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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제프 멀건/매일경제신문사)
        2024년 03월 23일 10: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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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과학의 거버넌스가 21세기의 가장 큰 과제가 되었는가?

    인류의 삶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향상돼왔다. 이 점은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학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가?” 하는 물음에 “살기에 더 나쁜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과학과 기술이 공장 자동화와 기후 변화에서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이로운 점과 더불어 우리의 환경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수많은 악영향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정책 전문가이자 사회 혁신 분야의 권위자인 제프 멀건 교수는 “과학을 어떻게 관리하면 그 이익은 취하면서도 위험은 피할 수 있는지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사회적인 관리와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는 과학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과학과 기술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누구에게 손해가 되는지는 정치적 판단이 수반된다. 생명과학과 AI 등의 규범과 법률을 만드는 일이나, 복지체계 설계나 세금 부과 같은 정책을 만드는 일은 정치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과학과 정치의 관계와 권력의 본질에 관해 깊이 파고든다.

    통제불능의 과학계, 관리 역량 없는 정치계

    각종 전염병과의 싸움부터 지구 온난화까지 인류가 재앙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과학과 정치는 결탁해왔다. 또한 국가는 전쟁, 경제 성장, 영광, 권력을 위해 과학의 신화를 전파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도전이 되기도 하는 과학의 권위 확대로 인해 마찰과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과학이 새로운 규제 마련 명분의 근거가 되는 만큼, 이제 과학은 모든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오늘날 대부분 문제는 과학적 결정과 정치적 결정을 동시에 요구한다. 반면,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분야가 생겼을 때 우리 사회가 이를 장려할지 억제할지, 예산을 편성할지 삭감할지, 관련 법률을 제정해 규제할지 유예할지 등 정치에서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책은 국가가 과학에 개입한 복잡한 역사를 설명하면서 국가가 과학을 군사력이나 경제적 번영의 수단으로 이용한 방식, 과학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된 과정, 정부와 의회가 과학계와 부딪히면서 직면한 현실적 문제를 살핀다. 정치와 과학이 충돌하는 다양한 논리와 그 논리가 어떻게 고유한 생명력을 갖게 되는지도 들여다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의 과학화’와 ‘과학의 정치화’가 모두 이뤄져야 한다. 과학은 스스로 한계를 명확히 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분야로 재탄생해야 하며, 정치는 종종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과정으로 빠져드는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왜 과학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가?

    과학은 새로운 가능성뿐 아니라 새로운 위험도 초래한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환경 오염 등이다.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던 과학도 과거와는 달리 더 모호하고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국가는 과학을 평가하고, 규제하고, 금지하고, 차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과학은 불완전하다.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윤리적, 정치적, 실용적인 여러 추론과 결합해야 한다. 과학만으로는 스포츠에서 젠더(gender) 구분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원자력이 기후 변화의 좋은 대안인지 알 수 없다. 과학이 그 중심에 있지만, 바람직하게 실행하려면 서로 연관된 다른 유형의 지식과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과학은 항상 어디에나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치는 늘 과학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계는 자신들의 문제를 과학적 판단 도구가 부족한 정치계의 의제로 떠넘긴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정책을 만들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는 기술도 의향도 없다. 이런 것이 ‘과학과 정치의 역설’이다. 오직 정치만이 공익을 위해 과학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정치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과학은 어떻게 정치에 힘을 실어주는가?

    역사적으로 국가는 과학을 다른 경쟁국들에 힘을 과시하고, 번영을 모색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간주했다. 전차와 전투기에서 로켓과 전함에 이르기까지 어느 나라가 더 정교하고 고도화한 전쟁 기술을 가졌는지를 두고 경쟁했다. 아울러 경제적 국익을 위해 과학을 활용할 학교, 연구소, 기관 등을 설립하는 등 국가 차원의 과학 지원 정책도 펼쳤다. 국가는 지향할 목표를 구체화한 뒤 과학이 그 수단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했다.

    어느 국가든 간에 평균 수십 건 이상의 과학 관련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정부는 핵폐기물 비용을 추산하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과학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한 투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실을 보는 데 30년이 걸리는 핵융합 기술의 기대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해야 하는 쪽도, 유전자 편집 및 복제 기술에 관한 규정을 확보해야 하는 쪽도 정치다. 정치는 양자컴퓨팅 같은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독려해 국가가 경제 호황 대열에 참여할 준비도 해야 한다. 또한 인터넷에 의존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의 보안이 뚫려 개인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 역시 정치의 몫이다.

    이렇듯 과학과 정치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서로가 필요하다. 과학은 정치의 후원이 필요하고, 정치는 과학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과학과 정치는 각자 자신들의 권위, 자원, 인정을 두고 오랫동안 경쟁해왔다. 과학은 권력을 돕기도 하지만, 그 권력이 남용되는 위험도 과학에서 나온다.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중심으로 정해진다. 정치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 중요한 것에 관여한다. 이 책은 중요한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결정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바람직하게 이뤄지도록 과학과 정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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