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좌파는 왜 의회서 사라졌나
    2008년 04월 17일 04: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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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과 14일 양일간 진행된 이탈리아 총선의 개표결과 우파연합이 중도좌파연합을 누르고 승리했다. 야당이었던 우파와 여당인 중도좌파의 득표는 10% 가까이 벌어졌다. 언론재벌 출신의 실비오 베를루스꼬니가 주도한 우파는 46.8%를, 로마시장인 발터 벨트로니가 이끈 중도좌파는 37.5%를 기록했다. 지난 2006년 총선에서 두 세력간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0.1%였다.

실비오 베를루스꼬니는 이로써 한 번의 연임을 포함해 네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지난 2006년 5월 중도좌파연합에 패해 정권을 넘겨준 후 2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베를루스꼬니가 권력에 복귀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새로 구성될 이탈리아 상하원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정치세력이 한명도 없는 ‘좌파 부재’의 의회가 될 것이다. 이는 2차대전후 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이 수립된 이래로 처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는 강력한 노동운동과 반파시즘 투쟁을 통해 형성된 대중적 좌익정당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옛 이탈리아공산당은 자본주의국가의 공산당 중 가장 많은 당원을 보유했다. 그러나 이제 급진적 좌파는 야당 정도가 아니라 원외로 밀려나 버렸다.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이탈리아 좌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총선 결과를 전하는 ‘재건공산당’의 기관지 ‘리베라지오네Liberazione’의 16일자 1면. 총선과 같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무지개좌파’가 의석을 획득했는데 왜 국회에는 없느냐고 묻는 한탄조의 제목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 통합한 올리브동맹

지난 2007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열린 이탈리아 피렌쩨에서 열린 ‘좌파민주주의자Democratici di Sinistra: DS’의 제4회 전당대회는 중도우파와 통합해 ‘민주당Partito Democratico: PD’을 건설할 것을 압도적인 다수당원의 지지로 결정했다. 이로서 서구에서 가장 거대한 공산당이었던 ‘이탈리아공산당Partito Comunista Italiano: PCI’은 그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 됐다.

모든 당원이 참여한 총투표에서 193,784명(75.5%)은 민주당 건설에 합류하자는 다수파의 안을 지지했다. 민주당으로의 합류를 거부한 좌파연합은 당원 38,757명(15.1%)의 지지에 그쳤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거부하지 않았지만 신당이 반드시 ‘유럽사회당PES’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중도파는 24,148명(9.4%)의 지지를 얻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탈리아공산당은 1991년 ‘좌파민주당Partito Democratico della Sinistra: PDS’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현대화된 노선을 채택했다. 전성기보다 많이 축소됐다고 하지만 좌파민주당 첫해의 당원수는 989,708명이었다. 후에 ‘재건공산당Partito della Rifondazione Comunista: PRC’을 만들게 되는 좌익반대파 당원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러나 한번 발동이 걸린 우경화의 흐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좌파민주당’은 1998년 2월 소규모 중도좌파정당을 통합해 ‘좌파민주주의자’로 이름을 바꿨다. 1991년 공산당이라는 이름은 버려도 당의 상징에는 남겨두었던 옛 공산당의 문장, 낫과 망치도 이 때 장미로 교체했다.

결국 ‘좌파민주주의자’는 2007년 ‘민주당’으로의 변신을 통해 이름으로만 남아있던 ‘좌파’라는 정체성을 포기했다. 공산주의자로서의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탈리아 ‘민주당’은 같은 해 10월 14일 옛 올리브동맹을 구성하던 8개 정당이 모여 건설됐다. 참여한 정파들은 중도우파, 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들로 좌파민주주의자는 이들 중 가장 왼쪽의 정파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당의 모델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당’이다.

   
▲ "좌파민주주의자당(DS)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Dove Siete)". 민주당으로의 전환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당대회장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항해 베를루스꼬니도 우파연합을 하나의 당으로 통합했다. 자신의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 F’I과 네오파시스트인 ‘국민연합National Alliance: AN’을 합쳐 ‘자유인민Popolo della Libertà: PdL’이라는 신당을 만들었다.

모스크바에서 워싱턴까지

미국민주당에 대한 이탈리아 좌파의 짝사랑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민주당의 서기장으로 선출된 발터 벨트로니는 15살에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면서 당에 투신한 고참공산주의자였다. 1992년 좌파민주당의 기관지 루니따L’Unità의 편집장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케네디주의자’라고 답했다.

