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가 같은 민중가요 싫어요
        2007년 12월 30일 09: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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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음악 분야의 잡지들과 음악 평론가들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앨범 등을 선정한다. 필자는 음악 분야의 잡지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며 음악 평론가도 아니지만, 연말이 돌아올 때마다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앨범 등을 선정하여 주위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는 했다.

    올해 연말에도 변함없이 올해의 노래를 선정했는데, 그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도 덧붙여서 <레디앙> 독자들과 수다를 떨어본다. 

    필자가 뽑은 올해의 노래는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이다. 먼저 ‘루시드 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루시드 폴은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조윤석의 원맨밴드이다.

       
      ▲Drifiting
     

    조윤석은 ‘미선이’라는 친근한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는데, ‘미선이’의 앨범 <Drifting>(1998)은 조윤석 특유의 서정성과 날선 비판의식이 훌륭한 하모니를 이룬 명반으로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특히 “난 화장실에 앉아 있어요 / 지금 당신은 / 뭘 하고 계실까”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가사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인 ‘sam’과, 신문으로 뒤처리를 한 뒤에 치질에 걸렸다면서 “너희들의 거짓말 듣지 않겠어 믿지 않겠어 / 단돈 300원도 주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라며 재치 있게 우파 신문들을 공격하는 ‘치질’이라는 곡을 즐겨 들었던 기억이 있다.

    ‘미선이’의 <Drifting> 앨범 발표 이후에 활동이 뜸했던 조윤석은 ‘루시드 폴’이라는 원맨밴드를 결성하고 같은 이름의 앨범 <루시드 폴>(2001)로 돌아왔다. ‘미선이’ 때의 날선 비판의식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새’, ‘나의 하류를 지나’, ‘너는 내 마음 속에 남아’ 등의 곡을 통하여 더욱 깊어진 서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루시드 폴을 대중에게 알린 앨범은 영화 <버스, 정류장>(2002)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젊은 날 방황하던 나의 영혼을 한동안 헤어져 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영화의 줄거리와 스타일, 그리고 요즘 드라마 ‘뉴 하트’로 필자의 가슴을 다시 설레게 하고 있는 배우 김민정의 호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사운드 트랙의 중독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그대 손으로’를 몇 번을 들었던가. 그리고 들을 때마다 내 감정은 얼마나 소용돌이쳤던가.

    다음에 발표된 앨범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기에 발표된 <오, 사랑>(2005)이었다. 이 앨범은 내게 위로와 걱정을 동시에 안겨준 앨범이었다.

       
      ▲오, 사랑
     

    ‘물이 되는 꿈’,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삼청동’, ‘그건 사랑이었지’는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서정성을 자랑했고 ‘오, 사랑’을 들으며 조윤석은 음유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힘든 날을 견뎌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조윤석이 자신만의 날카로움을 잃고 대중성만을 추구하는 뮤지션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명했다. 필자 역시 서정성이 깊어지는 것은 좋지만 <Drifting>의 날카로움과 <버스, 정류장>의 울림이 퇴색한 것 같아 어느 정도 걱정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경의 밤>(2007)에서 조윤석은 놀라울 만큼 훌륭하게 그러한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사람이었네’는 그동안 깊어진 서정성과 돌아온 비판의식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곡이다. ‘미선이’ 때 보여준 정제되지 않은 듯한 비판의식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이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가사로 진화했으며, 고도의 서정성과 맞물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어느 문 닫은 상점 / 길게 늘어진 카페트 /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 난 중동의 소녀 / 방안에 갇힌 14살 / 하루 1달러를 버는”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사람이었네’는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실상을 시적인 감수성으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자본이란 이름의 세계라는 이름의 / 정의라는 이름의 개발이란 이름의 //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착취 / 세련된 너의 전쟁 세련된 너의 파괴”라는 가사를 들으면서 내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떠한 구호나 연설보다도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참혹성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곡이었다. 바로 이런 것이 예술이 아니던가.

    필자는 평소에 이른바 ‘투쟁가’라고 하는 민중가요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민중가요는 왜 하나같이 군가풍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물론 집회 현장에서 팔뚝질하면서 부르기에는 행진곡풍의 노래가 적당하겠으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텔 미에 지쳐 일상에서도 민중가요를 자주 접하고자 하는 이 땅의 좌파들에게 군가풍 일색인 민중가요는 심히 부담스럽다.

    일 년 내내 전투태세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선동적인 가사보다 성찰적인 가사가 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하고, 전투적인 분위기의 곡조보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곡조가 더 치열한 투쟁을 다짐하게끔 하기도 한다. 이 땅에서 좋은 민중가요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항상 애쓰는 음악 노동자들께서는 이 점을 염두하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

       
      ▲버스정류장
     

    2007년을 보내는 지금, 이 땅의 좌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보다 섬세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근본주의가 아닐까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주의자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던가.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는,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소녀가 방안에 갇혀 하루 종일 일하여 고작 1달러를 번다는 사실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우리 안에서 자위적 핵무기 보유는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성소수자와 이주 노동자를 배척하는 말이 나오고, 당에서 상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미국이 지지하기 때문에 버마 민중항쟁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좌파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래로부터 터져 나와서 이미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나는 신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면, 그 이유가 겨우 민주노동당내에서 좌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면, 그 까닭은 더 이상 민주노동당으로는 이 시대가 좌파에게 요구하는 적색과 녹색의 정치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할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자들이다.

    정치공학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의 근본부터 분명히 하자. 우리는 겨우 민족이라든지 영구혁명이라든지 하는 따위의 것들보다 인간과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러한 근본이 흔들리고 또 부정되고 있다면, 전혀 새로운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노동자 민중을 설득할 것인가? 우리 안에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 혹시라도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면, 그렇게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랬지만, 올해 연말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이 유난히 큰 것 같다. 이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른바 ‘투쟁가’의 단호함과 <사람이었네>의 감수성이 모두 요구된다. 우리는 ‘사람이었네’에서 노래하는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휴머니즘으로서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로서의 사회주의, 생태주의로서의 사회주의, 그 이상과 원칙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단절해야 할 것들과는 과감히 단절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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