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후보는 정계에서 은퇴하라"
    2007년 12월 20일 08: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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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디앙>에서 ‘미리 내다 본 이명박 시대’에 대해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곤혹스러웠다. 생각보다 이명박 진영은 아직은 무정형에 가깝고, 막상 인수위를 구성하고, 새로운 각료 진영을 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에는 아직은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이고, 좋아라" 춤추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사진=뉴시스)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조금은 확실해 보이는 것만을 모아보면, 우선 재정경제부를 그냥 소위 모피아들에게 넘겨주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측근들을 직접 포진시켜 경제 진영들을 확실하게 틀어쥘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부처 확실하게 틀어쥘 이명박 정부

그리고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환경부를 건설부에 통합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 이와 함께 불필요하다고 의심받는 – 혹은 지나치게 친 노무현적이었다는 – 정부 부처 10개 정도를 통폐합시키고, 국책은행에 대한 민영화를 중심으로 금융 민영화가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점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이 민주노동당이나 아니면 자칭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필요할 것인가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심히 선거 운동에 뛰었던 사람들에게 다소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이 정당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무능했고, 무능했다고 분석하기에 앞서 ‘치사’했다. 너무 속 보이는 ‘소탐대실’의 모습은, 어지간해서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려고 하는 나의 입에서도 고운 단어들을 차마 쓰지 못하게 만들 정도이다.

내가 가장 미웠던 사람은 누구인가? 소위 주사파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아니고, 무능한 PD라고 불리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라, 바로 권영길 본인이었다. 그가 미웠던 것은,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치사했기 때문이다.

나의 오해일까? 그가 이 알량한 당의 당 대표를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이 이상한 대선을 치른 것이 아닐까라는 나의 의심은 어쩌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이상한 대선을, 그리고 이 이상한 결과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권영길 후보의 선거 기호는 3번이었다. 명실상부하게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제3당이었고, 여전히 제3당이다. 그런데 이 3%의 지지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

그는 선거 직전에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했고, 이 표가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하였다.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권영길 후보와 문성현 당대표(왼쪽),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사진=뉴시스)
 

속마음을 말하자면, "불쌍해서"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것이, 작금의 이 황당한 상황으로부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단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성실하게 선거에 임했던 사람들에게는, 거듭 미안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짜 속마음이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권후보에게 투표한 이유

그래도 나는 꾹 참고,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게 투자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고,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 그에게 투표했다.

김대중, 이회창을 비롯한 많은 대선후보들이 나중에 다시 말을 번복하면서 정계에 복귀하더라도 대선의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했다. 나는 권영길 후보가 이 정도는 결심을 해주는 것이, 현 상황을 명예롭게 추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3.

정당에서 정파가 나누어지고, 또 수없는 의견그룹이 생겨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독일 녹색당에서는 근본주의자인 ‘푼디스’와 현실주의자인 ‘레알로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실제로 의회에 진입하기를 결정한 전당 대회에서는 요시카 피셔의 귀가 물어뜯길 정도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다른 나라의 정당이라고 근본적으로 화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파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많은 경우,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이성적인 대화에 조정에 의해서 협의가 이루어진다. 물론 너무 생각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결국 분당을 하게 되지만, 모든 정당이 정파 사이의 대화가 어려워진다고 해서 매번 분당을 하거나 새로운 창당을 하지는 않는다.

민주노동당 정파, 공존 가능한 수준인가

밖에서 지켜본 내 입장에서, 이제 민주노동당의 서로 다른 정파는 조정이 어려울 정도로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명예롭게 차이점을 조정하면서 하나의 ‘정치행위’를 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사태가 심각해진 데에는, 도저히 ‘기회주의자’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고, 지독하게 ‘소탐대실’을 하는 명예롭지 않은 정치인으로 이해되는 ‘권영길 후보’의 존재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오해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4.

어쨌든 대선 선거기간 동안에 모든 일이 원활히 풀리도록 기원했고, 또 권영길 후보가 부탁하는 대로 그에게 투표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압승과 권영길 후보의 선거활동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진행되었고, 이 와중에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례대표 리스트가 나돌기 시작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총선 정국으로 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지독한 소탐대실의 ‘작고도 작은 정치’가 노무현 5년을 거쳐, 다시 이명박 5년을 버텨나가야 하는 한국의 민중에게 작은 방패라도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도저히 그렇게 상상하기 어렵다.

좌파 정치에 ‘명예’가 없다면 무엇으로 사나

이 지독하게도 손에 있는 작은 ‘단맛’을 틀어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 권영길 후보와 그를 앞세워 ‘과일 따먹기’만 하는 집단이, 입으로만 "반 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 이 ‘차가운 자본주의’에 대한 작은 쉼터라도 될 수 있을 것인가?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우파들의 정치에는 ‘실익’이 있다면, 좌파들의 정치에는 ‘명예’가 있다. 그게 없다면, 누가 이 춥고 배고픈 좌파 진영을 지켜나가겠는가?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권영길 후보는 그의 무능이 아니라, 그의 ‘소탐대실’로 적어도 3%보다는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좌파들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지지율이 적어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그가 명예롭지 않은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의 명예를 만들어내야, 그 위에 새로운 정치를 세울 것이 아닌가?

그러나 보수정치 집단도 2007년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것처럼 특정 계파가 당내 견제나 제어없이 불명예스러운 작태를 이렇게까지 보여주지 않는데, 이 흐름이 맨 앞에 권영길 후보가 서 있던 것이 아닌가?

단 한 표를 찍고, 대통령 선거에 세 번이나 후보가 된 거물 정치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운 시절이다. 앞으로 한국의 좌파가 혹은 진보정당이 어떠한 질곡을 겪게 되고, 어떻게 분화될 것인지에 대해서 미리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기 위한 시도의 실마리는 지금 권영길 후보의 손에 있다는 것이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러날 때 물러서는 것이, 진보 정치를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길이다. 3%의 득표율 위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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