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까페 투쟁'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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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08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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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레디앙>에 ‘프랑스 남자와 결혼 않고 살아가기’를 연재를 한 바 있습니다. <레디앙>은 연재됐던 내용을 포함 필자의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서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출간될 책 가운데 ‘나의 민주노동당 잠입기’ 편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와 입장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것이지만,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는 의미있는 시각, 내부자이면서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바라본 당의 속내가 솔직하게 표현돼 있어, 민주노동당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용에 대한 찬반을 넘어서 좋은 거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레디앙>은 앞으로 6회에 걸쳐 그 내용을 전재합니다. <편집자 주>

‘다니다’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을 위한 ‘문화감성 충전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문화 프로그램 하나를 정하여, 가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이드가 될 만한 전문가 한 사람과 함께 가서 보고, 토론하고, 밥이나 술을 먹는 그런 느슨한 (그러나 속내는 야심찬) 모임이다.

당직자들의 문화감성 충전 프로그램

상상력의 산물인 정책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을 건드려줄 다각도의 자극이 필요하고, 정책을 팔아서 장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민주노동당 당사에 갇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일상을 벗어나, 발랄한 감수성 솜털이 피부 위에 돋아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화부를 상대하다보면, 그들로부터 "예산을 올렸는데 기획예산처에서 다 잘렸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경제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 전체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매번 해오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건조한 인식은 당내 설문조사를 통해 공인된 바 있다.

어느날 온 국민들이 대오 각성하여, 갑자기 민주노동당에 권력을 쥐어준다면, 그 때 기획예산처, 재경부, 산자부, 노동부 등에 가서 국정을 다룰 민주노동당의 사람들은 그럼, 문화적인가? 문화는 문화부만의 영역이 아니며, 삶의 모든 영역에 명사적인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형용사적인 가치로서 스며들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잘 스며 있는 사회가 우리가 흔히 일컫는 선진사회일 것이다.

문화(Culture)란 단어의 라틴어 어근을 들여다보면, 경작하는 거다. 밭을 경작하고 그리고 나를 경작하는 거다. 문화를 소유한다는 것은 다독다독 잘 다져진 풍요로운 땅을 소유하는 거다. 문화는 꽃이 아니라 토양이다. 그 땅에서 어떤 나무,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힐지는 나중의 일이며 각자 선택의 몫이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임하는 자들이 마르크스만큼 향기롭고 풍요로우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매력적인 인간이었다면,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말에 와서 이렇게까지 푸대접 받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은 셰익스피어를 한없이 읽는 것이었음을 그의 딸들은 증언하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의 유령은 햄릿에 등장하는 그것과 일치하고 있음을 자크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les spectres de Marx)』이란 책에서 또 얼마나 명민하게 간파해 내고 있는지.(보라, 마르크스와 셰익스피어가 주고받은 저 위대한 상상력의 유희를!!)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의 토양을 일구어 가며, 위대한 상상력의 뿌리를 그 속에 내리게 되길 기대하며 난 조촐한 작업을 하나 시작하였다.

나와 비슷한 문화적 열망을 갖고 있던 의원실의 보좌관 한 사람과 모임의 초동 주체가 되어, 약간의 예산도 의원실에서 마련해 주었다.

피카소, 박제된 천재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의원실의 보좌관들과 중앙당 당직자들을 모아서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박물관, 뮤지컬 공연장, 전시장, 극장 등을 함께 다녔는데 기껏해야 10명 안팎의 작은 인원이었다. 가겠다는 사람은 꽤 있지만, 결국 그 날이 오면, 언제나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우리 발등 위에 무수히 떨어지고, 반쯤은 자신의 문화적 감성을 내려놓는 선택을 한다.

그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함께 피카소 전을 보러갔을 때였다. 이 때에는 희완이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마치 피카소 옆집에 살았던 이웃처럼, 세세히 그의 모든 작업과 고민과 각각의 작품들이 갖는 관계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주며, 온 몸으로 눈앞에 그리듯 설명해주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도, 괴상한 사기꾼도 아니고, 하루하루 예술 작업이라는 실천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확장해간 공산주의자이자 예술가였던 피카소의 삶은 ‘천재’라는 박제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비로소 우리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희완의 설명과 나의 통역으로 진행된 두 시간 남짓한 우리의 관람에는 일반 관람객들의 긴 행렬이 더해져서, 나중엔 큰 무리를 이루기도 했다. 그들이 따랐던 집단이 민주노동당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희완은 그것이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예술 작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술가들이 그것을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를 튕겨져 나가 저항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앞서나간다.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 좌파는 현상을 뒤집어보고 까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하고 예술하는 자세와 같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속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하고,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에서 뛰쳐나오려 한다.

