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많은, 지긋지긋한 애인과 작별하다
    2008년 02월 16일 1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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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가입 5년만에 탈당계를 냈다. 미뤄온 일을 처리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일까. 마음은 그저 냉담했고, 절차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사무처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넉 달여 동안 당적 유지와 탈당 사이를 헤매던 탓에 탈당으로 결론을 내려 홀가분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게 탈당은, 헤어지기에는 꿈과 추억이 너무도 많은 지긋지긋한 애인과의 작별과도 같았다. 민주노동당에 꿈을 싣고 미래를 그렸으며, 민주노동당을 통해 세계와 소통했기에 지난 5년간의 연애를 하루 아침에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탈당은 그 고민에 종지부를 꽝 찍는, 돌이킬 수 없는 굿바이 선언이었다. 그리고 나는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개선될 여지가 없는 애인을 과감히 차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이유 모를 갑갑함과 우울함이 몰려왔다. 탈당으로 정리된 선택의 다른 한 편에서는 지난 5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추억들이 ‘도대체 그 시간들은 무엇이었냐’고 물어왔다.

이 글은 그 시간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아름다웠던 시간들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에 가깝다.

버스에서 흘러나온 뉴스

2002년 6.13 지방선거가 끝난 후의 감격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당지지율 8.1%. 이 뉴스를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접한 나는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뉴스의 앵커는 분명 건조하게 8.1%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떤 장막이 살짝 걷히고 역사의 피가 도는 기분을 느꼈다. 진보의 숨과 맥박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비로소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진보정치>에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 중앙당사를 방문한 그 때. 민주노동당은 여의도 두레빌딩 903호에 입주해 있었다. 정당이 한 층이 아닌 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조금 놀라웠지만, 공간의 협소함이 주는 조직의 왜소함 따위의 우려는 이내 사무실의 자유롭고 생기 가득한 분위기에 날아가버렸다.

상근자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조직과 회사에서도 볼 수 없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민주노동당의 8.1% 저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당은 부족한 책상 탓에 ‘메뚜기’를 뛰는 자원봉사자들로 늘 넘쳐나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정점에 달했다. 굳이 공고를 내지 않더라도 시민들이나 학생들, 운동단체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일거리를 달라”고 했다. 끊임없는 당원가입 문의전화는 너무도 익숙한 일상풍경이었다.

<진보정치>도 행복했다. 광고 없이 순수하게 구독료만으로 운영되는 <진보정치>는 당원증가와 더불어 조금씩 부수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1천 부씩 늘어날 때마다 후원회와 더불어 조촐한 기념파티를 벌였다.

성질 안 좋기로 이 바닥에서 악명 높은 이모 국장의 고함도, 담배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은 사무실에서 매주마다 이틀밤을 꼬박 새운 밤샘도 힘들지 않았다(정말? 사실 조금 힘들기는 했다). 민주노동당 긴 역사 가운데 한 페이지를 우리는 기록하고,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이 회비 1만원씩 거둬 만든 상조회비, 그 알량한 것을 쪼개서 <진보정치> 기자에게 나눠주던 촌지-그때 기관지 기자들의 월급은 ‘거의’ 없었다-를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 무렵,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성이 현실로 다가올 무렵, 우리는 <진보정치>가 지하철 가판대에 나란히 걸리는 그 날을 상상했다.

아침마다 무료 신문과 각종 일간지로 넘쳐나는 지하철을 볼 때마다 저 가운데 <진보정치>를 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보수신문으로 빼곡한 틈바구니 속에서 숨 쉴 틈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꿈꾸기도 했다.

눈물 나는 사연들

전국의 2백여 개 지구당을 매주 전화하며 활동들을 취재할 때 기자들은 때로 감격으로 물들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지역 지구당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감동들을 안겨주었다.

지구당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원들이 집단으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연, 민주노동당 당원 가입문의 현수막을 1년 내내 아파트 베란다 밖에 걸어놓는다는 당원의 이야기, 퇴근 후면 민주노동당 조끼를 매일같이 챙겨 입고는 당 전도사가 되어 동네방네를 순회한다는 당원.

‘진보사랑’(민주노동당 대통령 선거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발행했던 채권으로, 상환기한도 이자율 명시도 없는 1만 원권 채권. 당시 노회찬 총장은 진보사랑 채권은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상환하겠다고 했다)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동원했던 갖가지 우스운 해프닝들, 다른 지역에 분회를 만들기 위해 1시간 차 타고 가서 2명이 모여 분회모임 했다는 이야기.

그런 소식들을 취재할 때마다 <진보정치> 기자들의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민중이 직접 정치를 열어가는 현장을 날 것으로 접하고 있음에 뿌듯해했다.

나는 2004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일을 기억한다. 그 날 나의 발걸음과 내가 숨쉬는 공기는 첫사랑의 설레임과 같았다. 구름 위를 걷는 듯 발걸음은 가벼웠고, 공기는 차고 신선했다. 당원들의 피땀은 이제 결실을 맺을테고, 나는 새로운 기사를 쓰게 될 것이었다.

   
  ▲2004년 총선 승리를 기뻐하는 모습. 누가 4년 후 오늘 모습이 이럴 것이라고 상상했을까.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나의 꿈, 우리 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나는, 집에서 받아보던 <진보정치>가 더 이상 읽기 어려운 신문임을 알고 구독해지 신청을 했다.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권영길을 찍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선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원인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당의 전망(나는 선거기간 동안 당으로부터 ‘이것이 공약이다’라는 메일 한 통조차도 받지 못했다)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당이 아니었다.

자주파 조교가 있는 꿈 속 군대

2월 3일 당대회를 앞두고 나는 아주 해괴한 꿈을 꾸었다. 군대 근처는 가보지도 않은 내 꿈에 군 훈련소가 나타난 것이다. 거기서 한 얼굴 없는 사람이 군용 모자를 쓰고 지휘봉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여기가 자주파의 훈련 기지구나’라고 생각했다.

훈련병들은 모두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고, 수장으로 보이는 고참은 이렇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북은 굶주리며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하는가, 라고. 맙소사! 꿈을 깨고 나서도 그 찝찝함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꿈이란 자신의 상상력을 언제나 넘어서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묵었던 주사파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까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친한 자주파의 한 선배는 주사파를 너무 심하게 보는 거 아니냐며 질책했지만, 어쩌랴 꿈은 무의식의 영역인 것을.

결국 민주노동당에 대해 품었던 나의 애정은 <진보정치>의 설레임으로 시작해 자주파의 군대훈련장 꿈으로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신당이 시작되고 있다. 다시 시작되는 신당은 내게 5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의 설레임과 열정으로 되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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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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