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폐지-대학평준화가 승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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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10일 08: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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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이여! 입시폐지-대학평준화야말로 온 국민의 여망이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혁명을 완수하라!”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가 첫 사업으로 진행한 전국 2,200km 자전거 대장정의 완주 기자회견문은 이같이 끝맺는다(전문은 www.edu4all.kr 에서 볼 수 있다).

       
      ▲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통한 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자전거 대장정에 나선 조희주(왼쪽) 전교조 전부위원장과 필자.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22일간의 자전거 대장정이 대학평준화 국본의 사업으로 전개되었지만, 나는 ‘학벌철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깃발과 나란히 민주노동당 깃발을 자전거에 꽂고 전국 64개 도시를 순회했다.

    그 이유는 다음 에피소드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를 한두 시간쯤 달리면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도시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미리 전화로 약속을 하고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한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약 10분간에 걸쳐 학벌폐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대학평준화 운동이야말로 지역운동을 묶어 민주노동당이 집권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11월 24일 ‘대학평준화 촉구 제1차 범국민궐기대회’는 서울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 집회 형식으로 치를 예정이며 지역에서 대학평준화 국본의 초동 주체를 만드는 데 지역 위원장이 정치적 책임을 질 것과 지역에서 조직책으로 일할 분을 한 분 정해줄 것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지역위원장들은 취지에 공감하고 흔쾌히 동의를 표한다. 중앙당을 통해 전국적인 당 사업으로 대학평준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위원장도 있다. 결의의 징표로 명함을 건네받거나 수첩에 서명을 받고, 약속의 증거자료로 기념촬영을 한 다음 당 사무실을 나서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학벌사회에 대한 두 마음

    민주노동당이 대학평준화 방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내건 것이 2004년 총선 때였으니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처음 대학평준화 방안이 제시되었을 때 잠깐 주목을 받았을 뿐, 별반 진전이 없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그릇된 실천 때문이겠지만, 대학평준화 의제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은 학벌체제의 포로가 되어 그것을 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는 학벌체제의 수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학벌체제가 모순적이라고 느끼면서도 거대한 학벌구조의 벽 앞에서 무력한 개인들은 구조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무한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부분의 국민들은 학벌경쟁에서 실패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학벌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 또한 마음 한 구석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만약 학벌구조가 일거에 깨어질 수 있다는 징조가 보이면 이들의 염원은 구체적인 열망으로 전화될 것이다.

    학벌체제와 학벌주의는 현재의 지배구조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학벌체제라는 구조는 학벌주의라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기반이다. 그것이 지배구조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힘으로는 그것에 대항할 수 없고 포섭될 수밖에 없다.

    학벌체제를 깨부수지 않는 한 학벌주의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고 거꾸로 학벌주의는 학벌체제를 강화할 것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지배 이데올로기 기구인 주류 언론은 끊임없이 학벌주의를 유지, 재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이나 개인적인 설득의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도 없고 학벌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없다.

    대중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학벌주의에 포박된 대중의 관념은 오직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흔들릴 수 있다. 학벌주의에 포박된 현재의 생각을, 학벌 없는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중운동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한 쪽 마음에 가지고 있는 염원을 구체적인 열망으로 바꾸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운동이고 진보정당식 정치가 아니겠는가?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출범

    문제는 지금까지 교육운동 진영이건 민주노동당이건 이른바 현안 투쟁에 발목이 잡혀 대학평준화 의제를 항상 ‘장기적’ 과제로 설정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두 마음으로 미루어볼 때 지금 ‘장기적’ 과제가 몇 년 후에 저절로 단기적 과제로 바뀔 수 없다.

    입시문제를 둘러싼 교육 모순이 곪을 대로 곪은 이때가 대중운동을 통해 ‘장기적’ 과제를 당면과제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준비위 출범식 축하 공연을 하는 이화여고 춤 동아리 학생들.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9월 20일 출범한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가 당보다 먼저 목적의식적인 대중운동의 시작을 선포했다.

    대학평준화 국본은 이름이 말하듯 ‘대학평준화’라는 단일한 의제로 우리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조직방식과 투쟁방식으로 명실상부한 ‘국민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첫째, 회원 가입이 원칙적으로 개인들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각종 연대운동이 대부분 형식적 연대를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민주노동당 뿐 아니라 대중조직 내에 고질적 병폐로 되어 있는 정파간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다.