평등에 초점을 맞추던 좌파의 태생적 관점은 점점 자유 쪽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겨왔다. 그러나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는 부언이 필요한 난감한 설명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 깨닫는 가장 명확한 좌와 우에 대한 설명은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살아있고 깨어있으며 무한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과의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는 것이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영혼을 일찌감치 무덤 속에 파묻으며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의 미명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을 발전이라 여기는 쪽은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 민주노동당이 입주해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 당사.
 

우리에게 까페를 달라

2006년 12월, 당은 여의도 당사를 떠나 문래동 당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여의도 당사는, 전엔 집권 직전의 김대중이, 지금은 차기 집권을 노리는 이명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당 자리였다. 구구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핵심은 경비 절감이었다.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당연히 여의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효율면에서 유리했다. 새로 이사 온 문래동 당사 주변에는 수백 개의 철공소가 있었다.

그 밖에는 철공소 사이사이에, 자리에 앉으면 백반을 자동적으로 주는 밥집 몇 개,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다방 몇 개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맞게 노동자들 옆으로 왔다고 했지만,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가 육체노동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다. 굳이 철가루 휘날리는 철공소 밀집 지역이 최적의 사무공간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는 거다.

이번 당사 이전은 국회 입성 이후, 쉼없이 퇴보해온 당의 지지율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의 명백한 퇴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숨막히는 계파간 갈등과 소통의 부재는 점점 더 명백하게 당으로부터 활력을 앗아가고 있었고, 나는 숨 막혀 죽기 전에 이사를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새로 이사가는 당사에 까페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소통과 휴식과 상상력 충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전 당사에는 소위 담배방만 하나 있을 뿐, 휴게실 개념의 공간이 없었다. 부서와 일하는 층을 떠나 중앙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섞여서 대화 나누고, 잡지나 만화책도 뒤적이고, 음악도 들으면서 잠시나마 히피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난 예산과 함께 계획표를 짜서 당에 제안했고,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약속됐던 까페는 이사 당일 없었던 것으로 되고 

새로운 당사에 까페를 위한 공간은 당연히 없었지만, 평면도를 보면서, 두 층 사이에 나있는 내부 계단을 막아, 그 자리를 까페로 만들자는데 합의할 수 있었다.

건축 담당 연구원이 내부 인테리어 구상을 맡기로, 화초를 좋아하는 에너지 담당 연구원이 실내 조경을 맡고, 희완에게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까페는 책과, 잡지가 그득한 북까페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서가는 각 당직자들의 기부를 받아 채워지고, 꾸며지는 것으로 구상되었다. 오호… 이렇게 신나는 일이. 난 잡지, 인터넷을 통해 샘플이 될 북까페들의 사진들을 열심히 수집하면서 이사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부 집기를 위한 약간의 예산까지 확보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 까페는 이사 당일 사라졌다. 정작 이사를 와 보니, 도면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공간이 좁다는 게 이유였다. 까페 자리에는 사무실이 들어찼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기도 안차는 주먹구구. 무책임. 무대책에 난 소위 뚜껑이 열려버렸다.

집단의 철학은 공간이 그대로 반영한다. 반대로 공간이 담고 있는 철학은 집단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일할 공간도 없는데 무슨 까페냐”는 논리로 약속했던 까페는 없어졌건만, 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은 독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당사 내부 공간배치와 민노당의 철학

권력구조를 공간 구성을 통해 정확히 반영해 낸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사무실은 햇빛이 잘 드는 남쪽 창가를 차지하고 앉았다. 당의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차지한 방과 사무 공간 사이를 완강하게 막고 선 석고보드에 햇빛이 차단당한 채, 좁을 뿐 아니라 차갑고 암울한 분위기를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독방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공동의 공간을 만들며, 벽면을 투명 혹은 반투명으로 바꾸고, 소통을 위한 까페를 만들어 달라는 주장을 담은 글을 써서 당 내에서 서명을 돌렸다.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을 했다. 서명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 거의 정확하게 정파로 갈렸다.

서명된 문서는 대표와 사무총장과, 정책위 의장에게 전달했다.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무렵 당 내에 노조가 만들어졌고, 노조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요구는 공문으로 전달되었으나, 우린 나중을 기약하는 무성의한 답변을 받아보았을 뿐이다.

대신 NL쪽 색깔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체들, NL을 대변하는 당원게시판의 논객들에게서는 일제히, "정책연구원들, 웬 웰빙타령인가" 하는 비아냥들이 쏟아졌다.

결국 또, 까페 논쟁도 정파적인 싸움으로 읽혀, 의견은 이분되었으며, 아무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삶은 정치이며 당 안에서 모든 사안은 정파적으로 해석되고 결정된다는 진리를 다시 입증한 셈이다.

단언컨대, 민주노동당사 안에 내가 구상했던 그 북까페가 들어서고, 당직자들이 그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잡지를 뒤적이고, 그림을 그리며, 업무영역과 무관하게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릴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당 사람들의 우울하고 딱딱했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자극해 주는 순간, 당의 지지율은 뛰어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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