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많던 보좌관들은 어디로 갈까?
        2008년 04월 29일 04: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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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유일한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역사적 순간의 주인공이었던 민노당의 국회의원들은 보수에 찌든 국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왔다. 

    조명은 없었지만 빛났던 1백명 보좌관들

    하지만 연단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의원들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정 활동을 받쳐주던 보좌관들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으로 국회에 들어가 밤낮 없는 연구와 고민을 해왔던 보좌관들도 이 신선한 충격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비록 무대 아래에서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자부심은 ‘무죄’였다.

    법적으로는 의원 당 6명씩의 보좌진이 배정되지만, 민노당은 세비를 나누어 100명에 가까운 보좌진을 운영했다. 이제 17대 국회가 끝나가고 있다. 이제 당은 둘로 나뉘었고, 의석수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 많던 보좌관들은 어디 있을까. 어디로 가고 있을까. 

       
      ▲ 지난 2005년 3월 민노당 보좌관협의회가 관악산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밝은 얼굴들이 인상적이다.
     

    신선한 충격의 또다른 주인공들인 그들의 상당수는 일단 ‘실업자’가 된다. 보좌관뿐 아니라 진보정당의 정책을 생산하던 브레인들도 상당수가 실업 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다수 보좌관들은 ‘백수’ 대열에 합류해서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민노당 탈당과 함께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 의원의 보좌관들은 이미 일자리를 잃었고, 다른 대부분의 민노당 의원 보좌관들도 5월 29일부로 임기가 끝나면 ‘대량 실업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선의원인 권영길 의원, 강기갑 의원실도 보좌관들의 고용승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권영길 의원실은 한 명을 제외하고 이미 의원실의 얼굴이 모두 바뀌었다.

    18대에서 권 의원의 보좌관 일을 맡은 정용상씨는 “지금 있는 보좌관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교체된 보좌진”이라며 "1년 동안 선거를 치르며 팀워크는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강기갑 의원실은 아직 ‘실업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17대 보좌관들의 고용승계와 신임 보좌관 채용문제는 논의 중인 사항이라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강 의원실은 현재 17대 보좌관들이 모두 근무하고 있다.

    "그것도 뉴스가 되냐"

    국회를 떠나 앞으로 뭘 할지 묻는 질문에 전화를 받은 거의 모든 보좌관들은 “그게 뉴스가 되냐”며 웃었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총선 기간까지 해당의원의 선거운동을 함께 하거나 임시 당직자 생활을 하였고, 지금은 각자 휴가를 떠났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들이 선택한(?) 직종은 대부분 ‘백수’다. 노회찬 의원실 박창규 전 보좌관은 “구체적으로 진행할 만한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불규칙했던 그 동안의 보좌관 생활을 끝낸 후 지금은 집에서 가사 일을 돕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 오진아 보좌관도 “현재 휴가 중으로 특별한 계획을 잡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오 보좌관은 “계속 심상정 의원과 일은 하기로 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진보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2월 말 민노당 탈당과 함께 진보신당에 참여하며 보좌관직을 잃은 최순영 의원실 홍은광 보좌관은 관악구 선대위 집행위원장 및 김웅 후보 선본장을 맡아 총선을 치렀다.

    이후 홍 보좌관은 관악지역에 머물며 지역진보정치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선거 평가하고 지역조직에서 지방선거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또 개인적으로는 교육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좌관 일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경우도 있다. 단병호 의원실에서 환경정책 보좌관을 맡았던 김홍석 전 보좌관은 “보좌관 일 하면서 환경대학원에 다녔는데 작년 석사논문 제출 기간에 대선도 겹치고 해서 쓰질 못했다”며 “실업자 된 김에 지금 쓰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이어 “앞으로 환경 전문가 소리를 듣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며 “5월 중으로 일자리를 찾을 계획이지만, 정당 일은 제의도 없었고 생각해 보질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보좌관처럼 백수 시기에 박사 과정 등 미뤄 놓은 공부를 하는 보좌관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낙구 보좌관 부동산 책 펴내

    진보정당에서 보기 드문 부동산 전문가가 된 손낙구 전 심상정 의원 보좌관은 17대 국회에서 부동산 관련 정책을 담당한 경험과 연구한 것을 모아서 부동산 관련 서적을 출판할 예정이다. 손 전 보좌관은 “17대 의정활동 동안 부동산을 담당해서 그쪽에 대해 보고서를 몇 차례 내었는데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중에 연결된 상당수의 보좌관들은 특별한 언급을 할 것이 없다며, 취재에 ‘비협조적’이었는데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의 반영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 그만 두는 보좌관들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뾰족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보좌관들이 당직자가 아닌 공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의 대책을 세우기가 어려울 뿐더러 양당의 중앙당이 보좌관들을 당직자로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민노당 이병길 기획팀장은 “당 차원에서의 17대 보좌관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보좌관 공채에 대해서도 “당 명의로 공채를 낸 것이 아니라 의원 명의의 공채인데 당의 원내전략에 맞도록 한꺼번에 공고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 중앙당이 많은 사람들을 당직자로 채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별정직 공직자 신분인 걸 알고 일해 왔기 때문에 당에서 책임을 못 진다고 서운하다거나 그런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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