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환호하는데 내겐 배 12척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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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2일 04: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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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길을 떠난 지 이틀째다. 하루는 순천의 농민, 하루는 광양의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해남 대흥사에서 복잡한 심경을 정리한다.

어제(19일)는 좌수영에 있었고, 오늘은 우수영까지 왔다. 올해의 대선 승리는 단순한 선거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IMF 이후 내몰리는 민중의 삶, 이 비정한 약육강식의 흐름을 바꾸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산사에서 밤을 보내며, 12척 배로 대군과 맞섰던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인데, 출발점에 선 우리의 전력 상태는, 12척 배만 가졌던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0만 민중대회, 과연 100만을 모을 수 있을까.

산사의 밤, 사방은 조용한데 머릿속은 복잡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원들과 농민들,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고, 또 호소하는 것 뿐이다. 목이 터져라,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면, 마음이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만인보의 첫날, 벼를 베고 처음으로 콤바인도 몰아 보았다. 순천의 추수철 들판에 앉아 밥도 먹고, 막걸리도 한 잔 했다. 옛날에 농사일 도우며 품앗이 농사하던 마음은 그대로인데 못살겠다는 말뿐이다.

   
  ▲ 농민들과 나누는 술 한잔에 뜨거운 연대의 기운이 술과 함께 흐른다.(사진=진보정치)
 

가난했지만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서, 겨울이면 사랑방에 모여서 이야기 나누던, 그 더불어 살던 그 삶은 사라졌다. 이제 굶을 걱정은 덜었지만, 더 가난해진 듯하다. 혼자가 된 풍요, 그 속에 고독해 하는 삶과 가난했던 그 삶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삶일까.

둘째 날 만난 광양 창덕 에버빌 아파트에서 들은 가슴 아픈 이야기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부도 임대아파트의 주민처럼 처지가 딱한 사람도 없다.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임대아파트 하나 장만했는데, 그 보증금이 날아가는 피 맺힌 서러움이 주민들에게서 느껴졌다.

한 아주머니가 “이 서러움이 내 아이한테까지 전해진다면, 그 끔찍함을 어찌 할 것이냐”라며 울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이런 세상을 막아달라”라며 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왈칵 눈물이 나왔다.

   
  ▲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사진=진보정치)
 

광양에서 만난 노동자들. ‘포항제철 노동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꾸려, 거대자본 포스코와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90년대 초, 나는 몇몇 동지들과 2년의 물밑작업 끝에 포항제철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노조는 1년 반을 버티고 무너졌고, 그것은 두고 두고 한으로 남아 있다.

그 후에 포스코 자본은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고 있고, 마지막 남은 노정추 소속 노동자 4명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선 채로 말을 나누었다. 몇 마디 훈수도 두었지만, 그 노동자들이 길을 몰라 민주노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 거대자본 포스코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 힘을 꺾을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꿔서, 국가기간산업은 국가가 소유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제철소의 저 굴뚝은 항상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광양항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 달에 300시간씩 초과노동을 한다고 한다. 24시간 연속근무, 48시간 교대 근무가 다반사다.

가족들의 식사시간에, 아이들은 아버지 자리에 숟가락 놓는 것을 잊었고, 노동자들의 소원은 가족들과 시간 쫒기지 않고, 삼겹살 한 번 먹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판을 바꿀 수 있을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농민들은, 노동자들은, 사람들은 권영길을 보며 박수를 치고, 연호를 한다. 그러나 가진 것은 12척뿐이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산사에서는 새벽까지 바람을 타고 목탁소리가 들렸다.

2007년 10월 20일 해남 대흥사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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