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함께에 대한 중상모략을 그쳐라"
        2008년 02월 15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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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다신씨(이하 존칭 생략)는 <레디앙>에 세 차례나 연재된 장문의 글, 분량은 길지만 내용은 빈약한 글을 통해 앞선 전지윤 동지의 주장을 비판하며 거듭 다함께에 대한 왜곡과 중상모략을 했다. 나는 여기서 전지윤을 지지하며 정다신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그는 앞서 전지윤이 제기한 비판과 문제제기에는 별다른 반박이나 답변도 하지 않고 다시 기존 논지를 더 길게 반복하고 있다. 그는 전지윤이 “노골적인 핵심 피하기와 지엽적인 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근거 없는 비아냥과 핏대 올림에 가득찬 감정적” 대응을 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그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정다신은 ‘지엽말단이네, 도망갔네 하지말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정다신을 비롯해 곳곳에서 다함께를 비판하는 이유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함께가 신당파와 심상정 비대위의 기회주의와 종파주의를 비판하면서 논쟁이 야기됐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 시위 중인 다함께 회원들
     

    그런데 다함께가 신당파와 심상정 비대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판하는 지점은 회피한 채 혁명정당론, 민주집중제, 국가자본주의론 등을 제기하며 다함께를 비판하는 것이 ‘진정한 쟁점 회피’라는 주장이 이해하기 힘든 말인가? 정다신 자신도 신당파와 심상정 비대위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곳곳에서 드러내면서 말이다.

    정다신의 오만함

    아무튼 정다신이 제기하는 쟁점이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것이므로 나도 이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 머리로,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는가?”라는 정다신의 주장에는 한 마디 해야겠다.

    정다신이 자신의 삶과 사상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야 상관할 바 아니지만, 국가자본주의론이 틀렸다는 주장은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연구한 결과”인 반면, 국가자본주의론이 옳다는 주장은 ‘비독립적이고 비자주적’이라는 식의 무모한 주장은 무슨 근거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정다신의 이런 오만함은 이미 지난 번 글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교 1학년 때 어떤 정파가 주도하는 동아리, 학회, 비합 서클에 가입했는가에 따라서 똑똑하지 못 하고 고민 없이,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경우 자연스럽게 NL이 되고, PD가 되며, ND가 되곤 했다.” – 「비민주적 다함께, 트로츠키 더럽힌다」

    NL이든 PD든 ND든 다함께든 정다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이란 걸 모르고 있다’는 식이다.

    지난번에는 ‘캘리니코스의 책을 하나도 안 읽고 캘리니코스를 비판한 게 뭐가 문제냐’며 이재영 씨를 옹호하던 정다신이 이번에는 180도 변신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국제사회주의자 그룹이 출범했을 때부터 거의 모든 잡지와 신문들, 출판물들을 사 보았으며, 직간접적으로 참여 했을 뿐 아니라 … 영국으로부터 직접 <Socialist Review>를 받아 본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SWP 파견자들을 포함 당시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각종 트로츠키주의 조직들과 교류하며 각종 세미나와 행동에도 참가했다.” – 「제 머리로, 스스로 생각해본 적 있는가?」

    전지윤의 적절한 지적처럼 ‘안 읽어도 잘 몰라도 비판할 수 있다 학파’였던 정다신이 이처럼 ‘다 읽고 잘 알아야 주장할 수 있다’로 변신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자기만 ‘다 읽고 잘 알고’ 주장하는 반면 남들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오만함에 있다.

    그가 정말로 남한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신문, 잡지, 논문 등을 ‘다 읽고 잘 알고’ 있다면 그들이 꾸준히 나름의 조사, 탐구, 분석 등을 통해 국가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해 주장해 왔다는 것은 알 것이다

    예컨대 다함께 운영위원인 김하영 동지는 2002년에 펴낸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에서 방대한 자료와 통계, 논문에 대한 조사와 탐구를 바탕으로 북한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 바 있다.

