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머리로, 스스로 생각해본 적 있는가?”
        2008년 02월 09일 01: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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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함께가 대충 어떠한 틀로 반박을 할지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예상과 딱 맞아 떨어질 줄은 몰랐다. 노골적인 핵심 피하기와 지엽적인 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근거 없는 비아냥과 핏대 올림에 가득찬 감정적 내용 또한 여전하다. 진정한 쟁점은 회피하고 감정적인 건 누군지 차분하게 자신의 글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다함께는 늘 뭔가 대립물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사는지 모르겠지만, 전지윤의 거대한 착각과는 달리, 나는 신당을 옹호하기 위해 다함께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지난 기고글이나 댓글들에서도 밝혔듯, 명분에는 공감하나 신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로 관망하고 있는 상태임을 분명히 하였는데, 전지윤은 너무나 쉽게도 모든 것을 ‘신당 비판론’의 틀 안에서 보려고 한다.

    너무나 쉽게 신당파들을 개량주의, 우경화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몰아 부치려거든 자신의 과거부터 성찰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을 두고 현재의 핵심 쟁점(?)과 무관하다고 지엽말단이네, 도망갔네 하는 건 스스로 자신의 조직 역사에 대한 무지나 논점 회피를 자인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국 국제사회주의자 그룹의 활동 모습. 피켓과 신문의 국제적 통일을 이룬 듯하다.
     

    누가 지엽말단이고 도망가고 있는지는 아주 자세하게 조목조목 찬찬히 밝혀주겠다.

    그렇게 알아듣기 쉽도록 이야기를 했건만, 이제는 신당파를 넘어 아예 심상정 비대위에 대해서까지 우경적 개량주의를 뒤집어 씌운다. 이명박의 반동에 맞선 투쟁을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을 보니 언제나처럼 온라인에서는 논쟁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거나 논쟁 회피의 구실을 보여 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투쟁을 준비하기 전 누구와 어떤 투쟁을 해야 하고 누구와 어떤 연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 조직의 역사에 대해 객관적인 공부를 한 후 다시 한 번 깊은 성찰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독립적 자주적으로 생각해 본 적 있나?

    전지윤은 나의 캘리니코스 책 운운한 부분에 대한 반박의 두 가지 예 중 하나인 이 명박의 예만 들며 그야말로 지엽적인 반박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대는 상대를 반박할 때 정말 모든 것을 다 읽고 반박하는가?

    반박을 하려면 기본적인 예의가 있어야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 전지윤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 당의 교과서가 아닌 객관적 자료들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연구한 결과 소련은 국가자본주의였다는 주장을 자신의 신념으로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나?

    전지윤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명백한 자료들은 거들떠보기나 한 적 있는가?

    특정 이론을 그렇게 확고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무언가를 비판하려면 혹은 받아들이려면 적어도 그것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해 반대되는 이론과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그대는 자신의 어리석으리만치 확고한 주장을 위해 진정으로 SWP(영국의 사회주의 노동자당 : 편집자 주)의 틀이 아닌 것으로 독립적으로 조사, 분석, 탐구한 적이 있는가?

    “정다신은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충분한 조사도 이해도 없이 어디서 주워들은 대개 잘못된 정보들을 가지고 앞뒤도 안 맞는 비판을 늘어놓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고 무책임한 댓글들에 의존한 글쓰기의 폐해인 듯싶다.(전지윤, 「딴소리 하기 또다른 명수, 논점 더 흐려」, 2. 3)”

    전지윤이야 말로 ‘어디서 주워들은 잘못된 정보들을 가지고 흥분하여 감정만 앞세워 앞뒤도 안 맞는 비판을 늘어 놓는’ 습관부터 없애야 할 것 같다. 모든 걸 다 밝힐 수는 없으니 몇 가지만 이야기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국제사회주의자 그룹이 출범했을 때부터 거의 모든 잡지와 신문들, 출판물들을 사 보았으며, 직간접적으로 참여 했을 뿐 아니라, 소련 붕괴 직후 우편물 접수가 복잡했던 시기 러시아에서조차 영국으로부터 직접 <Socialist Review>를 받아 본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SWP 파견자들을 포함 당시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각종 트로츠키주의 조직들과 교류하며 각종 세미나와 행동에도 참가했었고,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그러하다.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고 무책임한 글쓰기’는 아니니 ‘상대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와 이해도 없이 오만하고 무책임한’ 자기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할 듯싶다.

    유학국 기억 못해 진짜 미안 …

    그대들이 ‘숭상’하는 또 다른 한 이의 유학국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유학국이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걸 나중에 기억해냈다. 하도 오래 전에 이야기라 착각했는데 이렇게 큰 쟁점인지는 몰랐다.

