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하의 봄이 성공했더라면…
        2008년 05월 06일 12:15 오전

    Print Friendly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살이에서 잠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과거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인류가 고통과 수난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안타까운 세계사적 사건

    물론 많은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 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을 들고 싶다. 당시 ‘프라하의 봄’만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라, 인간적이고 이성적으로 해결됐다면, 아마 지금쯤 전인류는 최소한 평화와 평등이 지배하는 인간적인 사회주의체제로 가는 기본틀은 마련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1968년 봄, 새로 수상에 임명된 체코슬로바키아의 두브체크는 일련의 소비에트 정책을 폐기하고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정책을 채택했다. 두브체크는 자신의 정책을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로 불렀다.

    2차대전 후 독일로부터 해방되고 소비에트체제가 수립된 지 20년 만에 자유의 바람이 프라하에서 불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바람은 소비에트의 정치적 선전처럼 서구제국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개혁운동이었다.

    같은 시기에 전세계는 자유의 바람이 강타하면서 혁명적인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학생들의 봉기가 있었고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휩쓸던 시기였다. 서구자본주의세계나 소비에트체제는 자유의 바람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던 시기였고 인류에게는 더 없는 희망의 시기였다.

    당시 러시아를 비롯한 소비에트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프라하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에 대해서도 1956년에 부다페스트에서 대응했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1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력 진압의 부메랑

    소비에트와 바르샤바동맹국에서 20만 명의 군대를 차출한 뒤 탱크를 앞세우고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 침공을 개시했다. 작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엄청난 군사력을 가진 소비에트군과 항전을 벌였지만 일방적인 침공이었다.

    당시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던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항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을 남겼다. 전국민들은 소비에트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도로표지판을 거꾸로 돌려 진군하는 소비에트 탱크의 전진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심지어는 탱크의 진군을 지연시키기 위해 도로가에 서있던 체코 여인들은 옷을 벗어 던지고서 “방향을 돌려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면 몸을 허락하겠다”고까지 말했다. 프라하 시내에서는 젊은 학생 얀 팔라츠가 소비에트군의 침공에 항거해 분신을 하면서 저항에 불을 지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염원은 탱크에 짓밟혔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는 바르샤바동맹국들의 군대에 점령당했고 국민들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뒤, 프라하의 봄을 군사력으로 강제로 진압한 결과는 부메랑이 돼 소비에트로 돌아왔다.

    정치경제적 위기가 한꺼번에 소비에트를 강타한 것이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르바쵸프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주창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가 내세웠던 슬로건은 다름 아닌 ‘인간적인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20년 전에 이미 체코슬로바키아의 두브체크 수상이 시도했던 개혁정책과 거의 동일했고 슬로건 또한 같았다. 그러나 고르바쵸프의 개혁은 너무나 부패해버린 거대한 소비에트체제를 개혁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다.

    1968년 당시, 소비에트연방과 동구유럽국가들이 ‘프라하의 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다같이 개혁을 시도했더라면 소비에트체제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발전된 사회주의체제로 세계자본주의체제를 능가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지금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걱정이다. 북한이나 남한 모두 극단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과는 반대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로 남한은 남한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개혁해나갈 때만이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