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두려워 말라
    2008년 02월 18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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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정부가 곧 들어설 시점 또는 국면이다. 자칫하면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부나 남미 몇 나라의 정부같이 ‘돌라리사시온’(dolarizacion, 달러 환율을 1대 1로 하겠다는 아주 난감하고 황당한 정책이었음)까지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최근 영어 정책 방향 격변의 광풍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참여 정부에 대해서는 무슨 할 말이 더있으랴. 그리고 이제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 참여정부, 민노당의 변화’, 이 세 가지 색깔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복잡한 국면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정치를 해석하는 사람들이나 실제 몸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정당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는)은 정치 지형이 변화하는 시점 또는 지형적 위치 파악을 정확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현 국면을 정확하게 해석하여야 하고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맞게 될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는 아직 우리가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이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언어의 귀재들이다. 자칫하면 우리는 깜박 속아넘어가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생명 안전성’(Bio-seguridad)이란 용어가 있다. 이 말만 들어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유전자 조작 식품’을 허용하는데 이를 관리하겠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내세우는 교육 정책 격변을 ‘교육의 자율화’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 의미가 그럴듯해보이는 것과 같은 식이다.

농진청 폐지, 멕시코도 그랬다

   
▲ 주식인 옥수수의 보호를 외치는 멕시코 농민
 

우리와 중남미는 지구본을 보면 완전히 거꾸로 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같이 남미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 볼 때는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앞으로 새 정부가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겠다고 하는데 멕시코도 나프타(NAFTA)를 발효하기 전에 이런 농업진흥기관을 폐지하였다.

2008년 1월 1일부터는 멕시코에 들어오는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농산물이 완전히 개방되었는데 멕시코 사람들의 주식인 옥수수가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

1월 31일 멕시코 시티 중심부에서 농민단체는 격렬하게 시위하면서 나프타의 농업관련 조항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무제한의 개방과 세계화에 제한을 가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멕시코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태연히 국회에서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1990년대는 우리에게나 중남미에게나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본다.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이 시기부터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상을 깨트리고 신자유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과감한 변화의 길에 들어선다.

예를 들어, 중남미 예수회 지역회의의 2007년 아젠다는 “다른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한다”였고 2008년의 그것은 “정치는 죽었다. 정치 만세”이다 얼마나 변화의 열망이 큰가를 알 수 있다.

"정치는 죽었다"

그 변화의 첨병은 90년대의 일반 대중, 시민, 지식인들이 주도한 ‘사회운동’이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뚫고 ‘거리의 민주주의’를 통해 그 힘을 발휘한 원주민, 실업자 등 도시 빈민, 인권, 여성, 학생, 소농, 생태 운동을 말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우리는 거꾸로 간다. 1990년대부터 ‘개혁’이란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로 성큼 성큼 나아갔다. 이제는 아예 고속으로 질주하려 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신자유주의적 흐름 때문에 상징적(문화적) 자산에 대해서도 물신적 상업화가 심하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중남미의 사회운동은 사회적 약자들의 외로운 운동이 아니었다. 이들 운동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은 지식인이 맡았다. 구체적 사회 현실에서 가장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서부터 새로운 인식론적 연구를 출발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철학적, 담론적 층위에서 오랜 유럽중심적 프레임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려 한 연구 그룹이 있어 주목된다.

주로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의 학자들과 이들 나라 출신의 미국학자들로 이루어진 ‘근대성/식민성’ 연구 그룹을 말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체제의 밑에 숨어있는 근대성/식민성의 거부와 새로운 탈식민성의 비전 제시를 위한 이론을 인식론적으로 제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그룹의 일원인 미국 듀크 대학 교수인 월터 미놀로는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반혁명”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탈식민성의 구체적인 예로 에보 모랄레스 정부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토지를 상품으로 보는 점에서는 개인소유/국유화건 또는 자유주의/사회주의건 마찬가지인데 반해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시각은 토지를 어머니의 품으로 생각하여 소유할 수 없다는 다른 인식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넘어서

다시 말해 단지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며 대안을 연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체 서구 근대문명의 지식과 권력의 인식론적 전제이며 일종의 권력관계인 근대성에 대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비판을 가한다.

말도나도 또레스는 “서구 근대 철학의 최대의 문제는 그 급진적인 회의주의를 선별적으로 적용한 데 있다. 결코 진지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식민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고 말해 서구의 근대성의 편향성 또는 제국중심성을 지적했다.

또한 산티아고 까스뜨로 고메스에 의하면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세계-체제가 대표되지 않고 그러므로 눈에 안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눈에 안보이는 이 체제의 성격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흔히 근대 체제 즉,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의 쌍생아가 시작된 것을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본다. 그러나 남미 사람들(원주민들)은 ‘근대성/식민성’을 몸으로 격렬하게 치르는 체험을 이미 16세기초부터 겪었다. 페루의 사회학자인 아니발 끼하노는 “근대성, 자본주의는 스페인의 중남미 정복 때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최근 <프레시안>에 실렸던 인종주의 비판에 대한 글이 이런 시각을 일깨워 준다. 그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16~17세기의 유럽인들은 중남미의 원주민 문명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무조건 야만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들을 보통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아 학살과 착취를 감행했던 것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에서는 1990년대 사회운동의 전위로 원주민 운동이 성장하면서 2004년에는 서구 문명과 원주민 문명의 상호적 대화와 공존을 유토피아로 하는 범학제적인 대학(Universidad Intercultural de las Nacionalidades y Pueblos Indigenas “Amawtay Wasi” – 이 말은 “지혜의 집”을 뜻한다고 함)이 설립되기도 한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가 중남미를 이전의 잣대로 인식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명박, 중산층 이기심 자극하는 우파 포퓰리즘

