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종북패권주의’가 아니다"
    2008년 01월 04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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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 청산’ 논쟁이 뜨겁다. 진중권 교수는 민주노동당 내 ‘종북주의’ 세력을 “위를 가득 채운 기생충”이라고 비판하며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결별을 주장한다.

손석춘 새로운사회연구소 연구원장은 “과연 분당을 부르대는 그 용기와 패기가 참으로 진보정당을 살릴 길인지” 되물으며 “자주파(종북주의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격정”을 그만 둘 것을 요청한다.

비단 두 지식인의 논쟁인 것은 아니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종북파의 문화를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邪敎) 집단의 그것에 가깝다”고 했고,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은 “당내 자주파의 종북주의에 근거한 패권주의가 당을 망쳐 온 제일 큰 원인”이라고 했다.

늘 그랬듯이, 종북 청산 주장의 부당성을 국가보안법 문제와 연관시키는 반론도 등장했다. 김갑수씨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종북을 매도하려면 국가보안법에 대해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부터 명백히 밝히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는 충고를 했다.

   
▲ 지난 대선 때 유세 중인 금민 후보 (사진=금민 후보 홈페이지)
 

아무튼 민주노동당은 지금 당 안팎에서 불거지는 ‘종북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분당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에서 ‘종북주의 청산론’을 주창한 사람들의 정치적 목표는 그리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분당을 통한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밝힌 사람들도 있고, 종북파 배제를 통한 민주노동당 혁신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종북주의 청산론’만 갖고는 그 명분도 부족하고 창당 동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종북주의 청산론’은 실제로 당내에서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당내 헤게모니 다툼의 수단으로만 협소하게 이해될 소지가 있다.

도대체 왜 지금 종북주의 논쟁인가?

이와 같은 논쟁은 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진보정치세력의 혁신과 재편이 중요한 과제가 됐음을 실감시킨다. 이 과정에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진보정치의 내용적 혁신과 재구성에 관한 입장을 책임 있게 밝히며 참여하기를 바라고, 한국사회당에 몸담고 있는 나도 진보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희망을 갖고 참여할 생각이다.

그런데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편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고, 선결과제는 또한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이전에 ‘종북주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두에게 먼저 묻고 싶은 두 개의 질문이 있다. 하나는 ‘민주노동당이 종북주의 세력과 동거하는 당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몰랐나?’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데 왜 지금 ‘종북주의’ 논쟁인가?”이다.

내가 두 개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한국사회당의 전신인 사회당은 2001년의 당 대회에서 진보정치세력 내에 부각되기 시작한 종북주의 세력을 비판한 바 있다.

또 2002년 민주노동당과의 당 대표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한 바 있다. 그 당시 자주파 뿐만 아니라 자주파가 아닌 민주노동당 내 인사도 사회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종북주의 논쟁은 이미 7년 전에 사회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었던 낡은 논쟁의 재현일 뿐이다. 게다가 이미 시대가 변했다. 2008년의 정세는 진보정치세력 내의 종북주의를 청산하는 것만으로 진보정치를 혁신하고 재편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판이 아니다.

물론 보편적 평화주의는 시대의 과제이다

김종철 집행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진보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장도 비판하지 않고, 일심회 사건 등도 비판하지 않는,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진중권 교수가 말한 “종북파들은 북조선 민중들이 아사하는 상황에서도 복조선 인민의 기아상태는 미제의 허위선전이라고 우기던 자들”이라는 지적도 적절하다.

평화와 인권의 문제는 진보정치세력이 견지해야 할 근본적인 태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근본 가치가 ‘종북주의’의 관점에서는 북한 지도부의 의지에 종속되는 하위 가치일 뿐이라는 점이 ‘종북주의’의 폐해로 드러난다.

종북주의는 진보정치일 수 없다. 진보정치세력은 진보적 근본 가치를 민족 또는 통일과 같은 ‘더 큰 가치’에 대한 수단 혹은 하위 가치로 간주하는 종북파와 동거하기 어렵다.

