이 왔다고 해도 취임하자마자 문제를 풀려고 할 것 같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800일 싸웠잖아요. 어찌 보면 정말 젊은 청춘을 여기다 바친 거예요. 나쁜 것 때문에 이렇게 길게 싸운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공사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얘들은 합법 도급이다”라고 말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마 그 사람들도 알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방법원, 고등법원의 판결도 난 거구요.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그냥 인간적으로 풀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역시 착하다. 그런데 이런 소박하고, 착한 소망을 들어 줄 그런 인간이 과연 철도공사의 사장으로 올 수 있을까?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탐욕과 야만의 시대에. 더 나아가 공기업을 매각하고, 기관사도 줄이면서 오로지 ‘수익성과 효율’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최근 판결 얘기를 더 들어보자.

    투쟁은 이겼는데 직업은 없다

    – 저희가 서울역하고, 용산역에서 농성하고 그랬잖아요. 그 농성에 대해 가처분 신청이 떨어졌고, 전체 간부에 대한 판결이었어요.

    주문은 “불법적으로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벌금은 내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체적인 판결문 내용은 실질적인 사용자가 철도공사라는 판결이었고, 그걸로 인해 파업을 한 것은 정당하다는 걸로 나왔어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지방법원에 이어 고등법원의 판결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죠. 그런데 법원 판결이라는 게 일종의 권고 성격이지 실질적으로 공사에게 가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공사도 권한 밖의 판결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우리 KTX 승무원들에게는 희망이 있는 거죠. 2년 동안 이렇게 해 온 것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저만 해도 그래요. 패배의식이랄까? 그렇게 투쟁해도 안되는 걸 보면서 ‘괜히 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드는 데 저를 위로하는 차원에서라도(웃음) 법원에서 이렇게 판결도 내려진 거잖아요.

    인권위 권고도 그렇고, 많은 여론들이 우리 편인 거고, 그 담에 교수들이나 변호사 등 지식인들도 “우리가 옳다”라는 판결을 내려준 거잖아요. 그래서 “졌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겼어요. 저희가 이겼는데 직업을 얻지 못한 거예요. 다 이긴 거지만 직업이 없는 거죠. 공사에선 이게 자존심 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투쟁에서 이겼는데 직업이 없다? 휴.. 고향이 충청도냐고 물었다. “왜요? 느려요?” 반짝 눈이 빛난다. 다 떠난 자리에 진득하니 그녀는 남아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못 살 거 같아요

    – 파업을 3년 가까이 하면서 정말 얻은 게 하나도 없고, 다 잃어버렸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못 살 것 같아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는 정말 많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었죠. 그런데 얻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배가 항구에 있으면 안전해요. 그런데 항구에만 있게 하려고 배를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항해를 해야 잖아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안주해버리고, 이 생활이 편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것 보다는 모험과 변화를 통해서 삶의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투쟁을 통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지금까지 30년을 살면서 저는 정말 승무원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다 승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2년이라는 투쟁을 통해서 바뀌었잖아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거죠.

    이걸 통해서 더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걸 느낄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이게 저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데,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80평생을 산다고 봤을 때 고작 2년밖에 안되잖아요. 지금이야 이게 가장 큰 어려움이고 생각하겠지만 지나보면 2년이잖아요. 이것 때문에 그냥 안주하며 살았으면 얻지 못할 많은 것들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이와 무관하게 다들 뚜렷한 철학이 있음을 느낀다. 커피숍 바깥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노래 가사가 문득 새롭다. 아주 힘든 시기가 왔을 때 저들 중에 몇 명이나 앞서서 나갈 수 있을까? 조합원들은 지금 어떤지를 물었다.

