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민주노동당을 넘자
        2007년 12월 28일 07: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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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여름 나는 마포의 한 사무실을 얻어 혼자 상근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 사무실은 국민승리21이 되었고, 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를 거쳐 열 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되었다(법원이 조승수의 의원직을 박탈하였지만,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여전히 ‘열 명의 국회의원’이라 굳게 믿는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우습게 보지만, 세계 정치사에서 민주노동당처럼 빨리 성장한 당은 없다. 유럽 진보정당들보다 훨씬 빠른 성장을 거듭하기도 하였거니와, 민주노동당에 당비 내는 당원 8만 명이 있음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백년 넘은 영국노동당의 당원이 20만 명이다. 더구나 그 당원의 상당수가 노동조합 집단 가입에 의한 것임에 비추어 개별 당원주의를 취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1만 원씩 당비 내는 당원 8만 명이라는 숫자는 가히 역사적인 것이다.

    물론 수십, 수백만 명을 거느린 북조선노동당이나 중국공산당도 있지만, 당이 곧 국가인 그 당들과 민주노동당을 비교하는 것은 양 측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 2004년 총선 직후 열린 민주노동당 당대회. 원내 진출과 동시에 자주파의 집행부 장악이 시작되었다.
     

    민주노동당에 있어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당의 민주주의 제도다. 보수정당 뿐 아니라, ‘재야단체’니 ‘시민단체’니 일컬어지는 유사 진보세력에서조차 다수결과 선거 제도가 없던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주요 당직과 모든 공직 후보자를 당원 직선으로 뽑는 선거제도를 과감히 도입했다.

    민주노동당을 흉내낸 보수정당들이 이른바 ‘진성당원제’에서 ‘기간당원제’로 결국은 ‘국민경선제’로 후퇴한 오늘날 당직과 공직을 당원 직선으로 뽑는 정당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진보정치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정치세력에게 무엇이 가장 부족한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시간’이라고 답한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 처음 나왔던 김대중이 그 자리에 오르는 데는 26년이 걸렸다. 지금의 집권여당에게는 한민당으로부터 시작된 60년의 역사가 있다.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데는 전태일 분신으로부터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정치세력이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긴 시간을 함께 인내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신임당직자들에게 언젠가 민주노동당이 깨져야 한다고, 당은 분화 발전하는 것이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예전에 민주노동당에서 사무부총장을 지냈던 황이민은 대단히 전투적인 감성을 지닌 이인데, 내게 같이 공산당 만들자고 농담했었다. 요즘 들어서는, 『88만 원 세대』를 쓴 우석훈이 나중에 나이 먹어 같이 공산당 만들자고 말한다.

    황이민이나 우석훈의 계산보다는 좀 빠르지만, 이제 민주노동당을 떠날 때가 된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빨리 성장하였으므로, 그 당 운동의 분화 발전 시기 역시 빨리 다가왔다. 물론 민주노동당 아닌 새 진보정당의 창당 시기가 내달이 될지, 내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진보정치운동의 흐름을 민주노동당에서 새 진보정당으로 트는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민주노동당을 넘는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첫 이유는 ‘주체사상파’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도입하여 정착시킨 다수결과 선거제도를 되돌리거나 유보하려 들어서는 안 되지만, 민주주의에 고유한 딜레마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딜레마가 민주노동당에서 나타나는 구체상이 바로 주체사상파다. 20년 노동운동한 노조 위원장이나 한총련 학생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고, 민주노동당 10년 역사 중 앞 절반의 시기에는 전자가 후자를 선도했지만, 뒷 절반에는 후자가 전자를 표로 압도한다.

    야유와 조롱을 받는 당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독도에 공수부대 보내자는 당이 되었고, 당직자의 언행을 감시해 북한 정권에 넘기는 당이 되었고, ‘자주적 핵무장’에 열광하는 당이 되었다. 평소 점잖아 말을 아끼는 고려대학교 최장집 교수나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이나 <경향신문> 이대근 에디터로부터 매몰찬 야유와 조롱을 받는 당이 되고 말았다.

    권영길 후보가 기자로 일했던 <서울신문>의 [백무현 만평]은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11월 27일자).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들을 설득하여 진보정당을 만든 것은 당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진보적 사회운동을 민족주의자들이 과점(寡占)하고, 양자가 노동운동을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편, 양자가 동거하며 상호의존하는 민주노동당 운동이 어떤 시점에서 분화하리라는 것도 이미 예정돼 있는 경로다.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이 당 외부로부터 욕먹기 좋은 소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년쯤부터인가 민주노동당에서는 탈당자가 입당자를 넘는 유례없는 현상이 간혹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사회혁명에 대한 환멸과 진보적 인적 자원의 이탈을 부추기는 걸림돌로 전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나중에’를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노동운동이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근로대중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한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0% 안팎에 불과하고, 그나마 민주노총은 그 절반쯤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일이지만, 진실과는 먼 주장이다.

