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다
    2008년 04월 21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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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독 ‘진’씨 계열을 좋아했다. ‘진보정당’, ‘진보의 재구성’, ‘진정추’, 그리고 진보신당도 ‘진’씨 계열이다. 심지어는 진중권도 진씨다.

우리는 진보라는 말을 많이도 써왔다. 진보라는 말이 때로는 어떤 말 못할 자랑스러움의 기원이었고, 때로는 위안이기도 했다. 어느덧 진보는 오래된 친구이름 처럼 우리의 마음 한 켠에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잡았다.

진보라는 우상을 파괴하자

그러나 ‘진보’는 정말, 우리가 추구할 영구불변의 가치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말뜻이나 제대로 알아보자.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어떤 고정된 가치를 추구하는 용어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는 단순히 ‘변화’의 수용 여부에 관한 입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냥 기존의 것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면 보수이고 새로운 변화를 도입하자는 입장은 진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진보진영이 FTA를 반대한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한미FTA 경우에도 찬성하는 것이 진보이고 반대하는 것은 보수이다. 왜냐하면 기존 체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외부충격을 끌어와 변화를 유치하자는 입장이 진보이고 이를 거부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 보수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 평가제 도입이 진보이고 기존체제 유지가 보수인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전혀 반대의 개념을 쓰고 있다. 나는 FTA 반대를 ‘진보’로 분류하는 기자들한테 "진보가 무슨 뜻이냐?"고 한 번 묻고 싶다.

이 용어가 어쩌다가 이렇게 쓰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이 바람에 심지어는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자들도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게 되었다.

우리사회에 다소 과대 포장된 ‘진보’라는 용어는 알고 보면 초라한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서태지가 출연하는 자동차 광고에 ‘진보를 향한 열정’이 멋지게 나올 뿐이다.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좌우의 재정립’이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말도 이제 ‘좌우의 재정립’이라는 말로 대체 되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좌파와 우파의 구도’로 전환 되어야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도는 앞서 보았듯이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상대적인 구도인 반면 좌파니 우파니 하는 구도는 매우 안정적인 구도이다. 즉 진보와 보수는 단지 상대적인 가치이고, 그 때 그 때 바뀌는 입장 차이 인 것이다.

이를 테면, 진보신당은 항상 진보적일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예를 들어 진보신당이 만들었거나 혹은 쟁취한 복지 체제를 다른 당이 축소하려 할 때 진보신당이 이를 방어하려한다면 그것은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자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이 된다. 진보당이 보수노선을 취하는 것이다.

반면 좌파와 우파는 서로 명백한 ‘해법의 기초’를 갖고 있다. 효율이냐 형평이냐? 사적 동기냐 공공성이냐? 감세냐 증세냐?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명백하고 원천적인 해법의 기원을 서로 갖고 있는 것이 좌파와 우파라는 대립구도의 기본 특성이다.

또, 좌파와 우파는 근본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대립구도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이고 평등한 대립구도이다. 좌파와 우파 중에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는 선입견은 별로 없다.

반면 진보와 보수의 구도는 언제나 진보가 보수보다 뭔가 좋다는 무언의 인식을 은연 중에 전제하는 경우가 많다. 귀하는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라는 여론조사에서 ‘진보’라는 응답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어감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목표를 단순히 진보신당이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계속 높여가는 것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중들의 머릿속에 효율이냐 형평이냐? 사적동기냐 공공성이냐? 감세냐 증세냐?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 간 대결구도’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투자는 이 ‘새로운 인식구도의 정착’에 집중되어야 한다.

10% 짜리 진보구역에 갇혀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진보정당이라는 규정으로 제한할 경우 부딪히게 되는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기존의 낡은 ‘진보’와 ‘보수’ 프레임 속에 계속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몇 차례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 되었듯이 현 정치지형에는 통합민주당(=정치세력화 된 호남향우회)의 왼쪽블록이 존재한다. 이를 우리는 ‘진보 표’ 라고 부르는데 약 10~13% 정도 된다. 진보신당이 단순 진보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스스로 이 10% 구역 안에서 탈출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며 이 경우 지역구 당선은 꿈꾸기 어렵다.

사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용어도 결국 이 10% 구역 내부에 대한 재편 전략으로 들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진보란 실질적으로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대결 구도를 전제로 통합민주당의 왼쪽에 존재하는 10% 내외의 자투리 블록에 국한된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보의 재구성이란 협소한 전략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민주노동당을 뛰쳐나온 이유는 이 보다 원대하다. ’08년 분리’의 단기 목표는 주체파의 외부 보호막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정치 전반을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재정렬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좌우의 재정립이 목표이다.

이렇게 볼 때 ‘진보신당’의 성장 과정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를 획득하는 것이다. 즉 한국현대사 속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 원인 때문에 현재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된 노동자를 진보신당이 탈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 관건이 된다. 이것은 진보신당의 성장, 집권전략의 핵심인 동시에 한국정치사의 도약을 좌우할 결정적인 관건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지지하는 노동자 획득이 관건

따라서 진보신당은 북한문제를 지렛대 삼아서 평등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한나라당 지지층을 견인하는데 전략적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보수-진보 구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좌-우 대립구도를 창출해 나가야만 기존에 존재하던 통합민주당의 왼쪽 블록을 넘어서는 광활한 활로가 열리는 것이다.

이 전략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좌우의 재정립을 구현하기 힘들다. 결국 진보신당은 좌파라는 정체성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북한문제, 민족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을 개진해 나가야 한다.

진보당이나 진보의 재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제 진보신당도 버리고 진보도 버리고 진보당도 버려야 한다. 진중권만 빼고 ‘진’자로 시작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버릴 준비를 해야한다.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통째로 좌우의 재정립을 추구해야 한다.

당 이름은 중요하다. 당은 우선 이름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표방한다. 따라서 당 이름은 ‘진보’ 같은 상대적 가치 혹은 임시적 가치가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 가치를 제시해야한다. 그것도 ‘민주’ 같은 너무 뻔한 가치가 아니라 ‘초록’ 이나 ‘사회’ 같은 선명한 가치의 표방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진보신당이란 두 가지 차원에서 잘못된 이름이다. 첫째는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당’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신당도 영구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10년 뒤에도 신당이라고 해야 할까?

진보는 외부에서 불러주는 이름

그래서 진보신당은 대중의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임시 당명’ 이었을 뿐이고 실제 정식명칭은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연대회의’였던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진보신당’은 분당용 총선을 치르기 위한 임시 가건물이었다. 우리는 이 가건물을 통해 ’08년 분리’라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 할 수 있었다.

진보는 그때 그때 대중이 붙여주는 별명이지, 그 자체로 우리가 끊임없이 지향할 가치는 아니다. 내가 나를 영원한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자기 팔을 자기가 흔드는 것이다. 한국 민중이 우리를 진보정당이라 불러주면 하나의 훈장처럼 그 이름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불러줘야 할 그 이름을 자기가 스스로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순간 우리는 진보팔불출이 된다.

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지 진보정당의 이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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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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