    정말 일하고 싶다

    – 380명이 시작해서 이제 60명 정도 남았어요. 전부 다 힘들어 하죠. 많이 울어요. 진짜로 많이 울어요. 책임감을 느껴요.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고작 경력을 인정받고, 역 계약직 하려고 그동안 버텼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안 싸웠으면 벌써 과장급이 되어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일하고 싶다”라는 거예요. 역 계약직 받는 것도 정말 속상해요. 기분 나빠요. 내가 원하는 직업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합원들의 다 생각이 다르지만 통일된 거는 일하고 싶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좋은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될 거라고 해요. 그런데 지금 저희에게는 그게 귀에 안 들어와요. 짜증나요.

       
     
     

    일하고 싶단다. 118년전 미국노동자들이 “햇빛을 보고, 꽃 내음도 맡으면서 8시간 일하고 싶다”던 노래를 불렀던 메이데이에 KTX 승무원들이 일하고 싶단다.

    오미선은 불어 공부를 한다. 시험도 보았다. 한 단계를 통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못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철도의 SUD 노동자들이 공공연맹 초청으로 왔을 때 봉고차 안에서 아주 부끄러운 모습으로 불어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단식할 때 프랑스 배낭 여행기를 건네 준 기억도 난다. 민주노동당에 있던 목수정이 프랑스로 돌아간다는데 나중에라도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꿈이 많은 처녀가 이제는 800일에 달하는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에 버거워 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다.

    – 너무 슬퍼요. 힘들어하니까 정말 저도 슬퍼요. 얼마 전에 정말 친했던 승무원들이 또 나갔어요. 옛날에는 “조금만 참아라” “끝이 보인다” 그렇게 얘기를 해 줄 수 있었잖아요? 이제는 나가게 되면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어요.

    아빠가 막 우셨어요

    그 친구들이 정말 잘 돼서 나가면 저도 좋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만 여기 있는 게 힘들고, 전망이 안보여서 나간다고 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너무 힘들어요.

    얼마 전에 아빠가 막 우셨어요. 아빠가 우는 데 정말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제 동생이 곧 결혼을 하는데 저는 이러고 있고, 저도 서른이 넘었으니까 결혼을 해야 할 텐데 거의 3년 가까이를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밖에서 사는 거잖아요.

    이러다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되게 허전하시겠죠. 집에서는 저를 손님으로 봐요. 주말마다 집에 가면 방을 치워놓고, 저를 위해서 맛있는 거를 해 놓고, 과일 사다 놓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러지 말라고 하는 데 “네가 밖에서 힘드니까 집에 와서라도 잘 먹어라”라고 엄마는 말을 해요.

    근데 아빠는 그만두라는 말씀은 안 하지만 당신께서도 당신을 어쩌지 못하시는 거예요.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시집가면 마음이 아플 거라는 생각,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시니까 가슴이 아프셨겠죠. 그래서 막 우시는 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우리 아빠는 저를 지지해 주시거든요. 그런데 다른 부모님들은 오죽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부산이나 광주 등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는 더 하잖아요. 정말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빨리 끝내야 할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해주는 동지들이 정말 대견해요.

    마침내 “잘 울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그 마음이 전해 진다. 남아 있는 소중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내 속에 있는 두 명의 나

    – 조합원들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많은 승무원들이 패배의식이 심할 거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싸우고, 연대를 하더라도 이길 수 없다, 자본과 권력 앞에는 아무리 노동자들이 투쟁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단정해 버리면 앞으로 더 힘들어 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후회하지 않잖아요. 1년 더 싸우자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금방 끝난다, 끝난다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막연한 긍정적인 생각이 항상 좋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버텨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마음을 추스리려고 생각해요. 마음 속에는 오미선이라는 사람이 두 명이 있는 거예요. 빨간색 유니폼 입고 서울역을 왔다 갔다 하는 승무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고 부러워요.

    “저 자리는 내 자린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나 때문에 네가 잘 되고 있는거야” 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어리석다. 그 때 파업할 때 참여하지 말았어야지” “나를 희생하면서 이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당시 나를 등 떠밀던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노동운동 이런 거 굳이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생각도 있어요.

