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경제를 지배하고
    그들은 어떻게 자산을 불리는가?
    [책소개]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브렛 크리스토퍼스/여문책)
        2024년 03월 09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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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탁월한 분석

    지금은 명백히 ‘금융화 시대’다. 이는 일반 서민까지 ‘워너비 불로소득자’를 꿈꾸도록 부추겼고, 돈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세상을 점점 더 공고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갖가지 ‘지대rent’를 통한 부의 불평등이 지나치게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도 큰 바람을 불러일으킨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 불평등과 불로소득 자본주의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 사회경제지리학과 교수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학계에서 이미 그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꾸준한 연구 성과로 입지를 탄탄히 다진 인물이다. 크리스토퍼스는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에서 일찍이 ‘불로소득자의 안락사’를 주장한 케인스는 물론 마르크스도 주류 경제학도 모두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지대의 대명사와 같은 토지 외에도 금융, 자연자원, 지식재산IP, 플랫폼, 외주화 계약, 인프라 등 총 일곱 부문의 지대를 폭넓게 다루면서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본질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지난 세기와는 달리 환경문제까지 매우 심각해진 오늘날, 이대로 가다가는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을 것이기에 이 책은 현행 자본주의에 관한 의미 있는 처방전이라 할 만하다.

    ◆ 토마 피케티를 넘어선 불로소득 자본주의론

    저자 크리스토퍼스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 책의 번역을 총괄하고 상세한 해제까지 제공한 이병천 교수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짚어준다. “자산과 독점, 이에 기반을 둔 지대의 확장된 정의가 크리스토퍼스가 불로소득 자본주의론의 초석을 세우는 개념들의 토대에 해당하는데, 우리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자산 불평등을 현대 자본주의론의 중심 무대로 올린 피케티를 계승하면서도 그를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자본 개념에 물적 자본, 유형자산, 무형자산 일체를 포함시키고 그가 자본소득이라 부른 지대 속에는 임대료, 이자, 배당금, 특허권료뿐만 아니라 이윤까지 포함된다. 나아가 피케티는 자본의 소유・통제에 집중했을 뿐이고 시장경쟁과 독점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반면 크리스토퍼스에 이르면 소유적 자산, 즉 불로소득자 자본rentier capital이 중심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장지배력은 불로소득의 추출에서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책의 출간으로 “피케티 이후 자산 불평등과 불로소득주의에 대한 비판이 한 단계 새롭게 올라섰고, 경제사상사를 다시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고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

    ◆ 신자유주의는 왜 불로소득자를 우대하는가?

    크리스토퍼스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많이 남용되고 좌파 테두리를 벗어나면 널리 비웃음거리가 된다”면서도 지금의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불로소득 경제화는 단지 신자유주의와 경계를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신자유주의의 결과였다”, “불로소득주의는 신자유주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DNA에 새겨져 있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또한 이 책의 주요 분석 무대가 영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 정치경제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영국이 산업혁명의 발상지라는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심지어 경제적으로 진정한 산업국가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중략) 영국 자본주의 오디세이의 맨 처음부터 이 나라와 경제를 조종하고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산업주의자가 아니라 주로 불로소득 추구자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산적 활동보다 자산을 소유하는 데 몰두했다.”

    대처 집권 시기에 신자유주의가 강고하게 뿌리를 내린 이후 금융, 자연자원(석유와 가스), 플랫폼, 인프라, 부동산(토지와 주택) 등의 부문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업계의 로비에 굴복한 결과, 영국은 가장 대표적인 불로소득 국가가 되었으며, 이는 불행히도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크리스토퍼스는 영국이라는 경험적 특수성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일반성을 통해 경제의 본질을 성찰해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하도록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이렇게 강조한다. “확실히 영국만이 불로소득주의에 시달리는 유일한 나라는 아니며, 불로소득주의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밖 많은 곳에서도 시급하다.”

    ◆ 불로소득주의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문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부터 이 책의 핵심 개념이 ‘지대’라고 밝힌 크리스토퍼스는 비주류와 주류의 실제적 혼합으로 지대를 정의한다. 다시 말해 “경쟁이 제한적이거나 부재한 조건에서 희소자산의 소유 또는 통제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지대이며, 지대의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통제와 독점이기 때문에 현재 많은 나라에서 겪고 있는 불로소득주의의 폐해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로소득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개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대부분의 불로소득자가 자본주의 기업, 기관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놀라운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초국가 거대 기업 다수가 이에 속하며, 그동안 이들 기업(특히 거대 기술기업)은 불평등한 불로소득자 임금 모델을 확산시켜왔을 뿐 아니라 반노동‧반노조 관행을 공고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임금 억압의 수단으로 작동해왔다고 비판한다. 결국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정치경제적 문제인 것이다.

    ◆ 신자유주의가 낳은 괴물,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런데 요즘 같은 금융자산 추구 시대에 불로소득주의가 왜 문제라는 것일까? 크리스토퍼스는 “새로운 자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연구와 개발을 수행하는 것보다 기존 지대를 창출하는 자산을 땀 흘려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불로소득자는 그런 퇴행적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불로소득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점차 쇠퇴하게 된다. 로마제국만 봐도 알 수 있다. 또는 15세기의 베니스, 18세기의 네덜란드 공화국을 보라. 기생충이 아이의 성장을 저해하듯이, 불로소득자는 나라의 활력을 고갈시킨다.”(루트거 브레그먼)

    “부를 소유한 자의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으로 전환된다.” “사회의 소수가 부유해질수록 정치를 더 잘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엘리트의, 엘리트에 의한, 엘리트를 위한 정부를 갖게 된다.”(조지 몽비오)

    한마디로 너도나도 불로소득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으며, 기업가적 정신은 쇠퇴하고 소유자적 정신만 가득한 나라는 민주주의마저 위험에 처해 끝내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크리스토퍼스는 크게 네 가지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건전한 경쟁정책으로 시장독점을 깰 것.

    둘째, 정의로운 조세정책을 펼치고 생산적 투자를 촉진할 것.

    셋째, 산업정책과 경제구조를 진보적으로 전환할 것.

    넷째, 소유구조를 재편해서 과도한 민영화를 막고 공동체가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할 것.

    크리스토퍼스는 이 가운데 특히 공공-민간 혼합 소유의 다원적 생태계가 최고의 목표일 것이며, 이는 확실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실행이 가능한 결과라고 밝힌다. 불로소득주의 문제 자체가 정치경제적 비판일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계와 정치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화석연료 불로소득주의’ 같은 전 지구적으로 시급한 난제는 초국가적 합의와 연대, 이행의지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결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한층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렇듯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크리스토퍼스의 탁월한 분석과 대안은 경청할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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