    그가 ‘안 읽어도 잘 몰라도 학파’를 벗어난 게 사실이라면 다함께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수행한 이런 분석에 대해 구체적이고 근거있는 비판을 제시하는 게 옳을 것이다.

    최일붕 동지에 대해 진지하지 못한 태도

    최일붕 동지에 대한 주장에서도 정다신의 태도는 진지하지 못하다. 정다신은 첫 글에서 명백히 최일붕 동지가 “영국으로 유학간 신학도”였으며 그의 “개인적 환경적 요인”에서 남한 국제사회주의자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식으로 설명하며 다함께를 깍아내렸다.

    이제 전지윤의 비판을 통해 이것이 사실도 아님이 밝혀지자 이제 그는 ‘다함께는 최일붕을 숭상한다’, “이렇게 중요한 쟁점인지는 몰랐다”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영국으로 유학간 신학도”를 들먹이며 다함께 비판의 중요한 쟁점을 삼은 것은 바로 정다신 자신이었는데 ‘중요한 쟁점인지 몰랐다’니 ‘아니면 말고’가 아닌가.

    그냥 솔직하게 남한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역사와 주장에 대해 기초적 사실이나 정보도 잘 모르면서 비판했다고 인정하면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 보자. 정다신은 거듭 국가자본주의론은 잘못됐고 소련, 북한 등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할 경우 오류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들기를 거부한다. 다만, “직접 러시아로 와 현실을 보면 … 소련은 … 자본주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시간 문제”라는 둥 “(국가자본주의론이) 비웃음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 현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각종 영역에서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자료가 수천 개는 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라”는 둥 ‘스스로 생각해’ 깨우친 현자의 가르침을 믿으라고만 할 뿐이다.

    그러나 정다신의 주장과 달리, 최근에 공개된 역사적 사료에 기초한 학술 연구들은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레즈닉과 울프 등 일부 알튀세르주의자들과 이매뉴얼 월러스틴도 소련이 자본주의의 변종인 국가자본주의였다는 점에 동의한다.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볼 수 있는 시기가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설명 방식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들이 경합하고 있긴 하지만, 학계에서도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오늘날 구 소련 사회 성격론에서 하나의 유력한 학설로 정립돼 있다.(정성진,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5장 참고)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유력한 학설

    정다신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을 전지윤이 덮어씌우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신이 “‘국유화=사회주의’라고 믿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전지윤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부분부터 정다신은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현실 사회주의”의 특징으로 국유화를 주되게 계속 언급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 주택, 여관, 까페, 식당,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까지 모조리 다 국가가 운영했다.” 그러면서 아제르바이잔의 사기업화 사례를 들기도 했다. ‘국유화와 계획 경제’라는 형식적 요소로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정다신은 따라서 ‘사적 소유와 시장’이라는 형식적 요소로 자본주의를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계급과 체제 규정의 가장 핵심적 요소인 소유(에 의한 계급 존재)와 시장의 유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와 가장 큰 차이점이란 바로 사적 소유와 시장의 허용 여부” – 「계급 소유 문제 팽개친 국가자본주의론」