그는 2007년 이탈리아에서 번역 출간된 버락 오바마 자서전에 ‘오바마는 케네디 정신의 계승자’는 내용의 추천글을 쓰기도 했다. 더 나아가 벨트로니는 오바마의 선거구호 "Yes, We Can"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Si può fare"를 민주당의 선거구호로 채택했다.

좌파민주당 서기장으로서 좌파민주주의자 건설을 주도했던 마시모 달레마는 민주당 구상이 현실화되기 이전인 90년대부터 이미 이탈리아 정치가 중도우파-중도좌파의 양당제 구도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건설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벨트로니, 달레마, 안또니오 바졸리노 같은 좌파민주당 우파지도부는 90년대 내내 같은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소속인 영국의 블레어 총리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 더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는 2005년 중도좌파선거동맹인 ‘연합L’Unione’의 총리 후보 선출을 위해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했다. 또 그가 만들었던 정당 ‘민주주의자I Democratici’는 아예 대놓고 당나귀를 당의 상징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당나귀는 미국 민주당의 오랜 상징이다.

민주당은 아직 유럽의회내 정당그룹과 국제연대조직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좌파민주주의자의 마지막 당대회는 민주당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할 가능성을 이미 배제했다. 다정파가 모인 구도상 쉽게 국제조직을 선택하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유럽민주당PDE-EDP’에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유럽민주당은 지난 프랑스 대선에 출마했던 중도 우파 프랑소와 바이루가 만든 정당 ‘민주운동Mouvement Démocrate: MoDem’이 주도하는 연합체로 국제적으로는 ‘민주동맹Alliance of Democrats’이라는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민주동맹에는 미국 민주당의 ‘신민주당연합New Democrat Coalition’이라는 정파가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92년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제3의 길’ 그룹이다.

클린턴은 1990년부터 이듬해까지 ‘신민주당연합New Democrat Coalition’의 전신인 ‘민주당 지도자 회의Democratic Leadership Council’의 의장을 지냈다. 이 기간에 클린턴은 신민주당New Democrats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세를 모으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블레어의 신노동당New Labour은 그 아류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제3의 길Third Way’이라는 표현도 클린턴이 블레어보다 먼저 사용했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90년대 후반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을 대체할 진보주의인터내셔널을 추진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코민테른에 기원을 둔 공산당 중 자본주의 진영 안에서 가장 강대한 조직을 건설했던 이탈리아공산당의 후예들이 찾은 탈출구는 다름 아닌 미국식 정치모델이었다. 무덤 속의 그람쉬가 뻘떡 일어날 일이다.

   
▲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은 이들은 당대회 후 탈당해 ‘민주좌파’라는 신당을 결성했다. 사진은 민주좌파의 당대회 모습.
 

민주당에 반대한 좌파의 이탈

좌파민주주의자의 피렌쩨 당대회에서 민주당 합류에 반대했던 좌파연합은 대회가 끝난 직후 탈당해 2007년 5월 5일 새로운 정당인 ‘민주좌파Sinistra Democratica: SD’를 건설했다.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을 거부했던 이들의 주장에 동조했던 당원들이 함께했으며 1명의 장관, 12명의 상원의원, 21명의 하원의원, 4명의 유럽의원이 동참했다.

당의 대표는 프로디 내각에서 장관을 지냈던 파비노 뭇시가 맡았다. 이외에도 옛 공산당의 유명한 서기장이었던 엔리꼬 베를링게르의 동생인 죠반니 베를링게르도 동참하고 있다.

창당대회에서 발표된 신당의 강령을 보면 민주좌파는 완성된 정당이 아니라 정치운동으로 정의되며 목표는 모든 이탈리아 좌파의 결집이다. 민주좌파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도기로서 정의된다.

이는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전환할 당시 이에 반대하면서 떨어져 나온 재건공산당의 초기 목표와 유사하다. 재건공산당도 초기에는 자신들을 완성된 정당이 아니라 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세력의 규합보다 자기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이름에 ‘당’을 덧붙였다.

하지만 민주좌파가 재건공산당과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재건공산당이 좌익결집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외로운 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했던 것과 달리 민주좌파는 창당하자마자 좌익 신당 결성에 성공했다.

‘무지개좌파’당의 결성

   

▲ ‘무지개좌파’당의 창당대회 포스터. "좌파(Sinistra)와 생태주의자(Ecologisti)의 회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포스터 아래는 창당대회에서 확정된 ‘무지개좌파’의 상징. 이탈리아의 투표용지는 당의 상징이 꼭 들어간다.

 

2007년 12월 8일과 9일 로마에서는 민주좌파, 재건공산당, ‘이탈리아의공산당Partito dei Comunisti Italiani: PdCI’, ‘녹색당Federazione dei Verdi: Verdi’이 모여 연합정당 ‘무지개좌파La Sinistra-l’Arcobaleno’를 출범시켰다.

