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88만원 세대 커버스토리로
    2007년 10월 06일 06: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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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창간한 <시사IN> 제3호(10월 9일자)는 ‘분노하는 88만원 세대 : 유신세대와 386은 착취를 멈춰라’를 커버스토리로 하여 일곱 꼭지의 글을 실었다. <시사IN>이 마련한 88만원 세대 이야기는 『88만원 세대』 책이 미처 다루지 못한 새 사실들과 소설, 영화 같은 곳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한다.

   
 
 

먼저,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책에 얽힌 이야기를 더 들려준다. 그는 『88만원 세대』가 일제 시대 당시의 좌우합작처럼 사회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했고, 그를 위해 우파들도 수용할 수 있는 이론 틀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좌파 경제학 이론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표준경제학 우파들의 이론을 주로 인용했다. 『88만원 세대』의 이론 틀은 경제 원론 체계를 만든 새뮤얼슨의 ‘세대 간 중첩 모델’과 균형성장론자인 솔로의 ‘세대 간 형평성’, 그리고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위에 세웠고, 여기에 약간의 진화경제학을 사용했다."

청년층 체감실업률 19.5%

새로 나온 경제 통계와 사례를 살펴본 고동우 기자의 기사는 처참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구직 단념, 단시간 근무, 취업 준비 등을 포함하는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6%의 다섯 배가 넘는 19.5%나 된다.

그렇다면 우선 비정규직이라도 되어야겠지.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 가운데 단 7%만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한국노동연구원, 4월 발표 자료). 그래서 청년들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되고, 몇 년 동안 경쟁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작년에는 64.6 대 1이 되었다.

서강대를 졸업한 후 60군데 넘게 시험에 떨어진 김 아무개는 “이제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은 접었어요. 제발 아무 일이나 좀 시켜줬으면 좋겠고,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조혜경(베를린 자유대 정치학 박사)의 글은 ‘고용없는 성장’의 원인을 "제조업체 유형 자산이 10억원 늘어났을 때 고용 증가 인원이 2003년 평균 36.7명, 2004년에는 18.2명, 2005년에는 3.1명으로 급감"한 데에서 찾고, 이런 상황에서 CEO 출신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성장을 외쳐대는 것이 부질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이 모두에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 처지에서 보면, 임금 인상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성과 이윤이 증가하는 반가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없는 성장’이 좋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다섯 편의 소설(『펭귄뉴스』, 『핑퐁』, 『갈팡잘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달려라 아비』, 『조대리의 트렁크』)로 88만원 세대를 읽는다. 그 소설들에서 88만원 세대는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거나 망치에 대가리를 얻어맞을 운명으로 태어난 ‘못’이거나 가벼운 욕지거리인 ‘시봉’으로 불린다.

정여울은 캥거루족이니 프리터족이니 나홀로족 따위 88만원 세대의 다른 이름 뒤에 숨은 음모를 고발한다.

"이러한 신종족의 출연에 호들갑을 떠는 태도야말로 88만원 세대를 타자화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지나치게 날카로운 경계를 그어 그들이 지닌 다양한 ‘탈중심성’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이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문화전략이 아닐까.

…이들의 다양한 문화적 취향을 시시콜콜 구별짓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아프게 환기하는 우리 사회의 ‘계급성’을 은폐시키는 전략이 아닐까."

‘프리터족’ 등 세대담론은 계급성 은폐 전략

허문영은 노동석 감독의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을 통해 ‘끝없이 하강하는 무기력한 청춘들’을 본다. 그들은 싸우지도 않고, 아예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떠밀려 간다. 여기서 ‘그냥’이 중요하다.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싸울 수 없다. 잔고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현금 인출기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혹은 내일 3백%의 이자를 물더라도 오늘 1백만 원을 만들어내는 카드의 마술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 카드, 현금 인출기, 보험 따위를 경유해 그의 형, 혹은 실장, 혹은 사장으로 대표되는 윗세대들은 무언가를 자꾸 떠넘긴다."

’20대 소설가’ 김애란은 20대에 대한 세상의 진단이 진실일까를 묻는데, 그가 내린 나름의 해답은 "어른이 될 수 없을 때 그 구조 안에서 느끼는 고통이 더 컸다는 것이다."

김애란의 느낌을 조금 과장되게 해설해보자면, ’88만원 세대’의 세대적 실체는 사회적 성인식을 봉쇄당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훈육과 매질의 대상일 뿐인 중세 아동노동자들이다.

다시 우석훈으로 돌아가서, 그는 <시사IN>을 통해 "내년 총선에 20대 비례대표가 국회에 갈 수 있게 해주자.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주장한다.

무릇 인간집단이 제 목소리를 내고 제 이익을 챙기는 데는 정치가 최고 첩경이다. 길고 힘든 정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유럽보다는 정치 기반이 취약하고 ‘쇼’를 즐기는 한국 정치에서 20대 국회의원 생기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20대 국회의원’이 아니라, 여전히 ’20대’다. 아무리 20대의 세대성에 철저한 청년일지라도 한국 정치 현실 속에서 그 참담한 젊음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노조 위원장 출신의 수많은 국회의원들과 ‘여성단체 참여정부’의 여성운동가들이 ‘출신자 정치’의 실패상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남은 건, ‘대표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알량한 알리바이 뿐이지 않은가.

따라서 다시 관건은 ’20대 국회의원’을 복돋우고 채근할 ’20대’의 형성이 아닌가. 88만원 세대라는 경제 소외집단은 분명히 있는데, 국회의원 하나 만들 힘 가진 세대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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