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 의장의 ‘우리’는 누구인가?
    2007년 09월 28일 04: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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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사진=민주노동당)
 

남재희 전 장관이 권영길 후보에게 준 글은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아프고 겸허하게 들을 것도 있고,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인 권영길로서는 도저히 받아 안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남 전 장관의 조언에 흐르는 큰 뜻은 추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에 적응하라는 것인데, 민주노동당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야 하는가는 사람마다 달리 생각할 게 당연하고, 아직은 커가는 당인 민주노동당이 구태여 그리 변모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나는, 현재의 권영길 후보과 민주노동당이 1971년의 김대중과 80년대 신민당만한 기백도 없다는 불만을 품고 있으니, 남 전 장관과 보는 점이 많이 다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이용대 정책위 의장의 「미국이 힘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힘이 있습니다(<민중의 소리>, 9.27)」라는 남 장관에 대한 반론은 “그런 소리 들어먹어 싸다”는 증거로 쓰이기에 딱이다.

“‘북한이 곧 망한다’는 생각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라는 초유의 세계사적 변화가 일어나던 80년대 말 90년대 초부터 많은 인텔리들과 보수종교인들이 줄곧 주장했던 내용입니다.

…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어떤 리얼리즘에 근거한 것인지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언젠가는’ 망할 것이라는 예단이 그 선입견의 실체라면 그러한 사고방식은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 ‘고장난 시계’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북한이 언젠가 망할 것이라는 주관적 예단을 앞세우는 사람과는 현실대응에 대한 어떤 토론도 시간낭비일 것입니다. 그런 견해가 오늘의 시점에서 근거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무엇을 할 것인가의 대응 과제에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용대, 윗 글

남재희는 ‘북한 붕괴’를 말하지 않았다

이용대 의장은 반론의 상당 부분을 북한 붕괴론이 틀렸다는 주장으로 채운다. 그런데 남 전 장관의 글 어디에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언급은 없다. 다만 ‘실패한 체제인 북한’이라는 정도의 표현만이 있을 뿐인데, 오늘날 북한 인민이 처한 경제적 곤궁 등을 볼 때 이 정도의 평가는 오히려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망하지 않지 않았는냐는 이 의장의 반론은 남 전 장관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남 전 장관의 조언을 극우파의 비현실적 몽상과 같은 것으로 매도하기 위한 악의적 왜곡이다.

“지금은 ‘분단체제’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문제’의 차원인 것”이라는 남 전 장관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 전 장관의 이전 글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씨에게」를 살펴봐야 한다.

“요즘 어느 학자가 쓴 좋은 논문을 보니 남북관계는 ‘분단체제’에서 ‘북한문제’로 크게 차원이 바뀌었다고 분석을 하고 있다. 사례연구를 한 것을 보면, 예를 들어 프에블로호 사건 때는 ‘분단체제’였다. 협상도 그런 차원이다.

그러나 6자회담에서 북핵을 논의하는 차원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분단체제’가 아니라 ‘북한문제’ 차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사이에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과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 또한 북한은 우선 경제에서 실패한 체제이다. 남한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에 북한은 이제 진정 보살펴야 하는 ‘북한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긴 말을 할 계제가 아니어서 세부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남한은 북한을 통 크게 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 남재희,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씨에게」, <프레시안>, 8. 30

이런 시각은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보다 북한을 한 축으로 하는 위기 해소와 북한에 대한 지원이 더 시급하다는 중단기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은 단기적 안정화에 머무르지 말고 평화통일의 전망을 굳건히 견지하자는 것이 되어야지, 이 의장처럼 통일 지상주의로 맞받아쳐서는 곤란하다.

이용대 의장의 통일 만능론

“통일코리아의 단합된 힘만이 세계 최강대국의 전쟁기도를 항구적으로 막아내는 유일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리아연방’ 건설이 시급한 과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이용대, 윗 글

통일하면 진짜 전쟁 위험이 사라지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분단되어 있어 침략을 당했나? 전쟁은 당사자간 이익 충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므로, 당사자 중 어느 일방 또는 쌍방이 변하거나 이익 조화에 의해서만 전쟁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과 ‘항구적’ 평화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이용대 의장식의 통일만능론은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남 전 장관 주장에 논거로서 힘을 실어줄 뿐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지고지선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용대 의장의 주장 역시 극히 조야하다.

“‘흡수통일’은 서민에게는 고통과 재앙을 영구화하는 것이 될 뿐이므로 반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당은 연방통일, 곧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서민이 진정으로 잘사는 나라이고 서민의 빈지갑을 채워주는 나라, 서민의 5대걱정이 없는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이용대, 윗 글

연방제는 흡수통일을 막아주는 장벽이 절대 아니다. 독일에서 연방제는 흡수통일의 한 장치였을 뿐이다. 강대한 남한 국가가 흡수통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형식은 연합일 수도 연방일 수도, 또는 전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즉, 연방이나 연합이라는 것은 체제와 사회 통합에 제한성을 둠으로써 통합을 용이하게 하고자 하는 국가 통합의 특정한 양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연방제로부터 ‘서민’이라는 따위의 국가 계급성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성립의 주도 세력으로부터 계급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연방’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른 상호 체제 존중의 북한판 변형이라 보는 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핵무기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북한이 가지고 있다

이용대 의장은 민주노동당이 돈키호테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 “실천으로 검증된 과학적 노선에 입각하여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라고도 말한다. 사실에 있어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검증된 바가 적기는 하지만, 이 정도 자기 확신은 마땅히 있어야겠다. 그런데 이용대 의장의 ‘실천으로 검증된 과학적 노선’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이 힘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힘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벌써 집권했겠지. 남한에 그런 힘이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 의장은 그 힘의 실체를 스스로 밝힌다.

“북한은 이른바 선군정치를 앞세워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대결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그에 따라 해방 이후 장기간 지속되어온 한반도의 전쟁위기 국면이 평화국면으로 유턴할 수 있는 민족사의 일대 전기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 이용대, 윗 글

참으로 당혹스런 일이지만, 이용대 의장의 ‘힘’은 북한의 선군정치와 핵무기였고, 이용대 의장의 글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다.

그런데 과연 북한 정권이 그 핵무기를 민주노동당을 위해 쓸까? 천만의 말씀이다. 누군가는 핵무기를 쥐고 있는 북한 정권을 든든한 ‘빽’으로 삼고 싶겠지만, 북한 정권으로서는 핵무기와 교환하고 싶은 가치와 물질이 너무나도 많고,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북한에 별 도움될 일 없는 남한의 군소정당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처럼 미국을 벌벌 떨게 만들겠다”는 권영길 후보의 연설은 ‘돈키호테’로 비치기 십상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핵무기 가진 조선 국방위원장처럼 행세해서야 쓰겠는가?

나는, 신자유주의와 미국에 대한 남재희 전 장관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편 그런 시각에 대한 비판이 이용대 의장처럼 북한 정부의 외교적 허장성세를 앵무새마냥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와 미국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힘이 있다”는 거짓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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