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 당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목소리
    2008년 01월 20일 1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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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동구권 전체를 삐걱거리게 만들면서 붕괴시켰던 질풍노도와 같은 개혁의 바람은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중국까지도 휩쓸었다. 1989년에 일어난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1949년 중국혁명 이후 중국공산당 정부가 맞이한 최대의 시련이었다.

당시 노동자, 농민의 세상이라는 공산주의 세계의 민중들이 노동자, 농민의 정부라는 공산당 정부에 저항하여 봉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안문 사태 당시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오는 탱크를 막고 대치 중인 시위자.
 

동유럽의 붕괴와 천안문 사태 그리고 등소평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라고 불리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중심이 된 중국 인민들의 항쟁이 일어났다. 중국정부는 천안문광장에 모였던 백만 명 이상의 중국 인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탱크와 인민해방군을 동원하면서 시위를 진압했다. 급기야 총탄이 날라 다니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핏빛의 공포에 질린 천안문광장의 중국 인민들은 훗날을 기약하면 뿔뿔이 흩어졌고 그 뒤에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제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중국정부는 천안문 사태를 제국주의자들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진압 과정에서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거짓 발표와 함께 천안문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천안문 사태가 가라앉은 뒤부터, 이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금기시됐지만, 중국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인민들이 요구한 대로 개혁과 개방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중국공산당 내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2년에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서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는 공산주의 세계에서 죽을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던 전통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등소평의 자발적인 퇴진은 장쯔민에 이어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순조로운 권력 이양의 흐름을 정착시켰다. 천안문 사태 이전에는 가히 상상도 못할 변화가 권력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어쨌든 중국의 정치경제적 개혁과 개방은 등소평의 결단에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개혁과 개방노선의 결과로 이제 중국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할만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중국공산당의 비판과 자아비판의 절묘한 운용의 미를 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간판내려야 할 민주노동당의 대선 결과

대선에서 3%의 지지율을 획득하고 대패한 민노당은 대선 평가에서조차도 제대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3%의 지지율은 민노당의 노선과 그 노선에 따른 정치활동에 대한 대중들의 심판이다.

표를 던진 국민들 중 3%를 제외한 대다수인 97%는 민노당을 버렸다는 결론이며 제도권 정당으로서는 간판까지 내려야 할만한 치명적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인 3%의 지지율을 획득한 뒤에도 어떤 이는 패배가 아니라는 어이없는 말도 나왔고, 어떤 쪽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대중들의 수구적인 정서’로 돌리기도 했다. 이런 평가는 진정한 비판과 자아비판에 기초한 평가가 아니라 비겁한 자기변명과 단지 현재의 위기를 피해가겠다는 심사로 밖에는 내비치지 않는다.

평가에는 패배에 대한 자기비판과 비판을 통해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미래의 결단이 내포돼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대선 평가와 혁신의 임무를 맡고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 워크숍 모습.(사진=뉴시스) 
 

지난 해 5월 초 프랑스에서 있었던 대선에서는 예상과는 달리 사회당이 우파에 대패했다. 대선 패배 후 프랑스의 사회당이나 좌파 내부에서도 대선 패배에 대한 논쟁에 휘말렸지만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점이 있다면 패배의 가장 큰 이유로 노동계급의 이탈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프랑스 노동자계급을 지지 대열에서 이탈시킨 공약의 문제점을 들고 있다. 사회당의 후보 루아얄의 공약은 ‘주35시간 노동’이라는 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반면에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의 공약은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벌이’였다.

프랑스 좌파의 실패와  평가

노동대중들은 사르코지로 대거 몰려갔다. 노동대중들이 노동시간 단축에 지지를 보내지 않았던 이유는 사회당측의 확신에 찬 설득의 부족이었다. 주35시간 노동이라는 환상적인 공약이 어떻게 노동자 개개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에 반해 ‘더 일해서 더 벌자’는 사르코지의 슬로건은 노동자들을 아주 간단하게 휘어잡았다. 그리고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는 노동자=사회당, 자본가=중도우파당이라는 등식이 깨졌다. 프랑스 사회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노동계급도 사회당이 노동자 대중에 대한 이익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거부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민노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간단하다. 민노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노동계급과 농민들로부터의 지지상실에 있다. 민노당이 내걸었던 ‘코리아연방공화국’이란 공약이 사실 문제였다. 노동자나 농민들의 이익을 위한 공약을 내걸고 목숨을 걸고 달라붙어도 지지를 얻기 힘든 선거판에서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슬로건을 내걸었으니 지지하던 대중들마저도 떨어져 나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대선평가에서 제기된 노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대선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측에서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금 민노당은 대선 결과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비판과 자기비판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결과, 위기를 맞고 있다. 종북주의와의 결별 주장, 탈당이나 분당에 대한 공개적인 선언 등은 모두 위기에 빠진 민노당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목소리들이다.

민노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대선을 주도했던 자주파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공개적인 자아비판을 하는 것이 도리다. 특히 선거 패배의 주원인이었던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공약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과 노선의 폐기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평등파의 비판과 정치노선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당의 민주적 운용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는 쉽지 않지만 지혜롭게 돌파할 수만 있다면 민노당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 제대로 된 진보적인 정책과 노선만 갖추고 대중들을 설득하고 조직해나간다면 남미의 볼리비아나 베네주엘라, 브라질처럼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획득할 여지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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