    결국 정다신이 소유 형태로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나누려고 한다는 전지윤의 비판 ‘터무니없는 모함’이 아니라 정당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소유 형태와 시장 경쟁의 존재 여부로 체제를 규정하는 것은 ‘맑스주의적 계급과 체제 규정’이 아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들은 현상 형태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다.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을 경쟁과 축적이라고 봤다. 그래서 맑스는 1850년대에 미국 남부의 노예주(州)들을 자본주의로 규정했다. 노예주 자체로만 보면 자유 시장도 임금 노동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남부의 노예주들이 북부 자유주(州)와 경쟁하면서 경쟁과 축적의 동학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맑스는 자유 시장 경쟁 속에서 집중과 집적이 일어나 독점과 국가개입이 나타날 것을 전망했다. 엥겔스도 『에르푸르트 강령 비판』에서 “주식회사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미 더는 사적 생산이 아니다. … 트러스트는 사적 생산의 종식 뿐 아니라 무계획성의 종식도 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미국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의 압력 속에서 강박적 축적에 매달렸던 소련과 동구권도 자본주의의 변종이었다는 국가자본주의론은 타당하다. 비록 소유의 법적 형태는 달랐고 비효율적 지령이 무정부적 시장 경쟁을 대신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국유화라는 소유 형태 자체가 아니다. 구 소련과 동구권, 북한 등에서 생산은 국유화돼 있었지만 그 국가는 누구의 국가였는가?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국가를 통해 생산을 통제했는가, 아니면 소수 관료지배계급이 국유화된 생산을 통제했는가?

    만약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통해 생산을 통제했다면 노동자들을 굶주리는 데 군비 경쟁과 핵무기 개발에 투자의 우선 순위가 놓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유화된 생산을 통제한 것은 소수 국가자본가들이었고 이들은 서방과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의 논리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다.

    이러한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자본주의로의 변화는 ‘게걸음’에 불과했다. 정다신은 이런 ‘전환’에서 “소련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사회적 현상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사회적 현상들’이 만약 불평등, 빈부격차, 부패, 민주주의 억압 등을 뜻한다면 그것은 이미 구 소련에서도 존재했다! 구 소련에서 공산당과 KGB 고위 간부였던 옐친, 푸틴은 이행 후에도 여전히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다.

    ‘전환’을 통해 바르샤바의 구 공산당 사령부 건물은 증권거래소로 바뀌었고, 구체제에서 헝가리 재무부 최고책임자였던 공산당 간부는 ‘전환’ 후 재무부 장관이 됐다.

    만약 정다신의 지적처럼 ‘전환’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었다면, 이처럼 똑같은 사회 집단이 여전히 상층부에 남아서 권력과 부를 누리고,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똑같이 그들의 발 밑에 놓여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

    이제 국가자본주의론이 현실에 적용돼 나타난 오류라고 정다신이 주장하는 부분으로 들어가 보자. 이 부분은 정다신이 자행한 왜곡과 중상모략의 백미라 할 만하다.

    정다신은 거듭 “국제사회주의 그룹은 1차 베트남 전에서는 한국 전쟁과 마찬가지로 방어를 거부하다가 대중의 좌익화로 인해 그제서야 제국주의 반대를 외쳤다. 반면, 스탈린주의 소련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투쟁도 잠시도 지체 없이 다 지지했다”며 중상모략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전지윤은 … 왜 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얼렁뚱땅 넘어 가는가”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지윤은 지난 글에서 분명히 이것이 “악의적 왜곡이 아니라면 형편없는 무지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주의자들이 1, 2차 베트남 전쟁 모두에서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베트남 민중의 민족해방 전쟁을 지지한 것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도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신문, 잡지, 팸플릿, 논문, 단행본(조나선 닐, 『미국의 베트남 전쟁』, 책갈피) 등으로 명백히 증명되는 사실이다.

    분명히 밝히거니와 정다신은 이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적시해야 한다. 국제사회주의 그룹이 어떤 신문․잡지 등에서 어떻게 주장하고 또 어떤 식으로 행동해 베트남 민중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는지 말이다.

    ‘아님 말고’ 식의 비난이라면 이는 명백히 명예훼손 소송감이다. 정다신은 근거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근거도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이나 어떤 착각에 근거해 국제사회주의자들의 명예를 모독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마땅하다. 진정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또, 정다신은 국가자본주의론의 최근 약점인 양 베네수엘라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는 이미 국가자본주의 체제인데 무엇을 망설이며 지지하고 있는가?” 하고 다함께에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현 베네수엘라 국가 기구를 대안으로 지지한 적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 권력을 잡고 생산을 통제하고 있는 지배자들에 맞선 베네수엘라 노동자 민중 운동과 그들을 대변하는 차베스를 지지해 왔다.

