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UN 제출 보고서에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삭제
    시민사회단체, '누더기 보고서' 규탄
        2024년 03월 26일 04: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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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할 독립보고서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내용을 삭제하기로 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존 인권위 권고와 유엔인권기구의 권고에 반하는 누더기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공동행동)은 26일 성명을 내고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빠진 인권위 독립보고서 채택을 규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도 이날 같은 기조의 성명을 내고 인권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인권위는 전날 전원위원회를 열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하는 인권위 독립보고서를 채택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에 대한 내용은 과반의 반대·기권으로 보고서에서 삭제됐다. 김용원·이충상·한석훈 위원이 반대했고 이한별, 김용직, 강정혜 위원이 기권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관한 인권위 의견을 정리한 문서다. 인권위는 여성차별철폐위가 5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9차 심의를 하기에 앞서 4월경 독립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25일 인권위 비판 기자회견 모습

    공동행동은 “이충상·김용원·한석훈 위원은 국회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못했다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내용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인권법안 제·개정을 국회에 권고하며 이끌어야 할 인권위가 오히려 국회에서도 심의 못할 정도니 빼야 한다는 전도된 주장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제연은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 인권기구로서 국제인권 규범의 국내 실행을 담당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취지와 독립적 위상을 스스로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질타했다.

    유엔 인권기구들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해왔다. 기존 인권위도 보수적 종교단체 등의 반대로 머뭇대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김용원 위원은 “유엔이 발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위반을 위한 실무지침서에는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들어간 것은 최근의 일이며 인권위가 인권단체인 것처럼 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석훈 위원은 “국회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차별금지의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을 고려하면 권고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상규명 및 사과 요구 권고 등은 통과됐으나 일부 위원들의 반대 의견이 담겼다.

    지난 11일 전원위에서도 격론이 오간 ‘일본군 성노예제’ 관련 권고에 대해 이충상·김용원·한석훈 위원이 반대했으나, 나머지 6명(남규선·김수정·원민경·송두환·강정혜·김용직) 위원의 찬성으로 포함됐다. 특히 김용원 위원은 “국가안보상 일본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며 국제정세를 이유로 반대 의결을 피력했다고 한다.

    특히 김용원·이충상 위원은 자신들의 반대 의견을 보고서에 담아달라 요구했고, 인권위는 이 주장을 수용해 유엔에 제출할 보고서에 반대 의견을 담았다. 공동행동은 “인권위 독립보고서에 몇 명의 위원이 반대했다는 내용을 넣는 것은 보고서 형식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인권위가 무자격 인권위원들로 구성됐음을 실토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쟁점이 됐던 ‘이주가사노동자에게 동일한 노동조건과 임금을 보장’하라는 권고는 ‘보장하도록 노력’하라는 권고로 낮춰 의결했다.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비동의 강간죄로의 형법 297조 개정 권고’도 빠졌다. 비동의 강간죄로 법안은 여야가 국회에서도 합의했고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에서도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라’며 형법 개정을 구체적으로 권고한 바 있다. 공동행동은 “기존 국회 논의와 유엔 인권기구의 권고보다 낮은 내용이 권고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규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차제연은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문제라는 반동성애 선동이 인권위 내에서 거침없이 제기되고 있는 광경이 참담하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삭제한 여성차별철폐를 위한 누더기 독립보고서 의결은 인권위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가장 무능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공동행동 또한 “유엔인권기구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인권기구가 얼마큼 후퇴했는지, 반인권위원들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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