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 찍을 겅게 딴 데 수습허고
    2007년 11월 07일 1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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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일요일 아침, 정읍역. 시간을 맞추려니 어쩔 수 없이 KTX 열차를 타야했다. 바로 다음 역인 김제에 가는데 채 15분이 안 되는 거리이건만 요금이 8천 백 원이나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번씩 두 번씩 세 번씩 타게 되는 비싼 기차다.

연착하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옆에 섰던 아저씨와 함께 왜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비싼 차를 타야 하는지, 왜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세상은 고급만을 추구하는지 속상해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탈 기차는 점점 줄어들고, 또 다른 그 무엇이 점점 줄어들고, 줄어들고.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 탈 기차는 줄어들고

김제에서 하루 전 먼저 이동한 민주노동당 사람들을 만났다. 함께 간 곳은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모산 마을 고구마 밭이다. 붉고 찰진 흙 위로 고구마들이 모습을 보였다. 땅이, 흙이, 농민이 키워낸 고구마에 다들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빛깔과 탐스러움에. 지금 캐는 고구마는 파는 것은 아니고 다음해 농사에 쓰기 위해 저장해 둘 고구마라고 한다.

10시가 조금 안 되어 도착했는데 아주머니들께서 참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일할 준비를 했다. 아주머니들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김제 시내에 사는 사람도 있고 군산처럼 다른 곳에서 오기도 한다. 먼 곳에서 오는 아주머니들은 최소한 새벽 5시 30분에는 차를 타야 한다. 일을 나오려면 식구들 먹을 밥도 해야 하고 다른 집안일도 해 놓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새벽 4시에는 일어난다고 한다.

정작 당신들은 해 논 밥을 먹을 틈도 없이 바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아침 일을 얼추 하고 나면 참으로 나온 아침을 밭에서 먹는다. 중간에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새참을 먹고 낮 3시쯤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고 다시 오후 5시 30분까지 일을 한다.

몸이 바짝 마른 한 아주머니께서 권영길 후보와 함께 온 모든 이를 향해 “환영합니다”라고 한다. 그 한 마디 인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 참 먹었어요. 점심 있다 또 먹어요.”라는 말도 했는데 그 말은 여러 갈래 빛깔을 띠고 다가왔다.

아주머니들은 권영길 후보에게 막걸리 한 잔을 건넸다. 일 시작하기 전에 “안주는 잡수시고 시작하라”며 금세 고구마를 깎아 건넨다. 막 딴 고구마는 맛이 무 같아서 며칠을 두어야 한다지만 아주머니들이 건넨 고구마는 짧은 순간 마음이 담겨 있으니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다 찍을 겅게 딴 데는 후보님이 수습허고

아주머니들이 툭툭 말을 던지는데 말이 참 찰지다.

“대통령이 되면 좋은디 뚜껑 열어봐야 알지.”
“우리 갖고 되간디. 우리는 다 찍을 겅게 딴 데는 대통령 후보님이 수습허고.”
“기분 좋은 소리는 박수를 쳐야 하는데 손이 아파서 박수를 못 치겠네.”

   
  ▲사진=진보정치
 

일을 하다 다친 건지 손에 반창고를 붙인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아주머니들 앞이라고 권영길 후보가 하는 말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신은 “데모 대장”이라고 하니 한 아주머니가 흙 묻은 장갑으로 입을 가리면서 모자 속에서 웃는다. 소리 내지 않고 웃는 얼굴을 훔쳐본 나도 소리 내지 않고 씩 웃었다. 그 잠깐 본 웃는 얼굴이 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할까.

한미FTA도 이야기하고 11월 11일에 한번 모이자는 이야기도 여전하다. 빨강, 노랑, 초록, 주황으로 빛깔도 다양한 긴 장화를 신고, 흙 묻은 통 넓은 일 바지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수건을 쓴 아주머니들. 철퍼덕 앉아서 일하기 좋으라고 엉덩이에 맞춰 동그랗게 앉은방석을 만들어 끈을 달아 허리에 묶은 아주머니들이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를 외친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 외쳐본 구호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 엎어져라’라는 말을 속으로 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죽어야 신간 편치’라는 말을 더 많이 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세상을 바꾸자!”라고 40여 명 아주머니들이 외친다. 스스로 먼저 외친 말은 아니지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함께 외쳐 보는’ 경험은 새롭지 않을까.

