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가 귀금속 가게면 ‘좌파’는 채소인가
        2008년 04월 23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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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총선결과는 뒤로 하고 몇몇 언론들의 판에 밖힌 전망과는 별개로 진보신당에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논의가 곰비임비 일어나고 있다.

    맛 골목 순대집 원조 다툼 되지 않기 위해서

    아직 자체 내에서 뚜렷한 일정이나 방향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니 벌써 어떻게 진전될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역사에 의미있는 작업일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큰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논의는 뜬구름 잡는 담론 다툼 같은 기존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과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별 근거없이 서로의 과거의 우상들이나 갖다 들이대며 누가 원조이니 정통이니 맛골목 순대집 다툼같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신당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말들 속에 이런 우려가 전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당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레디앙에도 ”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다 ‘라는 재미있는 제목에 글이 실렸다. 하지만 내용은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재미있지 못했다.

    ‘진보’나 ‘좌우’에 대한 의미에 대한 주관적 주장에 처음의 반이상을 할애하더니, 진보라는 것을 내세우면 10%에 불과한 ‘구역’에 갇히는 것라고 했다가, 또 당 이름에 ‘초록’이나 ‘사회’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피해야

    생태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까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여론 조사에서 진보, 중도, 보수가 통상 서로 30% 내외 나타나는 현실에서 ‘진보’라고 하면 10% 속에 갇히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다시 국민들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을 상징하는 ‘초록’이나 ‘사회’같은 단어를 당명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홍기표는 진보와 보수는 낡은 개념이어서 버려야 하고 ‘좌우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와 보수는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라면 좌우라는 개념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좌우라는 개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것이 기원이다. 결국 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안정적이어서 형평이냐 효율이냐, 증세냐 감세냐 같은 뚜렷한 해법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나는 왜 필자가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통 그런 개념들과 보수와 진보도 똑같이 연결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진보나 보수나, 좌파나 우파나 상대적이긴 마찬가지이고 현재적으로 논의되는 서로 상대적인 해법과 서로 연결되는 것에도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지금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뿐이어서 이런 ‘단어’에 집착하는 논의가 소모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보나 좌파나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일 뿐

    당명을 지을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서구에서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발달해 왔지만 해방후 좌우대립이 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졌던 우리 역사에서는 부정적인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제 논의가 자유로와지자 좌우파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주로 쓰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언론들은 특정 대상에 감정적 비난을 가할 때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좌우대립의 기억과 반공주의를 자극하는 의도적인 단어 사용이다. 그것이 졸지에 노무현 정부가 족보도 없는 ‘좌파’가 되어버린 슬픈 사연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론조사 등 국민의 정치적 입장을 묻는 설문에는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단어가 현실적 정치구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족적 소수정당이 아니라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제도권 대중정당을 꿈꾸는 진보신당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한 것은 오히려 다행인 것이다. 그 다음 ‘진보’라는 것에 실질적인 가치를 연결시키는 것은 진보신당의 몫이다.

    다시말해 진보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이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인 것이지 ‘진보’라는 단어를 바꾸고 안바꾸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서 구체적인 의석으로 얻진 못했어도 이후 ‘지못미’ 열풍 등 총선 전후의 언론의 주목 덕에 벌써 의미있는 지지율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그토록 목말라 했던 인지도 자체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의 논의는 서민의 고통에서 시작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신당’이라는 임시정당 냄새가 나는 것을 조금 고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라는 단어까지 빼버리고 완전히 다른 당명으로 바꾸자는 것은 총선과정에서 힘들게 얻는 인지도조차 버리고 보자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럼 총선 전 왜 힘들게 창당해서 선거에 참여했는가.

    정말 ‘진보의 재정립’을 위해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 왜 이런 소모적인 일을 벌이라고 강변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지금 수준의 인지도라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당력을 낭비해야 할 것인가.

    전국단위 중앙정치 투표율이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대중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7대 총선과 비교하여 총 유권자수 대비 득표수를 계산한 각 정당의 실질 득표율을 보면 범보수계열의 득표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범진보계열로 분류되었던 정당들은 반토막이다. 즉, 대중이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제도권내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곧 그동안 범진보진영의 주류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와 거리가 멀었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산이자, 진짜 진보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던 과거 민주노동당의 패배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진보신당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단 급하게 ‘그릇’부터 만들었다면 이제 부터 그 그릇을 넓혀가면서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이 환멸을 느낀 그 지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부동산 거품 등 서민들이 고통받고 한숨짓는 바로 그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뜬구름잡기를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 하자

    그러면서 또한 현재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현실적인 답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에 뿌리박고 진전되어야 뜬구름잡기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진보든 좌파든 보편적 인권, 평등한 사회, 생태적 삶 등 근본적 가치와 현재적인 실질적 의미를 연결지어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 처럼 ‘진보’냐 ‘좌파’냐 ‘초록’이냐 ‘사회’냐 같은 대중들의 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표면적 단어부터 따지는 시비는 건설적인 논의 방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름 딱지 붙이기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제도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왜 그 짓을 자꾸 또 하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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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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