    유럽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남유럽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 같은 대륙 유럽에서는 50% 내외이고,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는 100%에 근접한다. 그리고 그 조직률과 비슷하게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의 집권 기간이 짧거나 길다.

    노조 조직률과 진보정당 집권의 인과 관계를 따지자면, 진보정당의 최초 집권은 일정한 노조 조직률에 힘입지만, 그 이후에는 오히려 노조 조직률 확대가 진보정당의 정치적 역량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이는 노조의 조직률 또는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과제가 노동조합 뿐 아니라, 노동자 정당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몫이라는 가르침이고, 정치적 조직과 조정 없이는 노동계급이 형성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다거나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책은 이미 대기업 노조 조직률의 포화를 이룬 민주노총보다는 정치를 통한 대대적 조직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로 향해야 한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민주노동당 

    물론 민주노동당도 노동계급의 정치적 조직화를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연대임금제 같은 게 그런 시도 중 하나였는데, 노동조합 간부들은 그런 제안에 “이론적으로는 동의하나 노조 안에서 설득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번번이 거절하였다.

    이런 거부가 이론적 설득력이나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구조 관계와 관행에 의한 바가 더 크다. 요컨대, 민주노동당은 상호 독립적이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독일사민당 식의 관계를 설계하였었는데, 현실에서는 노동조합의 비리에 대해 잘 알면서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원들의 배타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을 정치적으로 중계하는 옛 영국노동당처럼 돼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무능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눈치를 살피느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당과 노조가 어디에 설 것이고,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를 재계약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깨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 당이 더 이상 도전하거나 혁명하지 않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끝난 당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아닌 권영길을 선택했다.

    물론 권영길을 지지한 개개 당원에게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총화되어 득표력 뒤질 것이 뻔한 후보를 내세우는 반정치적 당이 민주노동당이다. 대선을 통한 성장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한 당이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이 권영길을 선택한 것은 주체사상파가 자신들의 경쟁자인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억제하려 해서이기도 하지만, 당원과 당간부들이 민주노동당이라는 틀거리 안에서는 보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규범화돼있기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히트 상품인 부유세를 거부한 최고위원회는 “중산층의 반발이 우려되어”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학평준화 공약을 거부한 정책 책임자는 “교육운동단체들이 반대하는 것 같아”라는 핑계를 댔다.

    민주노동당이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진보정치인들이 아니라, 노조 간부와 재야단체나 시민단체 출신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인은 제가 권력을 쥐려 전진하려 하지만,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단체협상이 몸에 배인 노조나 결정적일 때는 으레 자유주의자 손들어 주면 끝나는 사회단체 출신자들에게는 비록 민주노동당으로 적을 옮겼을지라도 ‘권력’은 여전히 남의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 민주노동당 월급이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지난 20여 년을 굶다시피 해온 민주노동당 사람들에게 전국 100여 개의 당사와 상근자들과 노조에 대한 배타적 연결망과 10석의 의석과 집권여당에 근접하는 지지율은 충분히 호화롭고 거대한 것이다.

    대통령선거운동 중에도 비례의석 차지를 위한 조율과 협잡이 오가는 당이 혁명을 할 리는 만무하다.

    무릇 정치는 도전이고, 모든 도전은 실패를 동반한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도전을 두려워하고, 끝끝내 승리를 거부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 정치와 자유주의 정치 사이에서 부동(浮動)하는 인텔리 운동권의 정당이고, 정규직 기업노조의 정치세력화이고, 무엇보다도 집권이나 변혁이 아니라 창당과 의회 진출 목적에 맞추어 구성된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경제처럼 가속성장을 통해 성공했고, 성공했으므로 실패에 다가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운동이라면, 그 운동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운동 역시 분화할 것이고, 당은 변전(變轉)할 것이다.

    새 당은 승리가 두려워 머뭇거리는 온정적 당이 아니라, 유럽의 공산당이나 사회민주당들이 초기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대단히 파퓰리즘적인 역동성을 지닌 좌익정당이어야 한다. 새 당은 민족주의라는 구닥다리 지배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나 생태주의 등이 공존하며 종합되는 개방적 현대 이념정당이어야 한다.

    새 당은 인민의 실생활과 기호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 러시아사회민주당의 직장분회(cell)나 한국 보수정당들의 지구당을 넘는 소통 통로를 구성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당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연세대학원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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