고구마 캐는 아주머니들과 한미FTA, 민중총궐기, 세상을 바꾸자 이런 것들은 어울리는가, 어울리지 않는가. 그러저러한 것들이 무엇인지 챙겨 볼 틈이나 신경 쓸 틈도 없이 살지만 운동은 운동권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누구든 처음부터 조직된 사람은 없지 않는가. 가장 큰 피해를 당할 사람들은 어쩌면 이 아주머니들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는 40명의 아주머니들

한 아주머니께서 낫을 갈았다. 보통 낫보다는 작고 칼날도 가늘고 얇다. 기다란 숫돌에 대고 간다. 한참 갈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날을 만져본다. 아직 덜 갈아졌는지 다시 간다. 마구 갈아대지 않는다. 무작정 힘을 주지 않는다. 머리 따로 손 따로도 아니다. 잠시 칼을 가는 일도 아주머니에겐 하나의 의식처럼 보인다. 칼을 갈고 낫을 갈고 뭉툭해진 마음을 갈고 굳어버린 세상을 갈고, 꽉 막힌 세상을 뚫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두 모임으로 나눠 한쪽 아주머니들은 저 위쪽 밭으로 간다. 낫을 든 아주머니들이다. 밭에 씌워놨던 비닐을 거둔다고 한다. 아주머니들은 낫을 들고 간다. 트럭에서 노는 검은 잠바도 하나 걸치고 밭주인한테 새 면장갑도 얻어 끼고 따라나섰는데 그 일을 하다 보면 흙투성이가 된다고 “안돼, 못혀”라며 고구마 캐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다른 쪽 아주머니들은 호미를 들고 아래쪽 밭으로 간다. 지금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캐지는 않는다. 갈퀴 모양으로 날이 달린 작은 트랙터로 밭을 갈면 고구마가 얼추 드러난다. 그러면 줄기를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줄기에 달린 고구마를 떼어 밭고랑에 모아놓고 그래도 깊숙이 남은 고구마는 호미를 써서 찾는다. 붉고 찰진 흙에서 자라난 고구마는 그 빛깔도 붉고 선명하고 크기도 적당하고 통통하더니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밭은 흙이 덜 찰진 것 같더니 고구마 빛깔도 마찬가지다.

쭈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라 아주머니들은 “옆구리가 쑤시고 집에 가면 온몸이 아프다”고 한다. 새벽에 집을 나섰던 아주머니들은 집에 들어가면 저녁이고, 흙투성이 옷을 빨고, 땀투성이 몸을 씻고 다시 저녁을 준비해 먹고 치우고, 집안 일 몇 가지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그러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다 잠시 눈 붙이는 나날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는 억양이 달랐다. 중국에서 오신 분이다. 딸이 한국에서 결혼해 아기를 낳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석 달 기한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일한 지는 한 달이 되었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하도 여리게 생기셔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선하게 웃는다.

고구말 줄기의 고구마 같은 사연들

“힘들지 않아요. 중국에서 나도 농사를 지어요. 벼농사랑 감자, 옥수수. 다른 일 찾는 것보다는 해 본 일을 찾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 딸이 일하던 식당에서 아는 사람이 기사를 알아서 소개 해 주었어요.”

딸을 보러 왔다는데 밭일까지 나와야 하는 걸 보니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고구마 줄기 아래 매달린 고구마처럼 아무래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 같다. 잠시 고구마 몇 알 캐면서 어찌 그 이야기들을 물을 것인가.

기사는 아침에 아주머니들을 태우고 와서 일 끝난 뒤 다시 태우고 가는 버스 기사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곳에 오는 아주머니들 간혹 얼마 안 되는 논농사를 짓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농사를 짓지 않는 농업노동자들이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모집된 아주머니들이 인력사무소에서 연결한 버스를 타고 일하러 오는 것이다. 이곳 고구마 밭은 한 달 정도 일한다고 하는데 양파 밭도 다녀봤고, 미나리 밭도 다녀봤다고 한다. 고구마 밭이 끝나면 무 밭에 가서 ‘무시(무)’ 뽑는 일을 할 거라고 한다.

집에서 내가 편히 고구마를 쪄 먹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땅바닥에 달라붙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흙투성이가 되는 노동을 한다. 몇 주 전 잘디잔 고구마 한 상자를 3천 4백 원에 샀는데 살 때도 영 미안했는데 아주머니들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공으로 먹고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박흥식 민주노동당 김제시위원장에게 들으니 김제시나 인근 시, 군에서 오는 이 아주머니들은 지금은 자기 논과 밭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전에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는 걸로는 살기 힘들어 시내로 나갔다가 그곳에서도 먹고 살기 힘드니 다시 농사일을 하게 된다. 농사는 일해 본 사람이 하지 안 해 본 사람은 못 한다. 보통 65세에서 70세 되는 할머니들이 많다. 앞으로 10년 뒤면 일할 사람이 없다.”

