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지식인 모순 그대로 드러내
        2007년 10월 29일 06: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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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 창신동의 ‘수다공방’을 찾은 문국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전순옥씨.(사진=뉴시스)
     

    <오마이뉴스>는 전태일의 동생인 전순옥 박사의 문국현씨 지지를 집중 보도했다. 이것이 왜 기사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기사를 기획한 <오마이뉴스>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2002년 대선 때도 <조선일보>가 권영길을 지지한다는 식의 만평을 내보내고, 권영길 후보를 성매매를 일삼는 파렴치한으로 묘사한 <오마이뉴스>였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띄우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무엇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이고, 그것이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전순옥의 정치적 권리는 오빠와 무관

    전순옥 박사의 문국현씨 지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는 정치인도 아닐 뿐더러 자신과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역사적 인물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에 대해서 비난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순옥 박사의 인터뷰는 정말로, 한국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책상물림이 아니라 유기적 지식인에 가까운 그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이렇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이 왜 전혀 바뀌지 않는가를 잘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그의 비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공감하지만, 그 대안이 문국현라는 것은 정말로 비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이라는 틀로 사회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지식인 집단의 이러한 비약은 전순옥 박사만의 현상은 아니다.

    문국현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선인일 것이다. 브레히트가 쓴 『사천의 선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훌륭한 회사를 만들고 그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보장해주는, 한국에서 드문 인물인 것은 틀림 없다. 이명박에게 청계천이 있듯이 문국현에게는 노동자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유한 킴벌리라는 회사가 있기 때문에 그 힘은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과 현명한 자본가

    하지만, 여기까지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계급 자체가 각성하고 단결할 때만이 가능하지 현명한 자본가가 줄 수 없다는 교의는 절대로 맑스주의의 편협한 교의가 아니다. 여전히 그것은 보편적 진리이고, 학자와 지식인의 궤변으로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놀랍지만 이러한 교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한국의 자본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끊임 없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스웨덴의 놀라운 사회복지는 각성되고 강력하게 조직된 LO라는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고, 그 정치적 대표체인 사회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단련되고 숙련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노동운동의 진원지에서 탄광노조를 분쇄시킨 세계 우익의 태양(?)인 대처조차 어쩌지 못했던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의 공공의료 시스템)는 2차대전 이후 영국노동운동과 노동당의 강력한 정치적 드라이브로 가능했던 것이다.

    극도로 불평등하고, 아직도 ‘굶는 자가 없게 하겠다’는 정치적 공약이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는 브라질에서 룰라의 연이은 집권은 CUT(브라질노총)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전순옥과 시대착오적 단일화 촉구하는 교수들의 공통점

    전순옥 박사의 인식과 진보진영의 단일화를 이루라는 시대착오적인 일부 교수들의 인식이 무엇이 다를까? 그들의 인식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공통점은 그들의 사고에서 노동자들의 각성과 단결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아주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크나큰 간극, 대기업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 속에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는 현상,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의 정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무능과 그 주도세력의 편협함과 파당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만개, 이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있고 이를 부정하는 모든 궤변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노동자의 지위는 노동자계급 자체의 각성과 단결에 의하여 향상된다는 것, 그 조직적 수단은 정당과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다는 것.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문제가 있고, 내부 개혁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른 정당과 다른 노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양극화의 주범인 사이비 개혁세력이 그 답이라거나, 선량한 자본가가 그 해답이라는 주장은 아마 역사를 백 년이나 후퇴시키자는 주장이다. 아니 어찌 보면 거대한 사기극인지 모른다. 궤변과 사기극은 언제나 있었다. 다만 전순옥 박사라는 한 개인의 개인사적 이력 때문에 그 궤변과 사기극이 가려진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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