‘이탈리아의공산당’은 1998년 중도좌파정부에 대한 지지여부를 두고 재건공산당이 내부논쟁을 벌일 당시 정부에 대한 지지를 주장했던 분파가 이탈해 만든 것이다. 옛 스딸린주의 그룹이 중심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재건공산당의 입장에 많이 가까워진 상태다.

다양한 정파가 모인 좌파-무지개는 에스빠냐의 ‘통일좌파Izquierda Unida: IU’와 같은 ‘당들의 당’ 수준의 통일성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정당연합체가 아니라 단일정당으로 등록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다가오는 선거를 위한 연합체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좌파와 재건공산당은 통합정당 건설의 의지가 높다.

신당은 46명의 상원의원, 93명의 하원의원, 13명의 유럽의원이 소속돼 있으며 창당대회는 특이하게 "좌파와 생태주의자들의 대회(L’Assemblea della Sinistra e degli Ecologisti)"라고 이름 붙여졌다.

대회장에는 이탈리아 좌익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고참공산주의자 삐에뜨로 잉그라오가 9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또한 이탈리아공산당의 마지막 서기장이자 좌파민주당의 초대 서기장으로 한동안 정계를 떠나있던 아킬레 옷케또가 지지와 입당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도부는 각 정당의 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재건공산당의 지도자였으며 지금은 하원의장을 맡고 있는 파우스또 베르띠놋띠는 뿔리아주지사인 니키 벤돌라가 신당의 통합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돌라는 강경한 공산주의자이며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에 성실한 카톨릭신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무지개좌파의 총리후보는 결국 인지도가 가장 높은 베르띠놋띠가 맡았다.

당의 상징은 이름에 맞게 무지개를 형상화하고 좌파는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적색으로, 무지개는 생태주의를 상징하는 녹색으로 처리했다. 상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산당들은 이탈리아 좌익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를 넣을 것을 요구했고, 녹색당은 ‘생태주의’라는 문구를 넣을 것을 요구해 대회 3일전까지 결정을 못하다가 무지개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무지개좌파에 참여한 정당들이 지난 2006년 총선에서 얻은 지지율의 합계는 10.2%였다. 여기에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좌파의 세력이 더해진 만큼 무지개좌파는 의회 안에서 강력한 캐스팅보트를 형성해 민주당의 중도좌파정권을 왼쪽으로 견인한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무지개좌파는 10%이상의 지지는 고사하고 의석배분기준인 4% 기준에도 못미치는 3% 득표로 원외정당이 되고 말았다. 하원의 15%를 차지하던 정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좌파의원들

왜 무지개좌파는 지지율확대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지지기반마저도 잃어버린 것일까. 상식적으로 지난 2006년 총선에서 이들 극좌파정당에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노골적으로 우경화한 민주당의 선거강령에 만족해서 그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지개좌파의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거 직전 급조된 정당이라는 점과 우파정권의 출현을 막기 위해 지지자들이 민주당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건설과정에서 반대파가 이탈하고 민주좌파를 건설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지만 무지개좌파가 창당대회를 연 것은 12월이었다. 당시에는 불과 한 달 뒤 프로디 정권이 무너지고 조기총선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결국 신당은 창당하자마자 총선체제로 전환해야 했다.

대중들의 눈에 총선을 코앞에 두고 만들어진 정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는데, 더 큰 문제는 당의 내용, 즉 정책이었다.

무지개좌파는 4개의 상이한 정당의 연합체다. 기원을 따지면 재건공산당, 이탈리아의공산당, 민주좌파 모두 옛 공산당에 뿌리를 둔 정당이지만 벌써 20년 전 이야기이다. 지도부를 구성하는 고참들은 옛 공산당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젊은 활동가들이나 의원들은 역사책을 통해서만 배웠을 뿐이다.

이들은 이미 창당대회 때부터 몇 가지 쟁점사안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인 정책뿐만 아니라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2008년 1월 프로디 정권이 위기에 몰렸을 때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를 놓고 민주좌파와 재건공산당은 서로 다른 입장을 제출했었다.

그래서 무지개좌파의 선거강령은 4개의 정당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짜깁기한 수준에 그쳤다. 유권자들에게는 바뀐 이름만큼 새로운 정책은 없었던 것이다.

   
▲ 무지개좌파에 참여한 정당들의 상징. 왼쪽부터 녹색당, 이탈리아의공산당, 민주좌파, 재건공산당.
 