    이런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내 정신건강에 안 좋으니까(웃음) 이런 운동을 통해서 정말 많은 사람을 얻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성숙해졌다’라는, ‘인간적으로 컸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조합원들도 그럴 거예요. 투쟁을 다시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연락하고 싶지만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어요.

    끝까지 착하다. 오늘 인터뷰의 목적이 다시 시작하는 투쟁에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것 일 텐데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라니.

    분해서 잠 못 드는 밤들

    – 외부에서는 여자들이 그렇게 모여 있는 게 참 대단하다고 했는데 그거를 실감 못했거든요. ‘그냥 있으니까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하나하나를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실장님?

    갑자기 내게 질문을 던진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518일을 싸웠던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 408일을 싸우고도 결국 전원 퇴사의 길을 선택한 도우엔지니어스 동지들. 그 외 경찰청 비정규직, 만영.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남기는가? 도대체 이겼다는 게 뭘까?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의 쟁점으로 만드는 얘기, 그래서 다음 세대에 대한 얘기 등을 하지만 말이 꼬인다. 언젠가 KTX, 이랜드, 코스콤의 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화했고, 그래서 전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의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아니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될 날이 올 수 있을까? 투쟁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일까?

    – 음, 나빴을 때는 내가 지부장 되었을 때. (웃음) 사실 좋았을 때가 나빴을 때고, 나빴을 때가 좋았을 때예요. 금방금방 지나가요. 정말 잠 못 자겠고, 분했던 거는 합의서죠. 합의서 다 써 놓고 조인하자고 했는데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까 지나고 하자”고 해서 지나고 하려고 했더니 이철 사장이 돌연 사퇴해버렸잖아요.

       
      ▲ 합의서
     

    그래서 이걸 어떡할 거냐고 여객본부장에게 물어봤더니 “1월 24일 이사회 때 보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또 기다렸잖아요. 그러더니 “책임질 사람이 없다. 다음 사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얘기했어요.

    그 전에 과정을 보면요, 어느 역으로 가는 게 좋을지 다 조정하고, 연봉도 각 지부별로 팩스가 갔어요. 그래서 지방사는 동기들은 방까지 얻은 경우도 있어요.

    집을 구한 2명은 집을 빼버려서 그냥 용산 철해투에서 생활해요.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다 얘기도 했구요. 근데 그게 겨우 보름 사이에 안된 거잖아요.

    그 분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태일 열사가 왜 분신을 했는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억울했으면, 분했으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을까? ‘누구 하나가 죽어야만 우리 문제가 풀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해봐요.

    전태일의 분신이 이해가 됩니다

    불법파견이 합법도급으로 나오고, 합의서 조인하기로 해 놓고 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런 억울함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 지, 이런 분함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다가도 정말 이 생각만 하면 눈이 번쩍 떠진다니까요.

    곡기를 끊고 삭발을 하고, 공권력에 맞서 싸우다가 유치장에 들어가고, 이렇게 했는데도 자본과 권력은, 정부는 우리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안잖아요. 이런 일들이 저희 KTX승무원 문제만이겠어요? 더 억울한 사람들도 많겠죠.

    그래도 좋았을 때는 연대의 따뜻함과 우리 승무원들의 따뜻함을 느꼈을 때예요.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함께 갔으면 해요. 그냥 우리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7명이 일본 JR 동노조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국제적 연대를 한 셈이다. 일본에서 와서 릴레이 단식에 동참한 적도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오랜만에 승무원끼리 말도 많이 하고, 말만이 아니라 진짜 ‘정이 오고가는’ 노동자의 국제연대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가고 있을까?

    – 절실히 느낀 것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과 투쟁하고 있지만 노동자 역시 ‘자본’과 ‘권력’이 없이는 투쟁할 수 없다는 거예요. 투쟁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리고 권력도 필요해요. 국회나 그런데 찾아가잖아요. 영세사업장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요.

