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심상정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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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05일 01: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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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와 내 동생

    “야 이 눔아, 아직도 자냐? 해가 바뀌어도 아직도 그 모양이니 원… 그러니까 취직을 못 허는거여, 이 놈아”
    “알았어요. 일어날 게요. 아… 그리고 아침마다 전화 좀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요새 짜증나 죽겠구만.”

    어머니가 요즘 부쩍 전화가 잦아지셨다.

    대학 졸업하고 4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 못하는 아들이 밉기도 하시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대운하 공사 조령산맥 구간에서 노가다를 뛰었고, 운하 완공된 다음에는 수변도시에서 음식배달도 했다. 그렇게 번 돈, 진짜 아껴서 4년 만에 2천만 원이나 모아 놨다.

    “어이구. 잘났다 잘났어. 이 놈아 요즘 같은 때 직장 못 구해봐. 니가 한 순간이라도 버틸 수 있을 줄 알어? 돈 2천만 원? 그게 10년을 가냐, 20년을 가냐?”

    하여튼 부모님은 내가 큰 아들인데 큰 아들 취급을 안 해주신다. 일자리 못 구한 걸로 치면 내 동생도 마찬가진데, 동생에게 역정 내는 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고 칭찬만 받던 내 동생은 번듯한 명문대 나오더니 전공이랑은 상관도 없는 무슨 수돗물 틀어주는 공기업에 취직했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그 회사가, 동생이 회사 들어간 지 1년 만에 민영화돼버렸다. 그때 구조조정이 하도 심해지니까 노조가 부랴부랴 투쟁을 한다 뭘 한다 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과 무질서를 뿌리 뽑는다면서 노조를 완전히 ‘개작살’ 내버렸다.

    동생은 회사에서 짤리고 나서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더니 요새는 번듯한 직장 아니면 쳐다도 안 본다면서, 인제 자기 전공 살려서 나노 관련 회사에 취직한다고 공부 중이다.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했으니까 좀 기다리면 취직자리가 생길거라나 뭐라나.

    2. 대한민국 747

    “콜록콜록”

    운하 공사 때 알게 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나저나 서울시내는 무슨 공사를 이렇게 항상 하는지 요새는 내 기침도 만성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규제 철폐, 규제 철폐하더니, 아파트랑 빌딩들 참 많이 짓는다. 정부는 1,800만의 대도시 서울이 세계 제1의 규모가 됐다면서 이 빌딩 산맥을 훌륭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끼익.’
    버스에서 내리다 보니까 여기저기 큰 광고가 눈에 띈다.
    ‘대한민국 747.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 G7이 멀지 않았습니다.’

    저 747 광고는 내가 운하 공사할 때 아침마다 구호 외치던 거였는데 서울에도 맨 747 천지다.

    3. 설렁탕

    “야 임마. 너 아직도 취직 못 했냐?”
    “너는? 똑같은 처지에 목소리 높이기는…”

    “그나저나 뭐 정말 제대로 돈 되는 일 없을까?”
    “있기야 있지… 너 예전에 2천만 원 모아 놓은 거. 그거 아직도 있냐?”

    “있지 그럼. 그거라도 없으면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
    “야, 너 주식 좀 해봐라. 우리 형이 요새 부동산 무슨 회사에 투자했는데 장난 아니래. 돈 불어나는 재미로 산다니까”

    “정말로? 하기야 요새 돈 있는 집에선 고등학교 애들도 주식한다고 하더라.”
    “내가 우리 형한테 종목 물어봐서 알려줄 테니까. 투자해라. 알았지? 돈 벌면 나도 좀 주고.”


    “747~747~ 대한민국을 세계 7강으로 ~747~747~”

    “야! 너 웬만하면 벨소리 다른 걸로 바꾸지 그러냐.”
    “설렁탕이나 마저 먹어. 미국 소뼈 우려내서 맛이 끝내줘.”

    4. 운하 옆 식당

    “근데, 너 배달일은 왜 그만 뒀냐? 거 운하 옆에 있는 수변도시 배달 많다고 좋아 하더만”
    “거기? 배 한 대도 안 다녀. 우리 식당도 망했어”

    “그래? 관광지로 소문났었잖아?”
    “관광지는 무슨.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나서 근처에는 갈 수도 없어”

    “아줌마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세요. 그리고 그 뉴스 볼륨 좀 높여줘요.”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신년사에서 지난 4년간 한국경제가 연 4%의 성장을 거뒀다면서 애초 목표에 미달한 것에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대통령의 신년사.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747이라는 목표를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작년 경제 성장률이 4%에 머물렀던 것은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일해야 할 때에 일부 사람들이 정부만 비판하고, 노동조합은 아직도 파업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맵시다. G7이 되는 그 날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계 7대 강국 국민으로서 우리는 노후, 의료, 환경, 주택 그 어느 면에서도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조금만 더 견뎌주십시오. 더 노력해주십시오. 국민 모두가 불도저가 된 심정으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신다면, 747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대통령으로서 저 이명박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있수. 깍두기. 어휴…그 놈의 747인가 뭔가 벌써 4년째 지겨워 죽겄네 아주. 대통령은 허구 헌날 점점 좋아진다는데 우리집 매상은 왜 맨 날 그대로야?”

