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만의 해방구, 고급호텔
        2007년 10월 31일 12:21 오후

    Print Friendly

    TV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부자집 또는 좀 사는 집 자제들은 하나같이 호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본다. 호텔 커피숍이라 봤자 스타벅스 서너 배쯤 가격이니 큰 호사랄 것도 없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네들은 호텔에서 만나 호텔 바에서 술 먹고, 호텔에서 바람 핀다.

       
     
     

    그런데 어쩌다 유럽 쪽 호텔에 가보면 그렇게 으리으리한 호텔 커피숍이 없다. 왜 한국 또는 동아시아에만 그런 것들이 있을까? 『도시의 창, 고급호텔(후마니타스)』은 그런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아파트공화국』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의 발레리 줄레조를 비롯한 일곱 명의 필자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의 고급호텔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관광 안내서는 아니다. 그들은 호텔에 얽힌 동아시아의 현대사와 도시공간학, 계급적 특성 따위를 살핀다.

    동아시아의 호텔은 먼저, ‘서구적인 것’이다. 아시아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서구를 옮겨 놓은 모델하우스인 셈이다.

    “아시아의 고급호텔은 직접적으로 외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호텔의 출현은 도시 현대화뿐만 아니라 문호개방을 비롯해 서구인들과 관계를 맺게 된 여러 시기와 연관된 현상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고급호텔은 문화적 충돌과 경제적 역학관계가 집약되는 장소이다.

    …1960년대 이뤄진 호화 숙박업소 개발은 미국인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때 개발된 첫 번째 호텔의 명칭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1950년 서울 광진동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월튼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라지었다.”

    그리고 상업부르주아지의 산물인 유럽과 미국의 호텔과 달리 아시아의 호텔은 부지, 사업자의 선정, 건축 후 영업 지원에까지 관(官)이 개입한다. 이른바 ‘국가 주도 모델’인 셈이고, 도시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개발주의에서 호텔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구화도 국가주의도 시들해진 요즈음 아시아의 호텔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제 호텔은 더 이상 여행객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도시의 창, 고급호텔』의 필자들은 아시아의 호텔이 현지 거주 중산층 더 정확하게는 도시부르주아지의 ‘사교 혹은 사교문화’라고 말한다.

    “한국의 고급호텔은 비슷한 범주의 유럽호텔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리셉션, 식음, 스포츠클럽, 수영장, 사우나 같은 각종 서비스가 현지 고객 유인책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호텔 전체 수익 중 평균 40% 이상을 내국인이 올려준다. … 인터컨티넨탈 호텔 피트니스 클럽 회원 1600명 중에 한국인이 아닌 경우는 단 20여 명 뿐이다.”

    필자들은 아시아의 고급호텔을 ‘특권화된 고립지역’, ‘자발적 격리’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저희들끼리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국회나 청와대를 드나들 때보다 더 주뼛거리게 하던 번쩍번쩍한 호텔 로비, 그 위화감의 정체. 서울 고급호텔의 대리석 바닥과 상들리에와 공손한 직원들은 ‘너희는 들어오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에게 서울의 고급호텔은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과시적 성격의 특권을 소비할 수 있는 장소다. 동시에 현대적이면서도 호화로운 고급호텔은 세계를 여행한다는 느낌, 그리고 서구와 접촉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적 표상체계 안에서 서구성은 상류층임을 나타내 주는 사회적 기호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