여기에 무지개좌파의 최대주주인 재건공산당에 대한 지지자들의 실망감도 더해졌다. 재건공산당은 최근 당의 우경화 문제를 놓고 분열을 겪었다.

조직은 통합, 정책은 따로

중도좌파 진영 내부에서 민주당 구상이 논의된 것은 길게는 10여년 전이지만 통합이 현실화 된 것은 2006년 4월 총선 이후다. 토론과정에서 민주당 건설 문제를 놓고 좌파민주주의자 당내부의 좌우파가 격돌하면서 분열의 가능성이 점차 고조됐다. 베르띠놋띠와 재건공산당의 다수파는 좌파민주주의자 당내 반대파(좌파)가 떨어져 나올 경우 오랜 숙원이었던 ‘좌파통합’을 성사시킬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통합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당 정책을 보다 오른쪽으로 옮겨서 좌파민주주의자 이탈파와의 접점을 만들고 공동활동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프로디의 중도좌파정권에 참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후자를 위해서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당의 일관된 입장을 수정하기도 했다. 특히 반전운동의 중심에 있던 재건공산당이 정치목표 실현을 위해 이탈리아군의 파병연장안에 찬성한 것은 당내뿐만 아니라 유럽의 진보정당들로부터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 내부에서는 베르띠놋띠 다수파의 패권에 대항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롯한 좌파들이 1년이 넘게 지도부에 대해 논쟁을 제기하고 당내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당권파는 밀어붙이기를 통해 무지개좌파를 탄생시켰다. 결국 당내부의 좌파 중 최대 그룹인 ‘비판적좌파Sinistra Critica’는 1월 전국총회를 개최해 재건공산당 탈당과 반자본주의좌파의 광범위한 결집을 위한 운동을 선언했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던 때였다.

이탈리아판 ‘비판적 지지’

선거제도도 좌파몰락에 한몫했다. 지난 2005년 개정된 이탈리아 선거제도는 정권의 안정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제1당이 340석에 미달할 경우 이를 자동적으로 채워주도록 돼있다. 이탈리아 하원은 총 640석으로 340석은 54%에 해당한다.

이 선거제도는 베를루스꼬니 재임시절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개정한 것이다. 우파의 장기집권을 위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정작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6년 총선에서는 베를루스꼬니가 피해를 봤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군소좌파들을 의회에서 몰아내 중도좌파를 고립시키고 득표율에서의 상대적인 승리를 의석수이 절대적인 승리로 만든다는 베를루스꼬니의 의도가 적중했다.

   
▲ 선거 때마다 말을 바꾸는 베를루스꼬니를 피노키오에 비유한 중도좌파의 포스터. 지난 2006년 총선의 풍경이다.
 

과거에는 총선 결과가 나온 이후에 정당간의 논의를 통해 집권연합을 형성했다. 그래서 극좌파 정당이 직접 정권에 참여하지 않아도 중도좌파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반면 개정 선거제도에서는 1당이 무조건 과반을 형성하기 때문에 우파연합이 중도좌파보다 1표라도 더 받으면 우파정권이 곧바로 탄생하도록 돼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무지개좌파에 표를 던지면 베를루스꼬니가 총리가 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도 사회당 후보가 1차투표에서 자신을 찍지 않고 다른 좌파후보를 지지하면 결선에 극우파인 르뺑이 어부지리로 올라간다며 좌파유권자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호소했다. 같은 일이 이웃 이탈리아에서도 재현됐다.

결국 2년 전에 극좌파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상당수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좌파에서 중도좌파로 유입된 표보다 중도좌파에서 우파로 도망간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 총선이 프로디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치러졌고 현재 이탈리아의 모든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무지개좌파는 좌파와 우파의 득표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이탈리아 정치구조 속에서 자신들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서 중도좌파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우파정권의 출현을 막기 위해 무지개좌파의 희생을 강요당한 셈이다. 무지개좌파와 재건공산당이 정치적 성장을 위해 반신자유주의 정책과 사회대안들을 끊임없이 양보하거나 포기한 대가는 의회로부터의 축출이었다.

‘제헌회의’, 인민의 상상력을 결집하는 정치

무지개좌파는 민주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으로 자임하며 선거에 임했지만 무지개좌파를 비판하며 다른 대안을 주장한 좌파도 존재한다.

이번 총선에는 무지개 좌파 외에도 재건된 ‘사회당Partito Socialista’, 2006년 재건공산당의 우경화에 반대하며 탈당한 ‘노동자공산당Nessuna Partito Comunista dei Lavoratori’, 역시 재건공산당에서 이탈한 ‘비판적좌파’도 참여했다.