    솔직히 그의 역사는 내 관심사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니 양해 바란다. 하지만, 1990년쯤 조직 안에서는 모두들 그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다른 과를 나왔지만 신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조직원이 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와 고향, 고등학교, 대학 동창이었던 친한 교수님도 부유하고 독실했던 그의 집안과 학생운동에서 거리가 멀었던 그의 학창 시절을 정확하게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먼저 제4인터내셔널을 접했다는 그의 역사까지 세세하게 쓰지 않으면 틀린 건가? 전지윤처럼 처음부터 일관되게 잘못된 한 길을 가는 이들도 있지만, 정반대로 처음엔 다른 것을 접했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관념 때문에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과학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다른 기준으로 택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대개 두 경향 중 국제사회주의 경향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전지윤의 글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듯이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불평등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노동자 국가에서 국가가 노동자 계급을 탄압할 수 있는가?’ 등의 극히 관념적인 도덕적 기준에 의한 감정 유발이 선택의 최초 이유가 되곤 했었다.

    우리네 다함께와 다른 것은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국 등 유럽의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운동가들은 아직 구 사회주의 체제의 잔재들이 남아 있던 시절에 ‘직접’ 러시아로 와 현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직접 본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전향

    선택은 영국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환경 요인에서 관념으로 시작했지만, 직접 와 본 후에는 다른 조직의 조직원으로 전환하거나 객관적 학습을 하기 위해 국제사회주의 조직과 거리를 두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적어도 소련은 우리의 대안 사회는 절대로 아니었지만, 자본주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시간 문제였기 때문이다.

    전지윤은 내가 국가자본주의론의 역사적 기원, 핵심 주장 등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무엇이 오류였는지 분석하고 설명하지 않는다고 아예 무지하단다. 분명 나는 지난 번 글의 비판이 국가자본주의론 그 자체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에 국가자본주의론 그 자체에 본격적으로 논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었다. 논쟁이 계속된다면 후술하겠다고도 했다.

    분명 현재 모종의 자본주의에서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이론이 비웃음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 현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각종 영역에서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자료가 수 천 개는 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라고 하고 넘어갔다. 도대체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고, 내가 하지도 않은 말까지 해설을 해야 하는가?

    이런 문구들에도 불구하고 전지윤은 그냥 자기 평소 주장만 맥락에 안 맞게 늘어놓으며 이해를 하려 들지 않는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난 내 글의 목적은 국가자본주의론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벌어지게 된 대표적인 커다란 오류 몇 가지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일부러 논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다만 선언만 했을 뿐이라느니 붙잡고 늘어졌다니 하는데, 전지윤은 무슨 특수한 능력이라도 있나 보다. 내 글에서 신당 비판에 대한 것은 없다고 지엽적이네 도망갔네 하는 판국에 내가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했었다면 도대체 어떤 비난을 해대었을지 정말 궁금하다.

    현재 국가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구 사회주의 사회의 질적인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신자(信者)가 아닌 이에게 자신들의 관념의 산물인 경전을 주제로 토론하자고 하는 것은 가혹한 고통이지만, 그 경전만 텍스트로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응해 줄 수 있다.

    비신자에게 경전 강요는 가혹

    ‘잘 몰라도 비판할 수 있다 학파’보다 더 무서운 ‘잘 몰라도 믿을 수 있다 학파’가 얼마나 운동에 해악을 주는지에 대해 보여 줄 것이다. 누가 더 잘 몰라도 비판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누가 이야기했듯, 기독교인들 앞에서 불교 강의를 하고 그 비판을 성경에 근거해서 받는다면 그건 토론이 아니라 그냥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셈이 되니, 런던 발 교과서에 의거한 논쟁은 사양하겠다.

    “불평등(원문 그대로 – 아마도 ‘평등’의 오타인 듯)과 번영, 자유가 없었다고, 현실 사회주의 사회를 모종의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진보의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라고 선포할 뿐이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그에게 사회주의는 ‘평등, 자유’ 같은 가치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이다.(전지윤 글)”

    정말이지 이런 왜곡 중의 왜곡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고 뜻을 왜곡하며 하는 근거 없는 비판은 다함께의 논리의 특징이다.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댓글에서조차 많은 이들이 해설까지 했건만, 이렇게 용감하게 하지도 않은 말까지 마음대로 결론으로 지어 놓고 기초적인 문장의 뜻조차 왜곡하는 주장을 늘어놓을 줄은 몰랐다.

    ‘평등, 자유가 없었다고 곧바로 자본주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말을 ‘사회주의는 평등, 자유와 같은 가치와 무관하다’는 말로 이해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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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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