    그리고 최근 글들에서 분석했듯이, 국가 기구와 관료들에 타협해 운동을 통제하려는 차베스와 노동자․민중 운동 사이에 모순이 생기고 있으며,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운동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로 가는 중이라고 주장해 왔다.

    베네수엘라 민중이 혁명 정당을 만들고 현 국가 기구를 분쇄해 대안 체제를 세우느냐 아니면 우익에 타협하고 있는 관료들과 국가 기구에 의해 운동의 힘이 약해지다가 노동자․민중 운동이 분쇄되느냐 하는 갈림길 말이다.

    정다신의 이중잣대

    정다신은 ‘심상정 비대위와 신당파가 우경화하고 있다’는 다함께의 주장에 극구 반대한다. 다함께가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개량이네 우경화네를 남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함께는 심상정 비대위나 신당파가 소위 ‘일심회’ 사건과 북핵 문제에서 취한 구체적인 입장을 들어, 우경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문제는 미국 제국주의의 대북 압박에 좌파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정다신의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정다신이 “SWP의 개량주의, 대중추수주의” 운운하며 비난하는 내용 대부분이 구체적 근거는 들지 않지만 ‘SWP가 미국 등 서방 국가보다 소련 등 동방 국가를 더 혐오했다’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정다신은 “트로츠키주의 원칙 그대로 스탈린주의 아류 국가라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침략에는 단호하게 반대해 왔다”는 다른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취해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다신의 ‘잣대’는 남한․미국보다 북한을 더 혐오하는 것이 분명해진 심상정 비대위와 신당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함께는 북한 핵무기를 지지해서는 안 되지만, 북핵 사태의 훨씬 더 중요한 책임이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과 이를 지지해 온 남한 지배자들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며 심상정 비대위와 신당파에 반대했다.

    정다신도 이 문제에서 다함께가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거나 투쟁을 방기하는 반마르크스주의적, 반사회주의적 원칙을 견지”했다고 비판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정다신은 심상정 비대위와 신당파의 “개량주의, 대중추수주의”에 대한 투쟁은 왜 ‘방기’하고 있는지 “학자적 양심을 걸고” 밝혀주기 바란다.

    다함께에 대한 ‘한풀이’식 비난

    정다신은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혁명가들임이 명백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들 나름으로 혁명을 옹호하려고 내놓은 주장들을 다함께를 비난하는 ‘한풀이’를 위해 ‘차용’하지만, 그 스스로는 사회주의나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지구상의 그 어느 국가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통제만으로 국가와 경제를 이끌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 동네 반상회에서도 못하는 일을 소련이라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을 차지하는 국가에서 그 원칙 실현이 가능한 일이었는지?” – 「트로츠키가 저승에서 통곡한다」

    정다신은 러시아가 내전 후 겪은 끔직한 상황과 그 이후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후퇴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후 내전이 끝나갈 무렵 외부의 직접적 위협은 감소했지만 공업 기반과 경제 기반이 거의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랜 전쟁과 경제 파탄으로 국가를 통제해야 할 노동계급 기반 자체가 거의 무너졌다는 점이었다. 노동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고 그 사기가 크게 저하했다. 특히, 혁명을 주도해왔던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전선에서 가장 많이 희생됐다.

    결국 노동계급의 사회적․정치적 세력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볼셰비키가 어떻게든 노동자 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해야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레닌과 트로츠키, 볼셰비키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의 노동자 국가는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에 관한 자료를 샅샅이 찾고 있는 자신이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과학적 사고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다신은 정작 내전 이후 처참한 상황에 대한 자료들은 무시하고 “스탈린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며 간단히 제쳐 버린다.

