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정당도 변하냐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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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27일 07: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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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 교수가 지난 23일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멍청아, 문제는 ‘평화’가 아니라 ‘경제’야”라는 글에 대해 주종환 교수가 “문제는 경제라고요?”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에 실은 반론을 실었다. 

    손 교수는 얼마 전 한나라당의 ‘신대북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정형근 의원에게 보수단체 회원들이 달걀세례를 퍼부은 해프닝을 언급하며 “이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제기해온 색깔론과 시비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은 시대적 대세이며 한나라당도 큰 틀에서 기본적으로 그 같은 정책노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주전선 vs 분단 상황 중시

    이와 같은 인식 속에서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개혁적 보수세력’(열린우리당과 범여권)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직도 (2002년 대선에서 재미봤던) ‘평화’라는 코드, 내지 ‘수구 대 개혁’이라는 지형으로, 오는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하고 민심을 끌어올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에 대해 주종환 교수는 “일본과 중국의 협공 속에서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국경제의 활로가 남북의 협력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 말고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경제문제의 활로를 남북간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에서 찾는 것이 정답”이라며 “멍청아, 문제는 ‘경제’지만 ‘평화’도 중요하다”고 받아쳤다.

    손교수의 논지는 지난 ‘진보논쟁’에서 밝혔던 ‘두려움의 동원’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 주전선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편 주교수의 반론은 백낙청 교수의 최장집 비판, 즉 ‘신자유주의 정치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해 ‘분단체제 간과론’으로 비판한 것과 잇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대립지점을 평화냐, 경제냐의 택일로 보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일 수 있다. 왜냐하면 주교수의 결론은 결국 “경제와 평화의 결합”이고, 손교수 역시 평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 대 평화’라는 ‘보수적 개혁’세력의 의도적 대선 전략, 즉 ‘공포의 동원’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 보수정당, 그들도 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대북정책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른바 여권은 이번 대선에서 ‘사회정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여야 지도부 모습.(사진=뉴시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정점으로 한 ‘시대인식’에 있어서 두 교수의 입장 차이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결코 어정쩡하게 합의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어정쩡하게 합의될 사안 아니다

    첫째,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 혹은 신대북정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가지는 전통적인 보수세력(손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냉전적 보수’)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필자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수구세력’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과거 ‘반공세력’의 적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적 흐름의 변화와 유권자의 인식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보수주의 ‘정당’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대북 인식의 변화를 담은 보고서가 선거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정세 변화에 대한 입장 변화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예전으로 쉽게 후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거 전략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현재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세력은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층이다. 한나라당의 전략이 그들의 보수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중도층 혹은 진보층의 일부에 대한 견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반수구 연합’ 혹은 ‘반한나라당 연합론’이 갖는 퇴행성을 수십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둘째, 신자유주의와 평화의 문제이다. 손 교수가 지적한 경제는 결국 신자유주의다. 그렇다면 주 교수의 주장대로 ‘경제와 평화’의 결합, 즉 ‘신자유주의와 평화’의 결합이 과연 가능할까? 이는 신자유주의 노선은 그대로 노정하고, 복지국가도 실현하겠다는 유시민의 야심찬 계획-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과 그리 다르지 않는 불안정한 결합이다.

    물론 주교수가 지칭하는 경제가 신자유주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남북경제협력을 기능주의적 접근, 혹은 자본과 노동력의 결합과 같은 신자유주의 노선(혹은 시장주의)과는 경로가 다른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보수정당 왼쪽으로 한 클릭?

    역시 같은 이유로 평화는 이미 시대정신이 아니라는 손교수의 지적 역시 과도한 것이다. 평화를 단순히 전쟁없는 상태로 소극적인 해석을 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속에서 구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의 주요 의제가 신자유주의에 의한 양극화에 있다는 손교수의 정세판단에 동의하면서도 이른바 범여권이 ‘평화냐 전쟁이냐’는 선동에 안주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투자국가’ 혹은 ‘사회투자정책’이라는 ‘사회정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를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변형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그 실체성 여부를 떠나 녹록치 않은 문제다. 요컨대 보수정당간의 역동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전략은 고스란히 진보진영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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