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비핵개방 3000’ 한가한 소리
        2007년 10월 23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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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남북공동선언이 비록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점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60년 동안 메마르고 갈라졌던 땅에 단비가 내렸고 물길이 만들어졌다.

    한나라당이 서해 NLL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 발언에 시비를 걸었지만, 그들의 대선 주자인 이명박 후보는 9.19공동성명이 이행된다면 북한을 ‘전폭’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비핵개방 3000’ 비전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대세인가?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는 사실상 대세에 몸을 맡긴 셈이다. 한국사회당과 사회비판아카데미가 18일에 공동으로 주최한 ‘한반도 평화체제와 경제번영을 위한 제3회 포럼 –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에서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는 “북핵 폐기는 10.3 6자회담 합의문을 통해서 확인된 바인 만큼 이명박 후보 또한 한반도 평화번영경제에 있어 큰 이견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 사회당과 시회비판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사진=사회당) 
     

    덧붙여 한나라당의 매파 의원들을 겨냥해 “NLL 논쟁은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금민 후보는 “2008년부터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라는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는 국면이 전개되리라고 본다”며 대세론을 펼쳤다.

    이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서보혁 이화여대 학술원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의 말대로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줄이고 친밀감을 키워가야 할 시점에 비핵개방 3000과 같은 주장은 그저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누가 됐든 이미 시작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물길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한국 정치에 분단의 영속화를 바라는 매파는 있겠지만, 이 매파를 지지해 줄 유권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일찍이 한국 보수파의 전략가인 윤여준 전 의원도 “한나라당이 미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가 내부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서보혁 연구위원의 말대로 진보진영의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 보수 세력과 논란을 벌이는” 방식으로 매파를 돕지 않는 한, 매파가 뜰 이유는 없다.

    한국의 민족지상주의자들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예컨대 남북관계와 주변국 외교관계의 경중을 따지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는 한국 민족지상주의자들의 민족공조 우선 원칙이라는 교조가 아니라 북한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는 행동 대 행동이라는 상호주의적 접근을 통해서 풀어가야 할 복잡한 방정식이다.

    평화협정의 시간, 주체, 내용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체제와 경제번영을 위한 제3회 포럼에서 금민 후보는 “핵 폐기와 종전선언의 선후관계 혹은 핵 폐기가 먼저냐, 경제원조가 먼저냐의 문제는 실질적인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것에 있어 난관의 요소이지만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평화 지향적 상호작용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될 것”이라고 했다.

    즉 핵 폐기가 무조건 우선이라는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은 한가한 소리겠지만, 어쨌든 평화체제 수립의 과정이 6자회담에서의 북핵문제 해결과정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는 만큼 모든 과제를 시간 순으로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금민 후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평화가 경제를 견인하고, 다시 경제가 평화를 견인해내는 이른바 평화체제 수립 과정에서의 ‘선순환적 구조’다.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평화체제로 가는 방법이라면 어떤 경로가 됐든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일 것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는 평화와 경제, 경제와 평화의 로드맵에서 주체도 구조도 이원화돼 있다는 점에서 다시 발생한다. 10.4 남북공동선언문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필요한 남북관계 정상화의 요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과정이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늘 구경꾼 노릇을 해왔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복잡한 함수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미국의 선 핵사찰 수용 요구와 북한의 선 금융제재 해제 요구가 충돌하다가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 성공으로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그런데 10.3 6자회담 합의문 발표 이후에는 북한과 미국 모두 태도를 바꾼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예전의 북한이라면 불만이 많을 텐데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다”며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제네바에서 공개된 내용 이외에 공개하지 않은 합의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북한이 불능화를 연내에 완료하기로 한 만큼, 미국도 연내를 기한으로 약속한 상응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가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큰 만큼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다만 그 상응 조치의 내용이 명문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무엇일 수 있다.

    북핵 문제, 북미관계 정상화와 관련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 원칙은 행동 대 행동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음의 행동을 열 수 있는 열쇠다.

    이와 관련 서보혁 연구위원은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북핵 폐기는 정말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방식이 원칙인데, 북한이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했다.

    예컨대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한 사실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양이 50킬로그램이라는 것은 오직 미국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핵사찰 이전의 추정적인 핵물질에 관해서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을 폐기할 것인지는 핵의 2단계 불능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에 달렸다. 물론 주고받기 게임인 만큼 판단의 주체는 미국과 북한 양자 모두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이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폐기의 대상으로 거론될 것인가의 문제도 남북관계 정상화의 과정에서는 10.4 남북공동선언문으로 정리된 경제와 평화, 평화와 경제의 정돈된 순서를 흐트러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 이행에 있어 평화와 경제, 경제와 평화의 시간 배열의 문제도 6자회담의 시간 배열 순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6자회담 합의문 이행의 문제와 남북공동선언문 이행의 문제, 즉 북미관계 정상화의 과정과 남북관계 정상화의 과정이 얽혀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 시간 배열에 의해 흐트러질 수 있듯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의 선순환도 시간 배열에 의해 흐트러질 수 있다.

    한국의 역할은 어디까지?

    서보혁 연구위원은 “남북공동선언에서 종전선언 추진의 당사자로 3자 혹은 4자라고 했는데, 9.19 공동선언 때처럼 직접관련 당사국이라고 했으면 차라리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 중국인만큼 중국의 입장에서 북중미가 3자일 수 있고, 남한의 입장에서 3자는 남북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4자로 간다고 했을 때, 그럼 마지막에 4자로 참여하는 당사국이 누가 되는가도 미묘한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덧붙여 “관련국이 많고 불신도 많은 만큼 한반도와 동북아가 실질적인 평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적인 문제의 처리 과정, 즉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며 평화체제 수립의 과정에서 종전선언의 의미를 강조했다.

    어쨌든 종전선언 당사자는 남북미중 4자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로 굳어지고 있다. 남은 것은 그럼 평화협정 당사자도 4자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 금민 후보와 서보혁 연구위원 모두 “평화협정 당사자는 남북한이고, 미국과 중국 등 핵 보유 국가들이 안전을 보장하는 보증국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대담자로 참석한 차문석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도 “종전협정 당사국의 문제가 평화협정 당사국으로 연결되면 한반도 문제가 북미 관계로 일방적으로 끝나거나, 남북 당사자가 자주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남북관계, 북미관계 모두 동상이몽 속에서 남한이 배제되는 방식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며 “평화협정을 누가 주도하는가에 따라서 평화협정 이후의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에 따라 분단이 고착화된 평화체제가 될 수도 있고, 미국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자신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는 평화체제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두 경우 모두 한반도 평화체제가 군축을 전제로 하는 동북아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의 과정에서 남북관계, 북미관계 둘 사이의 교집합 부분을 찾고 의제화하는 일이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이 모든 과정에서 남한이 발언권을 잃지 않는 것이 최소강령”이라고 했고, “때문에 남한이 주도적으로 현실론을 펴면서 북미관계 정상화의 과정에 전략적으로 제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친다고 해서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 대한 남한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끼리”는 북한과 남한 민족지상주의자들의 언어이지만, 북한 또한 한반도에서 자국의 평화와 경제번영을 보장받기 위해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복잡한 방정식에 참여하고 있고, 시간 배열을 흐트러뜨림으로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깨뜨릴 수 있다.

    관건은 어떻게 남한의 평화세력이 이 과정에 긍정적 행위자로서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군축을 전제로 한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진보적이고 총체적인 평화외교 전략이다. 그리고 한국의 평화세력은 적어도 평화/경제 및 남북/북미의 이중적인 선순환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모든 움직임에 대해서 정치적 항의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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