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당신의 죄’요
    2008년 04월 11일 01: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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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명품 역세권개발, 서울대학교 국제캠퍼스 유치, 종합대학병원유치, 그린벨트 320만평 해제’
 
투표 날이기에 후보들의 공약을 세심하게 읽어나갔다. 사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개보다 못한 선거판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나온 후보들의 공약도 다를 것이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도 더 나아가 정당의 정체성도 없다. 단지 환심에 의한 ‘당선’만이 목적에 있을 뿐이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

"누나 지금 당적이 어떻게 되지? 여기서 ‘민노’만 나오는데 찍어줘야 하나?’ 선거 전날밤에 날라 온 후배의 메시지다. "후보나 정당투표에서 그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을 찍어야지." 내 후배는 아마도 민노당 후보와 진보신당을 찍었을 것이다.

현재 투표방식은 기명된 후보에서 고를 수밖에 없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두 가지 외에는 없다. 마땅한 후보나 정당이 없다고 해서 ‘기권’을 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 46%. 투표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마뜩하지 않다 해서 냉담해버리면 현재의 선거정치 결과에 대해 갑론을박한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최선’을 찾아야 한다는 ‘악법도 법’이라는 것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들이 죽는 거니까
 
정당, 정책도 정체성도 없는 사상 최악의 선거판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예상했었다. 농번기에다 여러 명이 농사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눈 돌릴 틈도 없었지만 닥쳐오는 ‘재앙’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절박했다. 왜냐하면 ‘재앙’이 가장 빨리 덮쳐오는 대상은 이미 거덜날 대로 거덜 난 ‘가난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위의 공약은 서민을 외치든 중산층을 외치든 ‘대운하 건설’, ‘뉴타운 건설’, ‘민영의료화’ 등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전국의 대부분의 후보들이 내건 유사한 공약이며,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은 ‘표심’이라 여기지 않든지 무지몽매로 우롱하는 처사들이다.

그린벨트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린벨트를 해제하게 되면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쫒겨나는 것이며, 명품 역세권은 돈이 있는 자들의 소비처일 뿐이고 가난한 자들에게 위화감을 더욱 조성하는 일이며, 대학병원이든 대학이든 비싼 의료비만 부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학원도 못 보내는 가난한 자들은 엄두도 나지 않을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가난한 사람들은 대운하의 재앙에서 의료, 교육에 이르기까지 직접 피해 당사자이다.
 
‘민의’는 ‘유권자의 54%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든 ‘경제성장’이라는 달콤한 귓속말에 속아든 서민층이든 이번 선거에 투표를 했을까? 그들은 거의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정치’선거라 할 수 없는 것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대운하 반대니 하는 이 ‘재앙’을 머리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도 그들의 게으름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투표를 해봤자 좋아지지도 않는데……’ 이것이 이들의 응답이다.
 
46%의 투표율에서 당선된 사람들.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일까? 46%에서 과반수 이상 득표율을 얻어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역에서 20%의 지지율도 못 얻은 것이다. 그런 정당이, 그런 사람들이 국가정책을 결정한다. 어린아이들조차도 흉내 내지 못할 억지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험상한 일은 깡패나 강도 집단이 하는 일이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기권’표를 인정해야 한다.

기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투표하지 않음’으로 표시하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다한다면 이 선거방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기권을 표시함으로서 ‘기권’도 표로 인정되어야 하는 일이다.

투표할 정당이나 투표할 후보가 없는데,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은 ‘내가 후배에게 권한 것’처럼 차선을 선택하라는 일이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고 차선도 없으면 투표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수표 획득’ 방식이 현재의 선거방식에는 결코 ‘민의’를 반영할 수 없다. 이명박이 말하는 ‘민의’가 아니다.

민의는 국민의 54%가 2008년 총선, 정치에 저항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항’이 아니라 ‘냉담’으로 표현되었고, 저항이든 냉담이든 현재의 결과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선거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권을 ‘표’로 인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 지역에서 투표율과 득표율에 따라서 전체 인구의 50%가 되지 못하면 ‘당선 없음’으로 되어야 한다. 그 결과 재선을 하든지 ‘국회의원이 없는 지역구’가 되든지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없다 하여도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불편하지 않다. 어차피 국회의원들이란 중앙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며 오히려 ‘지자체’의 독립된 정책실행에 방해 역할을 더 할 뿐이다.

정당투표로 얻은 비례대표들이 오히려 비례대표의 ‘의미’를 가지고 중앙정치를 하면 되는 일이다. 지역 국회의원 선거는 엄청난 ‘비용의 증가’만을 가져올 뿐이며, 자신이 치룬 비용을 댓가로 당선 후에 그 비용 찾기에 연연해하는 일들이 주로 이루어질 뿐이다. 그것이 ‘비리’가 아니겠는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이 사회이며 정치판이다.
 
당신의 죄 값으로 ‘온몸으로 저항하라.’

선거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정치판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면 현재의 선거방식에서 54%의 유권자들은 ‘재앙’을 달갑게 받을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생명에 대한 ‘재앙’에 또한 몸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재앙’ 그것은 당신의 몫-죄값을 치루는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당신의 죄’이기 때문이며 당신의 죄는 생명의 ‘재앙’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불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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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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