‘먹고 살게 해달라’는 절실한 사회적 요구를 해결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어 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부는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부이다. 왜냐하면 공약 실현이 불가능하고 그냥 듣기 좋은 수사로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회적 양극화로 고통받는 어려운 사람들의 사회적 요구가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중산층의 불안을 파고 드는 전략이 성공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중산층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격렬하게 변화시켜 고급 사립학교와 대중적 공립학교의 수준차를 현저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중남미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우리에게도 체계화시키겠다는 의미와 같다.

중남미가 오늘의 중남미와 같이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하고 문제투성이인 나라들이 된 가장 큰 구조적 이유가 바로 교육의 양극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중남미의 지식인들이 탈식민성의 비전으로 중시하는 것도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일부 장학금을 주어 고급 사립학교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은 중남미에서 많이 쓰는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책이다. 인수위에서 ‘통신 요금 인하’ 운운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런 선심성 복지정책이 많이 나올 것이다.

국민이 노망 들린 것이 아니다

   
▲ 라끌라우(Ernesto Laclau)는 포퓰리즘을 무조건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국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은 중도와 실용이 그럴듯해 보여 표를 찍었다.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국민이 노망들려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렇게 대중을 유도한다고 한다.

정치학자 샹탈 무페가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란 책에서 분석하였듯이 유럽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 본질적 속성상 국민 모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의 민주주의체제에서 치르는 선거에서 대중은 이를 간파해내기가 쉽지 않다.

포퓰리즘은 무척 애매하고 양면성을 띠고 있는 담론이다. 포퓰리즘을 정확히 이해하자면 정치학자 에르네스토 라끌라우가 지적한 ‘사회적 요구’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회적 요구’는 일반 대중이 거의 대부분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권력 배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억압되어있는 소위 ‘타자화’되어 있는 남미에서 치열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남미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쉽게 그리고 많이 태어났다. 다시 말해 라끌라우는 포퓰리즘을 무조건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부는 대부분 우파 포퓰리즘 정부와 그냥 포퓰리스트 정부 둘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차베스 정부와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정부 등을 서구의 학계와 언론 등에서 포퓰리스트 정부로, 즉 안 좋은 의미로 호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겠다는 연설을 많이 하고 그러나 실제 정책에서는 이들을 배제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부들을 이들 서구의 지식, 담론 권력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그냥 민주정부라고 부른다.

급진적 포퓰리스트를 두려워 말라

민주노동당에서 탈주하여 새로 출발하려는 좌파 정당은 급진적 포퓰리스트란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90년대 말의 김대중 정권 때부터 본격화한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급진적으로 함께 할 정치세력이 절실해졌다. 그것이 역사적 소명이다. 엘리트적으로 지도하면서 관념적인 ‘민중’을 이야기할 때는 지났다. 그만큼 절박한 지형으로 우리를 몰아온것이 신자유주의 체제다.

남미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미 급진적인 정치세력이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마치 로켓처럼 뜨거운 열정의 불꽃을 낸 경우가 많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이미 1970년에 교조적 사회주의 정당인 베네수엘라 공산당에서 분리된 ‘급진적 동기’(La Causa Radical, 약자로 LCR)란 이름을 가진 극소수로 출발한 좌파 정당이 있었다. 운동적이면서도 정당 조직이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탈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MAS라는 정당을 만들었는데 그 당시 유럽의 ‘신좌파’ 운동을 받아들여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을 가진 충분히 전략적이고 진보적인 조직이었다(이 MAS 정당의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인 테오도르 뻬꼽은 나중에 베네수엘라에서 ‘좌파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언술한 대략 난감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MAS의 지도자인 알프레도 마네이로는 MAS가 그들이 원래 몸담았던 베네수엘라 공산당의 가장 보수적인 정파를 애매하게 받아들인 것을 비판하고 다시 탈당하여 극소수 정당인 LCR을 창당하였다.

이 LCR이 베네수엘라 역사를 진보로 견인하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고 최근의 베네수엘라 역사를 분석한 역사학자 마르가리타 로뻬스 마야는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아주 극소수로 사회적 명망가들이 아니었지만 새로운 전략과 창의적인 방식으로 어느 지방의 생산 공장과 가난한 동네로 파고 들었고 아주 밑에서부터 급진적 운동을 시작했다.

과감한 분리가 옳은 이유

중앙정부의 권력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주지사 선거와 카라카스 시장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지방선거에서는 눈부신 성과를 보였고 차베스 정권의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차베스 자신이 마르타 하네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물론 필자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좌파 정당도 이런 방향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베네수엘라는 정치지형도 역사도 다르고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를 둘러싼 현재의 국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의 좌파 정당이 역사적 소명의 단계에서 교조성 때문에 그 사회의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다면 과감하게 분리하여 새로운 정당을 시작하는 것이 백번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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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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