    5. 주식 폭락

    친구 말대로 2천만 원을 몽땅 투자했다. 대기업에 내가 취직할 가망은 제로다. 중소기업도 옛날보다 사람들을 별로 안 뽑는다. 은행이나 보험사나 증권회사 이런 데는 돈을 쓸어 담는다는데, 사회경력이라곤 노가다에 배달일 밖에 없는 나에겐 딴 나라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투자다, 투자. 솔직히 2천만 원이면 초기 투자금으로 적은 게 아니다. 요새 내 나이 또래 중에 이 정도 모아 놓은 사람도 별로 없다. 이 돈이 3배가 되면 6천, 그게 또 3배가 되면 1억 8천 아닌가!

    “아니 이게 뭐지?”
    포털사이트 첫 화면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뉴욕 시장 붕괴, 한국 주식시장 대폭락 우려.’

    “어? 이게 뭐야, 제기랄. 내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내 2천만 원은 다 날라 가는 건가? 인터넷엔 연이어 ‘대재앙’, ‘붕괴’, ‘사상 최악의 공황’ 같은 말들이 떠다녔다.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운하에서 4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인데 이것마저 없으면 난 정말 어떻게 되지?

    “으아악~~”

    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심상정 대통령은 …”

    6. 다행히

    “휴…꿈이었구나.”
    “너는 무슨 꿈을 그렇게 요란하게 꾸냐?”
    “어… 어머니, 그러게 말이요”

    꿈 치고는 참 악몽이다. 요새는 직장도, 집도, 생활도 세 박자가 아주 딱딱 맞는다. 그런데도 악몽을 꾸다니, 몸이 허약해졌나? 좀 있다가 우리 가족 주치의 선생님한테 전화해야겠다.

    그나저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반지하에 살았었는데, 그 1가구 1주택 정책이 참 좋긴 좋다. 덕분에 잔소리 심하시던 우리 어머니도 요새 얼굴이 환해지셨다. 나중에 아들 살 집 걱정 안 하게 된 것이 그 웃음의 이유이다.

    “아침 밥 먹고 출근해라”
    “네, 어머니. 근데 동생은 벌써 출근했어요?”
    “응, 회사 근처에서 아침 운동 한다고 나가더라.”

    동생은 1997년 IMF 때 민영화된 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는데, 정권 바뀌고 나서 1년 만에 정규직이 되었다. 일은 똑같이 하는 데 처우는 너무 다르다면서 항상 입이 1미터는 나와 있던 동생은 그날부터 이 정부와 노동조합의 열혈 팬이 되었다.

    7. 새만금

    “아니, 오늘은 금요일인데 퇴근하고 운동하지 뭘 새벽부터 그런대요?”
    “퇴근하고 나서 노조랑 어디 탐방 가나 봐. 새만금인가?”

    동생은 요즘 노조가 벌이는 생태탐사에 아주 푹 빠져 있다. 요즘은 도시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굳이 멀리까지 안 가도 될 텐데, 꼭 그렇게 먼 곳만 찾아다닌다.

    “거기 별로 볼 것 없지 않아요? 갯벌 같은 것 다 없어졌을 텐데?”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안 그런가 보더라. 그 뭐라드라? 갯벌벨트? 그거 살아났대…”

    심상정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새만금에 해수 유통을 한다고 했을 때 논란이 많았는데… 참 잘했어…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회사로 출근하는 길. 도시의 공기가 참 맑다. 당장 서울만 해도 쓸데없이 건물 짓는 일도 없어지고 교통체계도 환경친화적으로 바뀌어서 공기가 전에 없이 맑아졌다.

    ‘끼익’

    버스에서 내리는데, 정류장 옆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나와서 유인물을 나눠준다. ‘자산재분배조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기업이윤, 부유자산은 본래 그것을 생산한 노동자와 서민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8. 세박자

    “이야, 근데 미국은 진짜 큰일이다. 광우병 때문에 벌써 몇 명이 죽었냐? 심상정이 쇠고기 수입 중단 안 시켰으면 우리도 큰 일 날 뻔 했다. 안 그러냐?"
    “거, 신문 그만 뒤적거리고 밥이나 먹지?”

