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다 못해 나왔다! 아폴로 박사
    [기고] 녹색정의 조천호 후보를 보며 떠오른 생각들
        2024년 03월 25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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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떼 이야기다. 녹색정의당의 조천호 후보의 활동상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오래 전 선거 구호가 떠올랐다. “참다 못해 나왔다! 아폴로 박사”. 입에 딱 붙는 7·5조 문구다. 마침 내가 살던 동네에서 천문학자 조경철이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며 들고 나왔던 구호다. <스타워즈>에 빠져 있을 무렵인 나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구호였지만 그는 저조한 득표로 낙선했다. 11대 선거에도 다른 지역구에서 출마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그에게 아폴로 박사라는 별명이 붙여진 된 것은 미국에서 NASA 등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지만, 1969년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는 순간을 생중계하는 주한미군 방송을 다시 중계하는 한국방송에 나와서 해설하다가 너무 감격해서 의자가 뒤로 넘어졌던 헤프닝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조경철은 한국에서 거의 최초의 셀럽 과학자였지만 현실 정치의 장벽은 높았을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 물리기상학을 전공했지만 애초에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일성 체제에 저항하다가 월남한 배경은 정치적으로 우파 쪽의 길을 걸어가게 했을 것이다. 하긴 지금도 한국에서 셀럽 반열의 과학자는 드문 것 같다. 과학 빌런 황우석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가 참다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개인의 영달에 대한 조바심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권자에게는 잘 난 사람이 더 잘나게 되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대리만족감의 차원도 있으니 논리적으로도 무리스러운 구호는 아니었겠다.

    조경철은 언제나 단정한 양복 정장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카메라 앞에 섰고, 더욱 유명해지고 더욱 인정받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었다. 한국의 수출액은 1977년에 100억불, 1981년에 200억불로 두 배가 되었고, 정치는 광주의 비극을 지나 전두환 독재로 접어들고, 곳곳에서 환경 오염과 산업 재해가 고발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더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비록 정치인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런 시절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다시 조천호 후보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 같은 훌륭한 스테디셀러 저자이자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한 나름 기후운동 내의 셀럽이지만 22대 총선에서는 아직 듣보잡 후보다. 공부한 이력은 조경철과도 겹치지만, 조 후보의 숫기 없는 표정에 다소 후줄근한 저고리를 보자면 두 사람이 너무도 다른 캐릭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천호 후보 역시 “참다 못해” 나온 것은 분명하다. 아니, 그 절실함이란 조경철의 욕구와는 비할 바 없는 것임이 확실하다. 성장이라는 동화에 빠져서 기후위기에 귀를 닫은 정치와 언론, 좀체 사회변화의 티핑포인트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기후운동의 상황, 그리고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기후변화의 상황에서, 녹색정의당이라는 작은 배의 부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에게 결심을 강요했을 것이다.

    나는 조천호 후보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정체성이 갖는 의미에도 주목하고 싶다. 캐나다의 기후학자 캐서린 헤이호, 지구행성적 한계선을 연구한 요한 록스트룀 같은 과학자들이 인기를 얻고 정치와 대중적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나오미 클라인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100여명의 과학자와 경제학자들을 모아 『기후책』을 만들고 각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는 법조인과 자영업자와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들로 가득한 현실 정치에서는 결코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으며, 과학의 외침을 다른 영역의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메아리로 화답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무책임한 비전문가들에게 기후 정치를 맡겨둘 수 없기에, 조천호 후보에게는 시민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후 유권자들을 기후 준전문가로 맞이하는 역할도 맡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 어린 말이 힘을 잃은 시대라고 모두들 한탄한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희망은 말에 있다. 기후과학을 직시하라는 말, 비상사태임을 인정하라는 말, 우리 공동의 집이 불타고 있다는 말, 성장이라는 신화에서 빠져나오라는 말, 기후악당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 유효적절한 해법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말, 우리 모두 가능한 대화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말, 그리고 정치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 말이다.

    조천호 후보는 그런 말이 갖는 힘을 믿고 그런 말들을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렵사리 건내고 있다. 그 말을 들어주고 전파하고 격려를 보내주면 좋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뭔가 해법이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도 그렇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다음의 걸음을 토론할 수 있는 지반이 된다.

    필자소개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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