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중요한 건 잘 지우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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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10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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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드라마는 말이다. 기적이란 게 없단다.”
    “드라마에서 기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연이 중요해요.”

    단편 <구멍>에서 딸과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 한 대목이다. 어쩌면 윤성희 작가의 소설적 특징 혹은 이야기와 삶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가장 농축적으로 담아낸 대화일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없는 것이 삶이고, 논리와 무관하게 퍼져나가는 우연이 이야기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소설집 『감기』(윤성희 소설집, 창비)의 주요한 맥락들이다.

       
     
     

    우선 <구멍>을 먼저 보자.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로또복권을 사는 아버지에게는 나름대로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번호 6개가 있다. 로또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여섯 개의 숫자에 생의 온갖 의미를 투영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마음에 남는 순간을 딱 여섯 장면만 추려야 하고 그와 관련된 숫자를 딱 여섯 개만 골라내야 한다.

    소설 속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매주 그 여섯 개의 숫자로 그는 로또의 기적을 고대한다. 물론 여느 삶과 마찬가지로 그가 고른 행운의 숫자 여섯 개는 평범한 숫자에 지나지 않거나 혹은 끝내는 비극이나 불운에 인연이 닿은 숫자들이다.

    그것들은 기적을 향하기보다는 그저 삶 그 자체를 향할 뿐이다. 기적은 언제나 타인들의 몫이거나 환상이거나 거짓말이다.

    굳이 말한다면 삶은 기적보다는 우연과 근친 관계에 있을 것이다. 딸이 보내준 효도여행 때문에 복권을 사지 못했고 하필이면 그 주의 1등 당첨 번호가 아버지의 숫자들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한다.

    “내가 공장에서 무얼 만드는지 알지?” “지우개를 만들면서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단다. 그건 잘 지우는 거란다.” “그런데, 솔직히, 잘 지워지지가 않아.”(p.26)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던 아버지는 회사에 가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뜻밖이다. 이어지는 다음 상황에서 어머니는 우물에 빠진 닭을 꺼내려다 우물에 빠져 죽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걱정 마라. 그걸 견뎠는데 이쯤이야. 게다가 닭고기도 잘 먹잖니.”(p.28) 그 순간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바른 벽지가 허술하게 툭 떨어지는데, 딸은 “이불 같아”(〃)라고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에서 소설은 멈춘다.

    그러한 장면들은 윤성희 소설의 의외성 혹은 낯설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들인 동시에 비극을 비극으로만 만들지는 않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들이 윤성희 소설의 진짜 힘인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감기>의 마을버스 운전기사인 주인공 남자는 몽유병을 앓는다. 깨어 있는 남자와 꿈을 꾸는 남자는 하나의 존재이지만 낮과 밤처럼 분리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두 아버지가 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생일이 각기 다르다.

    사실 몽유병은 두 번째 아버지의 등장 이후부터 나타났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다 고치는 만물수리상이지만 아들을 고치지는 못한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있는 존재(들), 결국 윤성희의 주인공들이다. 다음은 꿈에서 아버지를 만난 남자의 목소리다.

    “아버지가 남자를 바닥에 누이더니, 남자의 몸에 박힌 나사들을 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봐라, 나사들이 다 녹슬었구나. 아버지는 남자의 몸에서 오십 개가 넘는 나사를 빼냈다. 나사 빨리 풀기 대회라는 게 있다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그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을 것이라고, 꿈속에서 남자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사가 빠지면서 생긴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바람이 구멍들을 넘나들었다. 바람이 구멍을 넘나들었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을 보려고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갔어요. 앞으로 연애를 하려면 꽤 피곤하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버지 얼른 이 구멍들을 막아 주세요. 추워요.”(p.92)

    ‘이 구멍들을 막아 주세요. 추워요.’ 구멍-상처 난 남자의 영혼이 질병을 호소한다. 그게 바로 감기다. 작가는 영혼에 구멍 난 사람, 그 구멍으로 바람 든 사람들의 쓸쓸한 초상을 그리지만 그들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틀을 꼬박 앓고 난 남자는 마을버스를 몰아 톨게이트로 향한다. 그곳은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만날 수 있는 여자의 일터다. 톨게이트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통하는 하나의 관문-구멍이다.

    “열여덟 개의 정거장을 하루에 여덟 번씩 반복해서 돌던 마을버스는 1997년 가을 공장에서 출고된 이후 처음으로 낯선 길을 달렸다.”(p.97)

    남자는 이것을 ‘소풍’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한낮의 몽유일지도 모른다. “쌓인 눈 위로 햇살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눈이 녹으면서 자기가 품은 빛보다 더 강렬한 빛을 내뱉었다”(p.97)는 묘사가 그런 짐작을 더욱 부추긴다.

    다르게 말하면, 감기 걸린 사람들에게 내리는 작가의 처방이기도 할 것이다. 마을버스가 도착한 곳은 운동회가 한창인 어느 학교의 운동장. 운동장에서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국수를 삶았고,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노란 모자 팀, 빨간 모자 팀으로 나뉘어 줄다리기하는 사람들을 응원했다.

    삶에는 기적이 없지만, 우연에 좌지우지되지만 윤성희의 소설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의외의 위로를 전한다. 앓는 이들 혹은 앓아 본 일이 있는 이들은 이 위로의 행간에 놓인 진정성으로 서서히 몸이 더워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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