    둘째, 국본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회원의 지속적인 확대이다. 대학평준화에 찬동하는 국민은 누구라도 한 번만 일정액(성인은 1만원 이상)의 기금을 내면 평생회원이 된다. 따라서 이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올해 1만명, 내년에 10만명, 후년에 100만명 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회원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회원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조직(지역공동실천단)의 건설과 이를 거점으로 한 회원확대가 관건이다.

    넷째, 사업방식 또한 지역공동실천단의 활동에 집중될 것이다. 1년에 한 차례 로 예정되어 있는 범국민대회는 서울 집중대회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지역조직을 중심으로 전국동시다발 집회로 진행될 것이며, 국민운동본부의 조직, 정책, 선전팀 등의 기구는 지역 조직사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주요 임무로 할 것이다. 대학평준화를 향한 대중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학평준화 운동과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

    대학평준화는 현존 학벌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집권세력 혹은 지배권력에 요구하여 점진적 개혁의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대중운동으로 돌파해야 할 혁명적 과제다. 민주노동당이 해체되지 않고 지금의 정책을 유지한다면 결국 대학평준화 교육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몫이 될 터이다.

    4년 전 총선 국면에서 대학평준화 프로그램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제출할 때 단순히 선거 공약으로 한 번 써먹어 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대학평준화 의제로 대중운동을 조직하여 집권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해 보라고 한 것이다.

    대규모의 대중운동을 거치지 않고 집권한 진보정당이 세계사에 어디 있는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진보정당이라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의 등락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몇 %의 지지를 획득하고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몇 석을 차지하고 하는 그런 문제에 목을 매어서도 안 된다.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2008년 제1야당, 2012년 다수당’ 하는 식의 주관적인 일정표를 집권전략이라고 우겨서도 안 된다.

    민주노동당에 어떤 집권전략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도대체 집권하려는 의지가 있는 정당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평화-통일 의제가 집권전략이 될 수 있는가? 6.15나 8.15에 연례행사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모아도 집권으로 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주택-부동산 의제인가? 어떤 사람들을 동원하여 어떻게 대중운동을 전개해야 할지 막막하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 의제가 될 수 있는가? 대중운동을 조직하기에는 대중들에게 너무 어려운 의제다.

    대학평준화만큼 대중운동을 조직하기에 좋은 의제가 또 있는가.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과 교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들도 끝없이 치솟는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임계점에 이르렀다. 서민들의 고통 1호가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문제가 아닌가.

    항간에는 “사교육비 문제만 해결해주면 대통령 시켜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미 FTA나 조세혁명처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대학평준화 국본 준비위원회 출범 직후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인 회원 가입이 쇄도하고 여러 지역에서 초동 주체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학평준화 운동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부문운동으로 분화된 한국 사회운동이 결집하여 정치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핵심 매개고리가 될 수 있다.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고, 농민운동은 한미 FTA 반대투쟁으로 여념이 없다.

    여러 형태의 연대운동이 모색되고 있기는 하지만,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보니 운동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정세이다. 게다가 뾰족한 돌파구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입시와 사교육비, 대학등록금 등 교육문제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대학무상교육 의제는 이러한 국민의 공통 관심사를 결집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평준화 운동이 이러한 잠재력을 현실화시킨다면 분산되어 있는 한국의 사회운동을 결집하여 정치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매개고리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지역위원회 또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역운동의 구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아직 부문운동들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분산된 지역운동을 묶어내어 집권으로 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지역당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지역당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지역운동을 묶어낼 수 있는 적절한 의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지금은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 국면이 아닌가. 어차피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목표가 아니지 않은가. 이번 대선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몇 명 만드는 전초전쯤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북한산에서 외친 ‘대선 승리’가 한갓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분명한 집권전략이 있어야 한다.

    대학평준화 말고 대선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더 좋은 의제가 있는가. 입시폐지-대학평준화를 전면에 내세워 집권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아직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특별위원회’(이름은 무엇이라도 좋다)를 구성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선거대책위원회 인선이 되었다고 하니 곧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이조차 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의 반사이익을 한나라당에게 내어준 ‘잃어버린 4년’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줘도 못 먹나’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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