    이렇게 객관적 현실을 보려하지 않는 결과로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여기는 정다신의 행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불가능함(결국 점진적 개량만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주장하는 정다신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혁명의 불가능성을 지지한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대담한 시도까지 한다.

    “혁명의 열기 속에 현실주의적 정치가로서보다 이상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표명할밖에 없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의 공식적 문서들과 포고와는 달리, 그 뒤에 숨겨져 있는 그네들(레닌과 볼셰비키)의 고민을 전지윤은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 「계급 소유 문제 팽개친 국가자본주의론」

    여기서도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반복된다. 물론 이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되지 않는다.

    누가 트로츠키를 통곡하게 만들고 있나?

    정다신은 인터넷 자유게시판의 문제점에 대한 전지윤은 반론에 대해서도 진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인터넷 자유게시판이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했냐’면서도 계속 인터넷 자유게시판의 의의를 옹호하며, 다함께 회원들이 인터넷이 아닌 현실과 실천 속에서 벌이는 민주적 토론에 대해서는 “자기들끼리 같은 내용 반복”이라고 무시하고 있다.

    ‘강남지역위 사건’도 그렇다. 지난 글에서 명백히 “불법적으로 주소지를 대규모로 옮겨 접수”했다더니 이번에는 “내가 묻는 건 당규를 위반했냐 아니냐가 아니다”라고 말을 바꾼다. 그러면서도 “부정한 짓을 한 것은 사실”이란다. 도대체 어떤 ‘부정한 짓’을 했는지 구체적 설명을 바란다. 또 ‘아님 말고’라면 도대체 그의 ‘학자적 양심’은 뭐란 말인가.

       
    ▲ “트로츠키는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국가자본주의론의 의의를 강조하고자 한다. 정다신도 인정하겠지만 소련이 연루된 세계사적 사건들(예컨대 1939년 히틀러-스탈린 밀약, 1956년 헝가리 혁명,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1981년 폴란드 연대노조 분쇄 등)에 대한 태도는 소련 사회의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1991년 소련 붕괴 과정에서 계급 지배의 역전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붕괴 전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소련과 똑같은 성격의 사회였던 동유럽에서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 투쟁이 없었는데도 이 국가들을 사회주의라 할 수 있을까? 톈안먼 항쟁을 진압한 지배자들이 그대로 권좌를 지키는 중국은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자들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한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을 제시한 것이 바로 국가자본주의론이다. 노동자 대중이 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 그들에 대한 억압이 자행되고 민주적 권리가 짓밟히던 사회를 사회주의라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방어할 수도 없다.

    정다신은 트로츠키가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했다는 점을 크게 부각한다. 물론 트로츠키는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서 전지윤이 “자구가 아닌 정신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더구나 소련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입장은 계속 변화했다. 처음에 트로츠키는 소련 관료들을 반동 세력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보나파르트 일당’으로 봤다. 그러다 소련 관료를 계급은 아니지만 카스트라고 했다가 다시 정치혁명으로 타도해야 하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트로츠키의 이런 입장 변화의 근저에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맑스주의 원칙이 있었다. 트로츠키는 암살당하기 직전의 유서에서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 그것은 나의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주의나 혁명을 지지하지 않게 된 정다신이 트로츠키를 인용하며 다함께를 비난하고 “트로츠키가 저승에서 통곡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하다.

    국가자본주의론의 올바름이 결정적으로 입증된 것은 동유럽과 소련의 몰락이었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대다수 좌파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사기저하했다. 자유시장이 승리했고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는 후쿠야마 류의 주장에 당시 좌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의 몰락을 자본주의의 한 변종의 몰락이라고 봄으로써 사회주의의 파산론과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다신에게 다함께에 대한 왜곡 중상모략과 ‘한풀이’식 글쓰기는 중단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토론을 원한다면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밝혀야 한다. ‘나는 너희가 모르는 어떤 자료가 있다’는 식의 태도는 토론을 발전시키지도, 상대방을 설득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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