    KTX 승무원들은 솔직히 이미지가 좋아서 많은 언론들이 동감해주고, 이슈화 시켜주었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보다 열악한 데가 얼마나 많겠어요. 사실 여기 있는 경찰들도 다 노동자예요. 그런데 본인들이 그걸 모르고 있어요. 자본이 세련된 방법으로 각인시키는 거 같아요.

    노동자에게도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다

    예전엔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라든지, ‘공산주의’ ‘노동운동’ 뭐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얘기해서 거부감을 갖게 하고, 그런 걸 하면 빨갱이가 되고, 사회 이단아가 되어 버리게끔 했잖아요. 요즘에는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자본을 우상시 할 수밖에 없게 사회가 만드는 것 같아요.

    회사에 들어가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쟁을 해야 된다거나 상위 1%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잖아요. 엘리트 중심의 모든 경험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변화해가고 있는 데 우리는 그것을 거슬러 가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든 거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정말 단결하지 않으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런 것에 맞서서 싸우기에는 힘들 것 같아요. 단적으로 보면 우리 KTX 투쟁 때문에 철도공사구조조정이 늦춰졌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없어요. 우리가 수긍하고, 순종해서 간다면 더 빨라질 수도 있어요.

    노동자들이 이런 집회를 하거나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자본이 원하는 대로 가겠죠.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늦춰지는 거죠. 하지만 투쟁하고 있는 개인들은 “달라졌다” "변한다“라는 것을 못 느껴요.

    기륭이나 이랜드나 코스콤 등의 투쟁 때문에 비정규직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막고 있지만 본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 상태로만 간다면 세를 더 불리지 못하고 정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노동조합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20~30대를 조합원으로 받아야 발전할 텐데 그렇지 않잖아요. 세대의 변화를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는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데,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는데 노동운동의 흐름은 70~80년대에서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급단체는 너무 관료적

    민주노총이나 연맹을 보면서 그런 희망을 볼 수 있을까?   

     

    – 요즘 너무 관료적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구조, 체계 이런 걸 너무 얘기하다 보니까 ‘가장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라는 사람들조차 몸에 그게 배어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뭘 얘기하는 거 자체가 우스워요.

    KTX 승무원 투쟁 등 한창 여론을 탔을 때는 쫙 달라붙었다가 여론이 식으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모습이 언론매체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나 연맹 등 상급단체도 마찬가지거든요. 이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고, 만약 이런 흐름대로 노동운동이 간다면 머지않아 일본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도 70~80년대 학생운동 많이 했지만 지금 그렇지 않잖아요. 심지어 등록금 인상에 관한 투쟁조차 학생들이 하지 않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마지막으로 정말 일하고 싶어요. 여성들이 이렇게 오래 싸운 게 정말 헛된 싸움이 아니었고, 이 사람들이 정당하게 싸웠고, 이 사람들의 투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주려고 한다면 같이 책임을 져야 해요.

    지금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싸우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거나 모범이 되려면 이 투쟁이 정말 시시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이 정말 KTX 승무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인 것 같고, 전체 노동운동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일하고 싶다

    저는 조합원들이 조금이라도 웃음을 찾을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노력해요. 투쟁하면서 처음으로 청바지를 많이 입고, 이제 운동화가 더 편해지게 되었어요. 어찌 보면 파업투쟁이 아니었다면 거만했을 수도 있어요. 겸손해졌어요, 물론 겸손의 도가 지나쳐 초라해 졌지만.. (웃음)

    마무리를 진짜 잘 해야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겠어요,. 다 뿔뿔이 집에 가면 안 되잖아요. 마지막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얘기의 말미에야 결론이 나왔다. 연맹도 투쟁 초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의 꽃”처럼 말하다가 투쟁이 길어지자 손을 놓았다. 투쟁은 고스란히 KTX의 몫으로 되어 버렸다. 내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이다.

    800일을 버텨 온 KTX 조합원들이 ‘고립된 섬’처럼 느끼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투쟁기금을 위해 양말을 팔면서 ‘아름다운 연대’라고 썼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저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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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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