    퇴근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 성격은 예전 그대로다.

    “그나저나 회사 일은 할 만 하냐?”
    “응. 좋지, 너는 어때?”
    “나도 좋아. 근데 요새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주식이나 해볼까 생각 중이야.”

    예전부터 재벌 되는 게 꿈이었던 친구는 직장 생활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주식투자는 무슨. 지금이 2007년이냐? 주식투자하게?”
    “그래도 대박 볼려면 주식 말곤 없잖아”

    “넌 세상 바뀐걸 아는 거냐? 모르는 거냐?”
    “정권 바뀐 거야 알지”

    “그럼, 정규직으로 회사 다니면서 받는 월급이면 사는 데 충분하잖아. 대한민국에서 따로 돈 모아서 집을 살 일이 있냐. 크게 병원비 들어갈 일이 있냐. 아니면, 앞으로 애들 교육비가 들어가길 하냐?”

    “하기야 대학통합네트워크라고 부르던가? 수능폐지되고 개방형 입시제로 바뀌니까 좋긴 하더라. 사교육비 부담 없어지고 대학 따지는 것도 약해져 가고 있으니 말야. 우리 학교 다닐 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그지?”

    “세 박자 속에~일자리도 있고, 복지도 있고, 집도 있네~”

    “전화 온 거냐?”
    “응”
    “요새 세박자가 난리다. 애들도 맨 이 소리 깔아놓았더라구”

    9. 신년사

    “아줌마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그리고 지금 뉴스 시간인데 채널 좀 돌려도 되죠?”

    ‘심상정 대통령은 오늘 신년사에서 지난 4년을 평가하면서 임기 마지막 1년 국정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대통령의 신년사,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 4년간 노동자와 서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왔습니다. 첫 1년 동안 저는 여러분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초국적 자본, 재벌, 그리고 관료집단에게 IMF 금융위기의 책임을 묻는 과거 청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진보적 서민경제를 이루기 위하여 공공부문을 혁신하고, 민간경제부문을 규제하였으며, 풀뿌리경제라는 새로운 서민경제 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생태먹거리, 지역복지, 생활금융, 재생에너지 등이 조화된 사람 사는 지역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했던 부동산, 금융, 투기불로자산, 재벌자산, 일자리자산 등 자산재분배 조치는 보수세력의 엄청난 반발을 이기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젠 미국도 우리를 쉽게 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아시아 호혜 경제전략에 따라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했으며, 다음달 인도와도 호혜경제협정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약속드린 사회공공체제를 반드시 건설하겠습니다. 사회공공체제는 ‘지속가능한 사회주의’로 가는 길입니다. 해방의 꿈을 가지십시오. 서민과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열겠습니다. 이제 거의 명맥만 남은 보수정당, 초국적 투기자본, 미국의 개입을 이기고 우리는 꿈을 이룰 것입니다.”

    “이야 말 정말 멋있게 하네. 세상이 변하긴 변했어. 근데 저거 진짜 되긴 되는 거야?”
    “되죠, 그럼 안돼요? 지금까지 한 것 보세요. 난 확실하게 믿음이 가던데”
    “그런가? 하기야 처음엔 불안불안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 잘 뽑았단 생각이 들긴 하더라.”

    10. 서브프라임

    “어제 일어난 뉴욕 다우지수 대폭락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4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사태로 인해 런던,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금융시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이번 사태는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

    다행이다. 2년 전에 정부가 투기자본을 확실히 잡는다면서 토빈세, 투자기간 연동 자본이익 과세제 같은 걸 도입 안 했으면 지금쯤 한국도 난리가 났었겠지. 그때 ‘세계 시장에서 고립된다, 세계화에 역행한다’면서 반대하던 인간들 지금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와~! 장난 아니네.”

    며칠 전 만났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인제 주식투자 같은 거 생각하지도 말아야겠어. 아무튼 주식 가지고 돈 버는 건 확실히 투기야, 투기. 다른 나라 봐. 제대로 망하니까 한방에 다 가잖아.”

    11. 심상정

    “야, 너 방에서 하루종일 뭐해? 또 진보비전인지 미래구상인지 하고 있냐?”
    “아니요.”

    요즘은 심상정이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를 생각하는 게 제일 재밌다. 오늘도 침대에 누워 내내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제발 부탁이니까 김칫국 그만 마시고 2007년 현재에 충실해라, 현재에 응?”
    “알았어요.”

    “참, 오늘 투표시작하는 날 아니냐?”

    후다닥 옷을 주워 입고 뛰어나갔다.

    “근데, 너 누구 찍을지는 정했어?”
    “당근, 심상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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