농사짓기 힘들어 시내 나갔다가 다시 농업 노동자로

아주머니들은 하루 일당이 3만 2천원이다. 보통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을 오면 소개비를 뗄 것이고, 또 단체로 차를 타고 온다 하니 차비가 들 것인데 그 3만 2천원에서 이것저것 떼고 나면 대체 뭐가 남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일하는 사람은 3만 2천원을 받는다. 아까 봤을 텐데 낫질을 하는 사람은 5천원을 더 얹어 주고, 박스작업(박스사리) 하는 사람도 5천원을 더 준다. 아주머니들이 받은 돈에서 소개비나 차비를 따로 내는 건 아니고 밭주인이 인력사무소에 한 명당 만원씩 쳐서 비용을 낸다. 40명일 경우 하루 40만원을 내는 것이다.”

말을 듣고 보니 머리가 조금 복잡하다. 농촌에서야 3만 2천원도 큰돈이라 할지 모르지만, 최저임금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도시에서도 하루 일당이 보통 2만 원대인 게 흔한 일이다보니 그보다는 낫다 할지 모르지만 시간과 힘든 정도를 따지면 적은 돈이 아닐까 싶은데 소개비로 주인이 내는 돈도 만만치는 않은 것을 생각하니 고구마 농사를 지어 남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다행히 농작물 금이 좀 낫게 매겨지면 마진이 남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구마를 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밭주인인 농민과 일하는 농업노동자, 그 사이에 낀 인력사무소. 밭주인인 농민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만만치 않아 농사를 지어놓고도 수확하지 않는 작물도 있다 한다.

“인건비 감당이 어려워 생강은 저장해 둘 사람만 캐고 안 그런 사람은 아예 캐지를 않는다. 외국농산물 수요가 영향이 크다.”

고구마와 외국농산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사람들 입맛이 변해 당도가 좋은 것을 먹게 된다. 새로운 맛으로 변하면 실제 고구마를 먹던 사람이 안 먹게 된다. 외국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계절 과일이 상관없게 되었다.”

고구마 얘기는 고구마로 끝낼 수 없다

고구마를 쪄서 먹을 때 ‘아, 달디 달다’라는 말을 한다. 지금이야 하우스 농사를 지어 꼭 제철에만 과일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차례로 나오고 들어가는 과일이 있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로 키운 과일들도 마찬가지로 그 때를 맞춰 나온다.

고구마 수확 철에는 다른 것보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단맛을 느낀다. 그 고구마 단맛에 익숙해졌던 입이 수입 과일에 입맛을 들이게 되면 고구마로 가던 손길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입맛은 내가 찾은 듯 싶지만 사실은 내 입맛을 조정하는 그 무엇이 있는 거다.

“한 번 가격이 무너지면 주르륵 이어서 무너진다. 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시작으로 해서 딸기, 참외, 수박 순으로 거두어들인다. 그런데 오렌지가 수입되고, 칠레산 포도가 들어와 가격이 싸다 하면 연쇄적으로 과일 가격이 떨어진다.

2001년에 엘지(LG)에서 오렌지를 수입해서 한 개에 천 원씩, 다섯 개에 5천원에 팔았다. 값이 싸니 사람들이 갑자기 오렌지를 많이 사먹게 되었다. 그때 하우스 농산물이 다 타격을 입어 파산한 사람들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엘지를 상대로 싸웠다. 그 뒤부터 수급조절을 했다. 수입해 놓은 물량이 많아도 나가는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제철 제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저 멀리서 석유연료를 써가며 한 달 이상씩 걸려 실려 오는 과일들. 아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면 수입해 오는 나라의 농업노동자는? 에콰도르에 있는 수많은 바나나농장들, 거기에 붙어있는 ‘돌(Dole)사 마크. 그리고 다른 나라 어느 농장에 붙어 있을 다국적 기업들의 마크. 결국 누구를 위해 생산하고 누구를 위해 소비하는 것인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집어든 과일에도 누군가의 삶이 오늘 무너지고, 잘 모르는 다국적기업들이 내 입맛을 쥐고 흔들고……. 고구마 밭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고구마 밭에서 끝나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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