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영원한 청춘을 노래하다
    2008년 04월 03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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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백수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대한민국 욕망공화국』(해피스토리)이 4월 중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의 저자는 “욕망가치론이 노동가치론의 대안적 가치이론으로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욕망이 만인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리라”고 주장한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책 내용 가운데 일부를 모두 여덟 차례 걸쳐 이어 싣는다. 이 책의 저자 신승철은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펠릭스 가타리의 욕망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다중생활도서관 노동자의 책’ 공동대표이다. <편집자 주>

<연재 순서>

① 백수, 영원한 청춘을 노래하다
② 우리에겐 대마초를 권해줄 친절한 어른이 필요해!
③ 모텔로 피서를 떠난 이유
④ 욕망은 웃기는 걸 좋아한다
⑤ 우리 모두는 잠재적 동성애자다
⑥ ‘어륀지’, 대한민국은 왜 영어몰입교육에 열광하는가?
⑦ 땅사랑 정부, 땅을 사랑한 게 죈가요?
⑧ 8시 국무회의, 과로내각 구성되다

   
 
 

내가 백수가 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대학 때 취업에 대한 준비를 그리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다. 나는 군대를 갔다 온 뒤 과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여름방학 때에는 아이스크림 공장에서도 일을 했으며, 학기 중에는 은행경비도 했다.

어느덧 나는 졸업반이 됐고, 처음으로 여러 곳에 입사원서를 썼다. 그러나 모두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열 번 정도 입사원서를 낼 때쯤, 나는 졸업을 했다. 졸업식에는 부모님이 오셔서 나에게 꽃다발을 건넸지만, 무척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학사모를 쓰고, 나의 대학생활은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상념에 젖을 무렵이었을까? 나는 어떤 통신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합격했다는 연락을 휴대폰으로 받았다.

비록 계약직 직원이었지만 첫 출근은 가슴이 설레었다. 나는 사무를 보조하는 일을 하면서, 집에서 틈틈이 영어를 공부했다. 계약직 직원은 정규직에 비해서 월급이 3분의 1 정도였으나 정규직과 일은 동일하게 했다.

그 계약직 직원생활 동안 나는 무척 우울했다. 나의 가치가 절반 정도도 안 된다는 것도 그랬지만, 조직에 융화하지 못하고, 늘 주변에 배치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들은 우리사주를 받고

어느 날이었다. 그날 업무가 거의 끝나갈 때였을 것이다. 나는 사무실의 분위기가 너무도 활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여직원들은 농담을 건넸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내가 정규직 노조활동을 하는 어떤 직원으로 어렵게 얻는 정보로는 회사의 사원들에게 ‘우리사주’가 분배된다는 소식이 공지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사주’는 나의 월급의 두 배였다.

물론 나는 계약직이라서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쓴 담배를 피우고, 차별이 인간성을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과장실에 찾아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과장에게 수많은 얘기를 쏟아 붓고 마지막으로 심한 욕을 해주고 사표를 냈다. 물론 다른 계약직 직원들은 처자식들이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였다.

첫 직장의 경험 이후로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 절망의 심연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게임방에서 하루를 보냈으며, 부모님을 슬금슬금 피해 밤에 집에 들어갔다. 입사원서를 쓰는 것도 일상적인 일부가 되었으나, 나에게 어떤 의미도 던져주지 못했다.

게임방에서 입사원서를 이메일로 발송하고, 얼마간의 용돈으로 하루 종일 게임을 했다. 게임과 아르바이트, 구직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새로 찾아간 직장에서도 최초의 문제에 동일하게 봉착할 때가 많았다.

학원 강사와 과외도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나에게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차별과 위계가 등장하면 나는 반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다. 나는 변변한 직장이 없는 청년이었고, 사이버머니를 꽤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현금은 얼마 되지 않는 아마추어 게이머였다.

사이버머니만 많은 ‘아마추어 게이머’

실업과 비정규직을 오가는 사이클은 굉장히 피곤했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경우와 돈은 있은데 시간이 없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나는 약간 돈을 벌게 되면 잠수를 탔다. 방 밖을 나가지 않는 은둔의 생활이었다. 낮과 밤이 뒤바뀐 나는 나만의 우주를 창조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 비정규직의 일들은 원래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일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실업의 상태에서 나는 컴퓨터와 게임을 즐겼고 밤마다 컴퓨터와 게임을 연구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여러 가지 책을 읽었으며, 노래를 듣고, 시를 지었다. 블로그를 넘나들며 대화를 했으며, 무언가를 수집했다.

밤은 아주 짧았으며 화려했다. 새벽이 와서야 잠이 왔다. 새벽에 몰래 라면을 끓여먹고, 인터넷신문에서 중요한 부분을 스크랩해서 리플을 달고, 미니홈피를 관리하고, 메일을 보내고, 채팅을 하고, 그러면 아침이 왔다. 아침에 잠이 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저녁에 일어날 수 있었다.

   
 
 

비정규직 상태에서 나는 무척 신경이 날카로웠다. 존재의 불안정과 그로 인한 좌절감은 분노가 되어 동료들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다투기도 했다. 늘 주변에서 허드렛일을 했으며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 끼어 본 적이 없었다.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나는 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내게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루는 지루했으며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늘 느껴야 했다.

내가 그나마 고소득의 비정규직이 된 것은 실업 상태에서 꾸준히 읽었던 신문기사와 꾸준히 썼던 리플과 꾸준히 했던 영어 공부 덕분이었던 것 같다. 논술첨삭과 번역, 투고와 같은 것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수집이나 게임과 컴퓨터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실업의 청춘은 영원하다

그나마 비정규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나름대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정규직을 구할 수 없는 고용불안에서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선택하였던 것이,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 비정규직을 이용하는 것으로 전도되었다.

꾸준히 내공을 쌓은 덕분에 나는 30세가 훨씬 넘어서야 비정규직으로 고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일들을 했으며 또 그만두었다. 실업의 기간이 내겐 더 바쁜 일상이었으며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빛은 싸늘했으며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나는 고독하지 않으며, 세상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채팅을 하고 블로깅을 했으며,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리플을 달았다. 실업 상태였던 20대 때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나의 청춘은 무척 짧았으므로 영원히 청춘이다.”

실업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청춘인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히 청춘으로 살아가도록 우리가 노력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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