사회당은 미국의 친구들보다 유럽의 동지들에 더 호감을 느끼는 유럽주의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사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복지 문제만 빼면 민주당과 정책차이가 별로 없다. 무지개좌파는 ‘너무 좌익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사회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는 분명 민주당으로 변신한 중도좌파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회당을 포함해 ‘반민주당, 비무지개좌파’의 정치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득표는 모두 73만여표다. 4개의 정당이 모인 무지개좌파의 성적표 112만표에 비해 결코 초라하지 않다. 양자의 득표를 합치면 투표자의 5%에 해당한다.

‘반민주당, 비무지개좌파’ 세력 중 주목할 만한 집단은 ‘비판적좌파’다. 무지개좌파는 사민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모든 좌파정당을 통합한다는 오랜 꿈을 실현하는 출발점이었다. 반면 이름그대로 비판적 좌파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흐름을 대변한다.

   
▲ ‘비판적좌파’의 상징을 이용한 선거포스터. 자신들은 ‘생태주의자-공산주의자-여성주의자’로 정의하고 있다.
 

‘비판적 좌파Sinistra Critica’는 제4인터내셔널의 이탈리아 지부인 ‘붉은 깃발Bandiera Rossa’그룹이 비트로츠주의 활동가들과 통합해 만든 재건공산당 내부의 정파였다. 스스로는 자신들을 정당이 아닌 운동으로 규정하지만 1월 탈당한 이후로는 상원의원, 하원의원 각 1명씩을 보유한 원내정당이 됐다. ‘붉은 깃발’그룹은 재건 공산당 초기 베르띠놋띠 그룹과 연합해 당의 급진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 1월 27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창립총회에서 비판적 좌파는 재건공산당의 경험과 다양한 사회운동의 영역을 결합해, 무지개좌파의 왼쪽에 반자본주의 좌파연합을 재건할 것과 함께 반자본주의 제헌회의l’assemblea costituente를 제안했다.

대회 결의문에 따르면 제헌회의는 민중의 평의회로 다음 세가지 목표를 가진다. ▲노사협조주의를 거부하는 노조 활동가, 급진적인 여성주의자, 생태주의 운동, 청년운동 같은 사회운동의 주체와 그들의 역동성을 상호 연결한다. ▲중도좌파정부로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민주당에 반대하는 가운데 우익에 대응하는 사회적 대안을 제시한다. ▲선거에 불참하지는 않지만 제도화된 정치활동으로부터 자주성을 견지한다.

제헌회의라는 이름으로 인해 레닌주의의 단순 반복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정당모델을 정립하고 이를 가장 잘 실천했다고 평가받았던 재건공산당의 경험과 유럽사회포럼의 교훈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아직은 선언 단계인 만큼 구체성보다는 추상성이 더 강하지만 ‘인민의 집Casa del Popolo ‘운동 같은 창의적인 활동이나 전설적인 공장평의회 운동처럼 기층대중운동이 다른 유럽 보다 활발했던 이탈리아인 만큼 전세계적으로 정체상태에 있는 반세계화운동에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탈리아 총선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진보진영이 미국식 양당제를 추구하는 것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사회주의좌파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상대적 진보’, ‘자유주의좌파’, ‘양당제’, ‘유연한 경제-노동-복지 정책’, ‘노동조합과의 정책연대’라는 민주당 모델은 영국 신노동당, 일본의 민주당 등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실패했지만 열린우리당도 민주당 모델의 한국판 실험이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변혁을 포기하고 미국헤게모니를 인정한 좌파의 유일한 선택지이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자주파의 민주노동당도 필연적으로 미국 민주당 모델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베를루스꼬니가 만든 선거제도로 베를루스꼬니가 득을 보는 총선 결과를 보면 정치개혁의 문제를 의회 안의 논의로 묶어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법과 제도 자체는 중립적이며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법과 제도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항상 결과를 미리 전제한다. 따라서 선한 의도, 좋은 정책, 성실한 활동을 통해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잘못이다.

정치제도의 개혁은 인민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으로 대운하반대나 비정규직투쟁 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를 개량주의, 의회주의로 치부해 버리는 진보진영 일각의 태도는 자발적 패배주의일 뿐이다.

이탈리아 총선 직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웹사이트에는 개표 당일 밤 한 민주당 지지자를 인터뷰한 동영상 리포트가 올라왔다. 지지자는 낙심한 얼굴로 프로디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패배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베를루스꼬니 정권 아래에서 이 나라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파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파정권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묘사했다.

동영상의 인물은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세계화는 싸구려 상품들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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