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질병은 온난화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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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11일 04: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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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 그는 2006년 1월 볼리비아의 대통령에 취임한 사람이다. 원주민 출신인 그는 볼리비아의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재배하는 코카 잎 경작 농민이었고 이들 농민 노조의 지도자였다. 코카 잎은 마약 제조의 원료로도 이용되지만 그는 순수 식용, 약용 식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2005년의 대통령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어 29%에 머문 경쟁자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정당인 ‘사회주의운동’당(MAS)– Movimiento al Socialismo –은 상하 양원을 장악했고, 9곳의 지방 정부 중 3곳에서 승리하였다. 거의 모든 주요 전자, 인쇄 미디어에서 네거티브 보도를 일삼았는데도 승리하였다고 한다.

    농민노조 지도자에서 대통령으로

    이같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경우는 최근 50년의 볼리비아 역사에서 없었다. 문자 그대로 남미의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지식인들은 포퓰리스트적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 같다.

       
      ▲ 기자회견 중인 모랄레스 대통령.
     

    예를 들어, 미국의 좌파 사회학자인 제임스 페트라스는 2006년 1월 초에 쓴 칼럼에서 에보 모랄레스를 ‘포퓰리스트 제스처를 가진 신자유주의적 실체의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는 2006년 1월 22일 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페트라스는 예를 들어, 석유와 가스 자원의 국유화 조치도 없을 것이며 남미의 오랜 병폐인 대토지 소유자의 독점적 농지 운영을 거부하는 토지개혁 조치 등도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에보 모랄레스 정부가 취한 첫 번째 정책은 IMF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6년 5월, 천연가스 자원의 국유화를 밀고 나갔다. 이미 우리 언론에 많이 소개된 천연가스 자원의 국유화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생략하겠다. 이 국유화 정책의 효과는 컸다. 알베르또 끄루스에 의하면 집권한 지 1년 만에 경제성장률이 4.1%에 이른다고 한다. 이정도 거시 경제 수치면 남미 경제 상황에서 양호한 편이다.

    ‘텔레수르’ 보도에 의하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세 나라는 2007년 8월 가스 에너지 통합협정인 ‘따리하 협정’(Acuerdo de Tarija)을 맺었다. 가스 수출국들끼리의 일종의 ‘가스 OPEC’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볼리비아 정부로서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지원을 받아 확실한 가스 생산 프로젝트를 따낸 셈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 정부는 볼리비아에 4억 5천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여 천연가스 액화 분리 공장 건설을 지원하게 되었다.

    제대로 못 열리는 제헌의회

    또한 2007년 8월 볼리비아 정부는 ‘토지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률은 농민과 원주민들에게 보다 형평성 있는 토지 재분배를 증진할 것이며 이로써 ‘사회경제적 기능’(FES- Funcion Economico Social)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중요한 축이 열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고에 여유가 생기면서, 오랫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사회 정책’– 문맹퇴치사업, 농업조합의 트랙터 구입을 위한 연성 크레딧, 약 2,000명의 쿠바 의사 등을 통한 외진 지역에의 의료보건 사업 등— 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기득권층은 강력하게 저항한다. 대표적인 예가 대토지 소유 농장주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부 지역 일부 주의 지방자치 운동이다. 전통적으로 볼리비아는 중앙집권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방자치를 둘러싸고 좌우파가 대립하고 있다.

    현재 에보 모랄레스 정부의 정치적 입지는 불안한 상황에 있다. 헌법제정의회가 출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우파의 정치적 반격에 의해 제대로 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헌법안의 구성도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수도이전까지 우파가 들고 나와 시위와 파업 등이 계속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선거운동 당시 ‘볼리비안 노동자 연맹’(COB)과 광산 노조 등이 석유, 가스 등의 국유화와 헌법제정의회 소집을 요구하면서도 모랄레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일반 노동자, 농민들이 대거 지지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고 한다.

    좌파의 묵은 발상 벗어나야

    신자유주의 시대는 좌파세력에게도 기존의 묵은 발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과 비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나라마다 구체적인 정치지형의 차이로 인해 다양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위기적 상황 또는 국면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의 예로, 베네수엘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전통적인 좌파 정당과 노조는 신자유주의 돌파에 실패하였다.

