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결국 거리에서 결정될 가능성 높다
    [L/A칼럼] 정교한 핀셋 전략이 부족한 밀레이
        2024년 03월 14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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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정확하게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느낌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벌써 커다란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추진한 법률안은 진전이 없다. IMF 총재, 미 국무부 장관, 앨론 머스크 등이 그를 칭찬하고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계급이 지지하고 있지만 많은 수의 일반 대중이 그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

    세르히오 가르시아(Sergio Garcia)에 의하면 위의 지지그룹이 그의 정책 방향의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정책의 형식 또는 연설 스타일 등, 정치적 상징을 좀 더 부드럽고 정교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밀레이에 대해 실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통치능력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이나 지지하는 집단(숨어서라도 박수를 치는 집토끼)이 필요한데 밀레이는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전체적인 사회적 분노를 키웠다. 특히 밀레이가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을 너무 거칠게 공격했다고 본다. 이들의 저항이 거리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전임 페론주의 좌파 정부가 소위 시민의 사회적 권리를 지키려 국가가 지나친 재정지출을 하였지만, 악성 인플레가 도지는 등 경제 위기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밀레이는 이를 공격하기 위해 정교한 논리를 개발했어야 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특정 세력을 적으로 삼고 이들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밀레이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마치 대부분의 대중이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모든 전통적, 특권적 정치세력과 사회부문들을 공격했다고 가르시아는 지적한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 있는 극단적 극우 신자유주의 정치를 위해 기존의 아르헨티나 정치구조를 한번에 뒤엎으려는 생각으로 너무 서두른 느낌이다.

    사실 이런 비판은 신자유주의가 엄청난 경쟁논리를 통해 기존의 특권세력 일부를 (예를 들어 오랫동안 남미에서 회자되던 대지주 등의 올리가르키아를)해체하므로 역사적으로 장점을 가진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하지만 IT산업을 통해 최상층 일부가 교체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과 같이 산업 자체를 그동안 역동적으로 변화시킨 경험이 성공한 경우에 해당되므로 실천적으로 남미에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왜냐면 지난번 글에서 강조한 대로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류층은 지대 추구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밀레이의 핵심참모들이야말로 이들 매판적 세력 자신이거나 그들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즉 당당한 새로운 지식산업의 리더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의 신자유주의 전임자들(마크리, 메넴을 포함하여)이 바로 그 정치세력 중 가장 최악(부패의 강도에 있어)이었고 이에 대해 키치네르를 중심으로 일부 페론주의 좌파와 사회운동세력을 포함한 상당수 나이가 좀 든 대중이 잘 기억하고 있는데 어떡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밀레이를 탄생시킨 복잡한 아르헨티나의 정치구조가 거꾸로 밀레이를 억누르는 역설인 것 같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대중이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지자들의 기대치 또는 환상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접근하는 방식 즉 그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거나 점진적인 전략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전임정부에만 집중하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아젠다를 들고 나왔어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반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사회운동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하다. 유교적인 우리나라와 다르게 급진좌파 페미니즘 운동이 강하고 교사노조도 막강하다. 특히,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웃통을 완전히 벗고 시내 의회 앞에서 밀레이에 대해 지나치게 잔인하고 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큰 그녀들은 “밀레이는 어릿광대다”, “우리는 하나도 밀레이가 두렵지 않다”라고 조롱했다.

    한편 교사노조(UDA)는 대규모 파업을 준비 중이다. 교사노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데 다른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심각한 인플레 상황에서 겉으로는 교사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연히 밀레이에 대한 타격이 될 것이다. 교육부문의 국가 지원에 대한 연방정부의 성찰 부족, 즉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을 없애려는 밀레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밀레이는 더욱 악셀을 밟으려고만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오직 가능한 길은 독재로 가면 되겠지만 아르헨티나는 독재가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 과거 군부독재가 실패한 이유가 있다. 밀레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집권세력의 준비 부족이 드러나는 것 같다.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질적으로 탁월하고 대담한 수술을 통해 실력을 보여야 하는데 정치를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어 점점 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사회적 분노가 위험하지만 앞으로 몇 달 안에 지나친 퇴행에 대해 자칫하면 엄청난 파국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더라도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전략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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