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준화 주장하는 후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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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12일 05: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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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원하는 교육의 미래는 참담하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과열된 영어교육에 시달려야 하고 중학교 때부터 명문고 입시를 위한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광란의 풍토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귀한 가치 실현의 장’으로서의 교육은 이미 사라진지 너무도 오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서의 벌거벗은 생존 경쟁의 논리는 앞으로도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할 것이다.

교육으로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이명박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우리나라의 교육열, 그 실체는 무엇인가? 민족 특유의 ‘숭문주의(崇文主義)’의 전통인가? 아니면, 모든 국민들이 몸속에 ‘교육열’이라는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가진 것 없는 노동자 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유일한 계층 상승의 통로는 바로 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잔업, 야간을 해서라도, 식당일을 해서라도 과외비를 마련해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 어미 애비처럼 살지는 말아라.” 소위 386세대 학부모도 초등학생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기 저 청소부처럼 살게 된다.”

이는 입지전적 신화의 주역 이명박 후보에게 너무나 뼈저린 경험이었나 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이야말로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통로입니다. 끼니도 잇기 어려웠던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하여, 그의 연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은 없게 하겠습니다. 저소득층이나 장애인들이 돈 걱정 안 하고 학교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후보들도 현실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쫓아다니고, 늘어나는 사교육비로 가정경제까지 무너지고 있다.”는 박근혜 후보의 현실 인식이나, “과거에는 가난한 집에 수재가 났지만, 요즘은 부잣집에 수재가 난다.”고 일갈하는 홍준표 후보의 현실 인식도 그 자체로는 훌륭하다.

홍준표 후보는 아예 “최근 서울 일류대학 신입생 가운데 상위 계층 20%의 학생이 전체 신입생 가운데 60%를 차지한다.”는 구체적인 통계 자료까지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훌륭한 것은 여기까지이다.

아버지의 정책을 배반하는 박근혜

그토록 서러운 경험을 토로한 이명박 후보는 입시에 관한 권한을 대학에 넘기고(대학 본고사 실시), 중고등학교에도 자율경영체제를 도입해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겠단다. 박근혜 후보는 고교평준화 체제를 만들었던 자기 아버지의 뜻을 철저히 저버리고 16개 시도별로 고교평준화 여부를 주민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기겠단다.

고교평준화에 ‘하향평준화’ 딱지를 붙이기, ‘자율성’과 ‘경쟁력’에 신비주의 전략 덧씌우기, 이제 하도 신물이 나게 들은 논리어서 어느덧 우리의 뇌리에도 ‘평준화=악, 경쟁력=선’의 공식이 스멀스멀 자리 잡고 있다. 고교평준화가 해체되면, 대입을 대학 자율권에 맡기면, 과연 돈 없는 자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되고 가난한 집에서 수재가 나고 사교육비가 해결된단 말인가?

이명박 후보가 고교생이었던 60년대는 고교 입시뿐만 아니라 중학교 입시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에 ‘엿을 만드는 재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무즙’이라 답하여 오답 처리 되자 수많은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교육청에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중학생들도 경기고 등 세칭 일류고에 입학하기 위해 청춘을 저당 잡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폐해를 일거에 없앤 고교평준화야 말로 박정희 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긍정적 업적이었다. (하필 자기 자녀가 고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고교평준화를 실시한 저의가 세간의 화젯거리였지만)

박근혜 후보가 고교생이었던 70년대는 대학 본고사 시절, 서울대 수학 본고사의 합격선이 100점 만점에 30점이었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는 지금의 50대 세대라면 누구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EBS 강사가 수능 출제를, 홍준표는 역시 엉뚱했다.

홍준표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도 엉뚱했다. 그는 입시와 사교육 문제의 해법으로 “EBS 방송내용을 그대로 수능 출제에 반영되도록 EBS 강사를 바로 수능 출제자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하루 종일 EBS 방송 강의만 틀어놓고 있으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교육과정도, 교과서도, 단위 학교의 교육 철학이나 교사의 교육관도 무시하는 주장이자 나아가 우리나라 공교육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논리이다.