통일지상주의와 민족지상주의로부터 평화주의로의 관점 전환은 이 시대의 요청이며, 진보정치세력의 혁신과 재편에 있어서 관건적인 문제다. 비단 종북주의 세력을 진보정치세력 내에서 내쫒기 위해서가 아니다.

1953년 체제 종식의 기회가 위기에 처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정책이 안개 속에 있는 현재의 국면에서,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적 평화주의에 입각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경로를 밝히고 냉전체제의 재등장을 막을 임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더욱 더, 진중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북파에게 장악된 당 속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대동단결하여 이번 대선과 같은 닭짓을 계속 반복하면 언젠가 민중의 고통이 덜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진보정치세력에게 독이다.

그런데 진보정치의 혁신은 ‘종북주의 비판’에 한정될 수 없다

진보정치의 혁신 과제는 단지 ‘종북주의 청산’의 과제일 뿐인가? 종북주의 청산은 만병통치약일까? 아니면 최소한 진보정치 혁신의 선결과제는 되는 것일까?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된 계기는 지난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패였다. 그런데 과연 종북주의자들과의 공생이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참패의 결정적 이유일까? 종북주의가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과연 그것만이 문제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종북주의에 대한 매도만으로, 혹은 민주노동당 내 다수파인 종북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진보정치세력의 혁신과 재편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북파에게 이번 대선에서의 민주노동당 참패의 책임을 묻자면 코리아연방공화국 정도일 것이다. 종북파는 1953년 정전협정 체제 안에 갇혀있는 세력이며, 그들의 역사인식은 1953년 체제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953년 체제 문제를 제외하고 이 시대의 다른 과제에 관해서는 진보정치 고유의 비전과 능력을 보여 주었던가? 미완의 민주주의인 1987년 체제의 완성과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199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대안 정치로서 민주노동당의 ‘유일 진보정치’는 과연 충분했던가?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세상을 향해 답해야 할 문제, 스스로의 혁신과 재편을 위해 제기했어야 할 문제는 얼마 전 민주노동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의 새 책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서문의 말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살 만한 나라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까?”였다.

이 책의 서문을 또 인용하자면 “현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정책이 아니라 새롭고 총체적인 사회체제의 디자인”인 것이다. 종북주의 청산론이 새롭고 총체적인 사회체제의 디자인인가? 아니다. 진보정치 혁신 과제는 종북주의 청산론을 넘어 넓은 범위의 문제 지평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53체제, 97체제 대체할 새 모델 필요

   
▲ 2006년, 10개 연구소가 함께 진행하였던 대안사회모델 공동 토론 모습
 

지난 번 대통령 선거 결과, 즉 1987년 민주화에서 정통성을 구해 왔던 민주개혁세력의 궤멸, 1997년 이후의 사회양극화 체제에서 대중의 저항정치를 정치적으로 대표해 온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국민 대다수가 낡은 민주주의 정치와 낡은 진보정치를 심판했음을 뜻한다.

이는 진보정치세력이 낡은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거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았다는 이야기다.

민주개혁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의 무능함으로 1953년 체제와 1997년 체제가 연장되는 방식으로 대선이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직면한, 대선 이후인 지금도 논의해야 할 시대의 과제가 바뀐 것은 아니다.

1953년 체제의 종식, 1987년 체제의 완성,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1997년 체제의 극복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년을 정초하는 일은 진보정치 본연의 과제이며, 그래서 혁신과 재편은 폭넓은 범위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편은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국가’, 새사연의 ‘노동중심 국민경제론’, 대선 때 나왔던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과 한국사회당의 ‘사회적 공화국’ 등이 과연 진보 대안으로서의 자격을 가질 만한가의 문제, 곧 진보 대안 논쟁을 우회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대안이 검증받으며 서로의 부족함과 공백이 메워지거나 아니면 새로운 공통성이 수립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곧 한국사회당 대표의 신분을 벗은 좀 더 자유로운 위치에서 정치적 논쟁가로서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일단 지금은 논의의 물길을 바꾸고 혁신 논의의 주제를 넓히고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종북주의 비판을 넘어서서 미래지향적인 진보대안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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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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