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발걸음과 함께 만들어지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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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2일 06: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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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구가 20만 명에 달했다는 해남은 이제 8만 명만 남았다. 도시로 떠나고, 늙어가면서 해남의 넓은 벌판에 사람은 점점 줄어간다.

그래도 해남 5일장은 활기가 남아 있다. 장사를 하는 분들도,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모두 중년을 넘지만, 시골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활기가 넘쳤다.

오전 내내 장터를 도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 말이다.
“아따, 기(진짜)구만, TV에서 많이 보았소”

   
  ▲ 사진=진보정치
 

시골 장터 구경만큼 재미난 일이 없다. 없는 것이 없고, 온통 흥청거린다. 촌로와 손잡고 웃을 때만큼 마음이 푸근해질 때가 없다. 해남 황산면 교동리에서 임흥택 해남농민회 회장님을 만났다. 촌집에는 막 추수를 마친 나락이 쌓여있었고, 마당에 주민 7~8명과 둘러 앉았다.

임흥택 회장님은 “농민이 벼랑 끝, 벼랑 끝, 한 지 오래 됐는데, 이제 정말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심경을 말한다. 1백만 민중대회 이야기는 한참 할 이유가 없었다. “해남에서 한 번 제대로 모아보겠다”고 힘을 주었다.

월동배추의 최대 생산지인 해남답게, 산이면은 온통 푸른 배추밭이었다. 김대만 분회장님은 “이 배추는 통일배추로 키운 것이고, 북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갔던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님은 “기왕이면 김치를 담가서 전라도 김치 맛을 보여주라”라며 웃었다.

콩을 심으면, 한 알은 자기가 먹고, 한 알은 이웃을 주고, 한 알은 새를 주고, 한 알은 종자로 삼는 것이 농군이라더니, 북으로 보낼 배추를 튼실하게 키우는 농군의 마음이 느껴졌다.

송지면 삼막리에서 잠시 벼를 베고, 북평면으로 옮겼다.

70을 넘긴 북평면 노인들이 20여명 정도 모여 있었고, 마을 간담회를 했다. 백발의 노인들이 권영길의 등장에 기립박수를 쳤다.

“내가 78년을 살았는데, 우리 마을에 대통령 후보가 온 것은 처음이다. 정말 방문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정정한 노인분의 말에 기가 솟았다.

인사말로 “1백만 민중대회를 열어 세상을 바꾸자”라고 열변을 토했는데, 70을 넘긴 노인들이 던지는 질문이 TV 토론회 패널들 못지 않았다.

   
  ▲ 사진=진보정치
 

부유세는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이냐, 의료보험료는 병원 더 많이 다니는 사람에게 더 내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 것이냐….

어느덧 간담회 자리는 정책토론장으로 변했다. 해남농민회의 열성활동가이며, 북평면의 젊은 이장인 이무진 이장께서 열심히 활동해오신 것이, 그대로 주민들의 정치의식 성장으로 나타난 듯하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열정과 헌신은 항상 보람으로 결과를 남기는 것이다.

해남지역 당원들과 기분 좋게 맥주까지 한 잔 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 숙소로 묵었던 해남 대흥사 범각 스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남풍이 불어야 변화가 시작된다”

어쩌면 초라한 발걸음이지만 이렇게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2007년 10월 21일 해남 읍내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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