어쩌면 이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훌륭히 계승하는 정책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랍시고 EBS 방송 강의를 수능에 반영하겠다며 전국의 모든 학교에 EBS 방송 테이프를 공급했고 EBS 인터넷 강의를 실시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수능 문제집에 EBS 문제집을 더 사야 했다. 학원에서는 EBS 문제집을 가공한 교재로 강의를 하였고, 학생들은 학원을 다녀온 후 12시 넘어 EBS 방송 강의에 접속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현 대학서열화체제를 전제로 한 입시제도 하에서는 그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한나라당 후보가 신자유주의 수구 세력인 이유

이명박, 박근혜 등을 수구 세력이라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보다 어제가 좋았다’며 ‘어제로 돌아가자’는 세력이 바로 수구 세력이다. 지금의 입시 고통도 사교육 열풍도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교육양극화 현상도 부족하다고 하여 아예 60, 70년대 그 끔찍했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하기에 그들이 바로 수구 세력인 것이다.

다만 그들이 이른바 ‘자율성’, ‘경쟁력’이라는 기치로 자신의 계급적 속성을 은폐하려 들기에 ‘신자유주의적 수구세력’이라는 모순 형용을 구사할 수밖에 없지만.

한나라당 후보들의 공통점은 우리 교육이 과열된 입시경쟁체제이며 이로 인해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이 생겼다는 현실 진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가혹한 입시경쟁체제와 사교육비 부담의 근본 원인인 대학서열화체제를 조금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무모한 경쟁’이 문제라는 점을 눈감고 있다. 아니 그들은 ‘경쟁’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한 경쟁’에서 유리해지는 계층이 바로 자기네들 계급 계층이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 제고’는 그럴듯한 수사에 불과하다.

원희룡, 반갑다. 그러나 비겁했다.

그런 점에서 원희룡 후보의 ‘서울대 학부 폐지’, ‘국립대 통합 및 단일 학적 부여’ 주장은 매우 반갑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한 저의야 어떻든 간에 대학서열화체제라는 근본 문제를 유일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 정책은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 주장한 것이 아닌가?

만약 원희룡 후보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면 ‘이중 당적’으로 선관위에 고발해야 할 문제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의 정당 정책을 표절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원희룡 후보는 비겁하다. 다른 정당 정책을 참고하는 것은 좋으나 적어도 출처는 밝혀야 책임 있는 정치인의 도리이다.

원희룡 후보가 비겁한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주장이 바로 ‘대학평준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떳떳이 밝히지 않은 점이다.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누가 진정한 고교평준화 해체론자인가’에 대한 공방을 주고받을 때 그가 만약 ‘대학평준화’를 용감하게 주장했다면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대학입시와 사교육비, 진보진영은 어떤 해법을?

   
 
 

2007년 대선, 교육 분야의 화두는 단연 대학입시와 사교육비 문제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육운동진영은 보수정당의 후보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쟁점을 부각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민중이 가장 고통 받는 지점을 주목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과제를 제기해야 한다.

‘평준화 해체’, ‘대학의 선발 자율권’ 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교평준화 유지’, ‘삼불정책 유지’는 현재 노동자 민중이 받고 있는 가혹한 사교육 고통,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된 입시 고통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자에게 현재를 유지하자고 외치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

대학입시제도야말로 한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규정짓는 핵심적인 쟁점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가 차원의 교육목표와 교육과정도, 교사의 교육활동도, 학생들의 일상생활도 대학입시제도의 거대한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

학교의 일상적 억압 구조도, 학부모의 왜곡된 교육열도, 교사의 참교육 의지를 가로막는 걸림돌도 가혹한 입시경쟁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교육 정책, 고교평준화 정책, 삼불 정책, 조기영어 정책 등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교육정책도 따지고 보면 모두 대학입시와 연동되어 있다.

대학입시제도는 노동자 민중의 이해관계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계급적 쟁점이다. 교육부와 각 대학이 어떤 입시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계급적 이해 관계는 엇갈린다. 예컨대 논술 등 대학별 고사가 강화될수록, 수능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내신의 실질반영비율이 낮아질수록 부유층 학생에게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입시 제도는 그 속성상 자주 바뀔수록, 복잡하게 바뀔수록 다양한 문화 자본을 획득하고 있으며 고액의 사교육을 통해 복잡한 입시 제도에 대비할 수 있는 계층에게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대학입시제도는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의 핵심 기제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체제는 곧 한 인간을 특정한 사회적 지위에 귀속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제이며, 현재의 대학입시제도는 부유층에게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한 일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기득권층은 고액의 사교육과 조기유학, 특목고 등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손쉽게 자신의 자녀들에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으며, 기댈 언덕이라곤 학교 교육과 동네 보습학원뿐인 노동자 민중들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대학입시라는 문턱 앞에서 좌절과 절망만을 확인할 따름이다.