    필자가 굳이 에보 모랄레스에 대해 ‘생태적 영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보 모랄레스로 대표되는 중남미 원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대지를 ‘어머니’로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도 그렇다, 우리 전형적 농민들도 그렇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많을지 모른다. 그렇다.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농민들은 경제성장의 덕택(?)에 누리고 있는 높은 수준의 소비주의와 격렬한 생존경쟁으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많이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중남미 원주민들은 엄청난 가난에 시달리지만 자신들의 삶의 양식(또는 사회적 자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한국 농민과 중남미 농민의 차이

    물론 가난은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인권, 자유의 해방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의 일반 시민들, 지식인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시각이다. 우리는 ‘영성’이라고 하면 어떤 초월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영성의 해방』의 저자인 리바니오에 의하면 “초월의 눈을 간직한다는 것은 세계와 역사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와 역사 안에 있는 교만과 모순의 요소들을 드러내준다. 개개인이 그러한 것들을 절대화시키려고 할 때 초월에 대한 이해를 그곳에 투사시켜 그러한 절대화를 막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 이데올로기의 절대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 말로 영성적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에보 모랄레스는 이런 중남미 원주민 문화를 인류의 ‘도덕적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큰소리를 잘치는 것이 중남미 사람들인 것 같다. 최근 유엔 본부를 뉴욕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기후 변화’ 문제와 연관해 미국의 앨 고어는 적극적으로 생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생태적 영성’이란 단어를 부치는 데는 거부감이 든다. 왜냐하면, 거액의 강연료를 받으며 강연하고 백만장자인 고어는 환경 문제의 절박함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부하며 대안적인 사회연대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앨 고어 환경운동에서 비어있는 곳

    다시 말해 ‘서구의 문화적 이성 또는 근대성’의 충실한 엘리트 후계자인 그에게는 환경문제와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연결시키는 문제의식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에보 모랄레스는 중남미 원주민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깊은 철학적 사색을 보여준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2007년 9월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를 조금 길지만 들어보자.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열이 나고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 모델이라고 불리는 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지난 만 년 동안에 이산화 탄소 방출량의 10%를 내보냈다면 최근 200년간은 산업발전으로 인해 30%를 방출했습니다.

    2005년은 그 동안의 천 년 역사 중 가장 더운 해였다고 합니다. 다양한 연구에 의하면 생물 종 4만여 종 중 약 만 6천종이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 이런 어두운 미래 앞에서 다국적 기업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제안하고 있으며 기계를 녹색으로 칠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비이성적 성장과 소비주의를 지속하자고 합니다.

    저는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읽어보았읍니다 이 보고서는 기후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몇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석유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물에도 가격 매기기, 청정 에너지 분야에의 민간 투자 활성화 등등— 이것은 마치 질병을 생산하고 그 질병으로 돈을 벌자는 거지요.

    바이오 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리터의 에탄올 생산을 위해서는 12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일 톤의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평균 일 헥타르의 토지가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우리는 (원주민, 가난하고 정직한 주민들) 우리의 근원( 어머니 대지를 존중하는 것, 안데스 지방에서는 대지를 빠차마마Pachamama라고 부릅니다)과 다시 만나기 위해 멈출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중남미 원주민들은 생명과 자연을 지키기 위한 첨병(아방가르드)이 될 것을 역사가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더 이상 GDP 성장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 개발 지수와 생태 흔적 지수’를 채택해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그들의 소비 수준을 낮추고 우리 모두는 빠차마마의 같은 나그네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최전선은 ‘언어’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은 극단적 ‘소비주의’에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 소비주의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있음을 어느 나라에서나 체험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페인의 마드리드 꼼뿔루뗀세 대학의 마르꼬스 로이뜨만 사회학 교수는 최근의 그의 저서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최전선은 ‘언어’의 대결에 있으며 반 신자유주의측 전선이 지속적으로 대안을 말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그 ‘발언’의 노력이 미흡하면 친 신자유주의측 전선이 끊임없이 소비 대중을 설득한다고 한다. 따라서 좌파진영의 담론은 “짧고 간단하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매력적이고 쉬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발언해서 대중의 뼈 속까지 파고들고 그래서 마치 소비자가 ‘민주주의’를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게 되어 소비 대중이 민주주의를 욕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로이뜨만 교수는 강조하고 있다. 마치 우리사회의 경우, 소비 대중이 ‘다이어트’를 욕구하듯이 ‘민주주의’를 욕구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우리 사회의 어느 좌파 세력이 미래 비전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왠지 70년대, 80년대 방식의 추상적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 국면에서 적어도 미래 비전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더 구체적이고 쉬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능 점수로 청소년들을 일직선 세우듯이 전세계 국가들을 매년 어느 권위있는 국제 기관이 국가 발전 순위 등등 하면서 일직선으로 줄세우면 볼리비아와 같이 중남미의 가난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들은 매년 꼴찌에 가 있다. 우리는 이들을 업신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의 전 지구적 생태 위기 국면에서 세계사의 아방가르드임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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