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 세습 통로 된 입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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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19일 05: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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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수능이 치러졌다. 태어날 땐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한국인의 신분이 갈리게 된다. 이 엄청난 막중대사에 국가는 숨을 죽이고 관련 업계는 축제를 벌인다.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수능 마케팅에 대학 진학자가 아닌 사람은 마치 사람 아닌 사람처럼 고개 숙여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사진=뉴시스
 

수능에 의해 변별된 석차가 각 대학의 서열을 결정한다. 대학 자체의 연구 역량이나 교육 역량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학은 단지 입시생의 입시 석차를 알려주는 간판일 뿐이다.

입시 석차에서 밀리는 지방대는 천 년이 가도, 만 년이 가도 서울 명문대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이렇게 대학에서의 고등교육을 우습게 여기고 입시성적만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지식 선진국으로 도약할 리가 없다.

성적 석차에서 대학 서열로 이어진 변별은 다시 학벌 패거리의 변별로 연결된다. 동문 집단이 패거리를 이루어 상위 학벌이 권력을 독과점하는 귀족이 된다.

하위 학벌은 밑에서 실무를 보며, 더 하위 학벌과 하위 학력은 더 낮은 곳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학벌사회가 태어난다. 그것이 일 년에 한 번씩 재생산되는 의례가 바로 수능이다.

바로 수능 날 학벌사회는 탯줄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탯줄은 다시 부자들이 자기 자식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는 탯줄로 연결된다.

패거리의 권력독점으로 이미 귀족이지만, 자식에게 세습함으로 해서 학벌은 진정한 귀족사회의 토대가 된다. 당연히 귀족사회는 공화국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능일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국체가 일 년에 한 번씩 질식당하는 망국의 날이기도 하다.

세습과 특권, 권력 독점의 실태

2006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 이상의 학생이 ‘스스로 어느 사회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중류(52.9%) 혹은 그 이상(28.3%)’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의 교육수준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물음에는 49.4%가 ‘대졸’, 27.1%가 ‘대학원졸’이라고 각각 응답했다. 아버지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신입생이 73.5%에 달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경우도 57.6%였다. 그리고 65.9%의 신입생이 금융기관 등 사무직이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경영관리직 아버지를 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사이트 파워잡의 직장인 조사에 의하면 회사에서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인맥과 학벌’이라는 응답이 49.2%로 1위였다. 반면 ‘실무능력’이라는 응답은 38.7%였으며 ‘외국어 능력’은 6.2%로 3위였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조건이 같아도 수능성적이 1점 높다면 임금은 0.5%가 상승하며, 수능성적 100점 차이가 50%의 임금 프리미엄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이 임금격차는 사교육비 격차가 되어 수능점수 격차로 대물림된다. 또 수능성적 차이는 취업률 차이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여성개발원의 2004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로 장애인 차별과 학벌 차별을 꼽았다. 취업사이트 신입닷컴 조사에 의하면 신입사원 합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학벌이 1위, 직무능력은 2위였다.

학벌사회는 또 상층권력을 상위 학벌 패거리들이 독점하는 특징을 보인다. 2003년 <문화일보> 조사에 의하면 국가권력 고위직의 60%를 서울대 학벌이 독점하고 있었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합쳐서 20%, 나머지 학벌들은 부스러기 인생이다.

2005년 기준으로 대법관, 법원장의 85%가 서울대 학벌이다. 역대 대법원장 12명 중 8명이 서울대 학벌이다. 전체 법조인의 약 반이 서울대 출신이다. 법조인의 약 80%가 서울 지역 5개 대학 출신이다.

국회의원의 약 반도 서울대 출신이다. 교육부 고위간부 약 85%가 서울대 출신이다. 경제계는 그나마 덜하다. 2005년 기준으로 100대 기업 CEO의 41.0%가 서울대 출신이다. 10대 그룹 대표이사는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가 합쳐서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수능을 거부하라

학벌은 한 번 낙인찍히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 기준은 입시성적이다. 세상에 이런 희한한 나라가 또 있을까? 서울 지역 명문대 학벌이 되면 한국 사회 상층부 곳곳에 포진한 선배들이 뒤를 봐준다. 명문대 졸업생은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안 통하는 곳이 없다.

   
  ▲제도의 피해자들인 학생들이 ‘응원단’이 아니라, 입시철폐라는 불온한 꿈을 꾸는 자들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사진=뉴시스) 
 

삼류대나 지방대 출신은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나서야 한다. 애초에 경쟁이 될 수 없다. 능력이 아니라 학벌이라는 신분이 중요한 사회다. 그러므로 경쟁사회는 우리에게 신기루다.

어차피 사회로 나가면 더 이상 경쟁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은 입시경쟁에 인생을 건다. 그것이 입시 망국, 사교육비 망국을 부른다. 하지만 입시경쟁도 역시 신기루다.

입시경쟁은 없다. 세습만이 있을 뿐이다. 각 학교, 학원, 교육당국, 정부, 전문가들, 정치인들, 언론들이 모두 국민을 속이고 있다.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입시경쟁이 마치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여 모두들 목숨 걸고 입시경쟁에 가담하도록 유혹한다.

그것이 결판나는 날이 수능일이다. 역시 입시경쟁은 없고 단지 사교육비를 통한 세습만이 있을 뿐이라는 게 다시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그럴수록 더욱 더 사교육비 경쟁이라는 망국의 폭류에 인생을 내던질 것이다.

아이들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아무런 의미 없는 점수 경쟁에 인간성을 착취당할 것이다. 자기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믿으며.

이런 식의 수능은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수능은 국민의 가슴에 한을 심고, 국가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순기능도 하지 못한다. 단지 특권층의 세습통로일 뿐이다.

수능폐지를 넘어

하지만 수능을 폐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신분을 가르는 본질은 대학서열체제에 있는 것이지 수능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서열체제가 있는 한 수능을 없애도 어떤 식으로든 선발이라는 변별 절차가 생겨난다. 대학서열체제가 없다면 수능을 본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권이나 시민운동권이 대학서열체제가 아닌 수능 제도의 폐해만을 문제 삼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것이다. 수능을 약화시키고 내신을 강화하겠다는 게 지금까지의 교육정책 기조였다.

정동영 후보는 그것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각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시켜 수능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겠다고 한다. 모두 핵심을 놓치고 있다.

수능을 약화시키든, 없애든, 등급제로 하든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없애야 할 건 수능이 아니라 입시 그 자체다. 이것은 물론 대학평준화로만 가능한 일이다. 입시를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일단 약화시킬 순 있는데 이건 국립대 평준화로 가능하다.

입시가 사라져야 신분제가 사라지고 공화국이 산다. 차별과 특권의 위헌적 기제인 학벌을 없애는 길도 그것뿐이다.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학력, 학벌에 대한 병적인 집착, 상처, 숭배, 그 모든 망국적 현상을 치유하는 길도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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