최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세칭 일류대학 신입생의 30%가 서울 강남권과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라는 통계는 이런 교육 불평등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대학입시제도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를 내면화하는 핵심 기제이다. ‘내신 등급제’로 인해 같은 반 친구와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수능’을 통해 가상의 적과 싸우는 법을 배우고, ‘논술 본고사’를 통해 지식마저 상품화하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정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폭력으로 민중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강화한다.

그렇다면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해방 이후 총 16차례 입시제도가 바뀌는 동안 내신, 학력고사, 수능, 자격고사, 대학 본고사 등 나올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나왔지만 단 한 번도 가혹한 입시 경쟁을 해소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입시를 통한 교육불평등은 더욱 확대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국 60만 수험생이 오로지 서울대를 들어가기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어떠한 입시제도가 들어오더라도 현재와 같은 무한 경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EBS 방송 과외를 도입하든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든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하든 이는 또 하나의 입시 부담만 수험생들에게 안겨 줄 따름이다. 아이들은 0교시 수업을 한 후, 정규수업을 한 후, 방과후 보충수업을 한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한 후, 학원을 간 후, EBS 인터넷 강의에 접속을 하고 나서야 심리적 위안을 얻은 후 잠자리에 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강남 불패, 특목고 불패’의 신화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

대학평준화, 이제는 당당하게 가야 할 길

결국 해법은 하나다. 그것은 대학서열화체제를 해소해 입시 경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교육 공급 확대 정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 수요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것은 곧 대학평준화이다. 대학평준화란 모든 대학이 균등한 교육 여건을 갖추는 것, 그리고 입시의 문턱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까운 대학에 가도록 하는 것, 누구나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왔느냐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입시 문제야 말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계급적 차별성을 분명히 대립시킬 수 있는 영역이다. 한나라당 등 수구세력은 입시를 통한 교육불평등 현실을 오히려 심화시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삼불정책 폐지, 대학의 선발 자율권 확대, 특목고 및 자립형 사립고 확대, 고교 평준화 해체, 조기 영어교육 강화 등은 아예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 구조를 노골화시키는 정책이다.

이른바 범여권 진영의 정책은 기껏해야 저소득층을 위한 방과후 학교 등 사교육 지원 확대, 삼불정책 유지, 그리고 그 실체도 애매한 예비교양대학 설립 등이다. 삼불정책이 유지되더라도 입시 경쟁은 해소되지 않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더라도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예비교양대학이 설립되더라도 대학서열화체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해법은 단순하다. 초등학생 입시 지옥을 없애기 위해 1969년도에 중학교 입시를 없애고 중학생 입시 지옥을 없애기 위해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었듯이, 이제는 대학평준화를 시행할 때이다.

‘대학평준화’, 상식을 외치는 후보를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대학평준화, 그게 말이나 되냐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인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상식이 아닌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대학평준화이다. 대학의 학문 경쟁력 1위를 자랑하는 핀란드는 완벽한 대학평준화 체제이다.

세계적 석학을 배출한 철학과 교양의 나라 프랑스도 대학평준화 체제이다.(논술의 원조로 불리는 프랑스의 ‘바깔로레아’가 우리의 논술 본고사와는 달리 평준화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대학자격고사라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되고 있다. 프랑스 교육이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가혹한 입시교육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대학평준화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원조 미국의 대학도 소위 ‘아이비 리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공립대학은 평준화 체제에 가깝다. 우리나라처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전국의 모든 대학이 한 줄로 서 있는 나라는 일본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평준화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의 질이 저하되지 않았냐고.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상식은 잘 모르고 있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보다 고교 평준화 지역의 평균 학력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연구 결과도, 극단적인 대학평준화 정책을 취하고 있는 핀란드나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이 세계적 수준의 학력 평가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반면 극단적인 대학서열화체제인 우리나라 대학이 전 세계적으로도 학문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사실도.

이번 대선에서 이런 후보를 보고 싶다. 입시 지옥과 교육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고교 평준화 해체’에 맞서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후보를. 허울만 좋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맞서 ‘사교육 수요의 근본적인 제거’를 주장하는 후보를. ‘경쟁력과 자율성’의 신화에 맞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교육’, ‘무모한 입시경쟁을 넘어 선 인간다운 교육’을 주장하는 후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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