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책소개] 『내전, 대중 혐오, 법치』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외 / 원더박스)
        2024년 03월 09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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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것은 갔는데,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질문이 틀렸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대,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구를 빌려 현대를 진단한 이 명제는 많은 지식인의 공감을 샀다. 주지하다시피 ‘낡은 것’은 신자유주의로, 1970년대부터 전 세계를 지배해 온 이 체제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여러 식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기실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라는 말은 ‘신자유주의’라는 말만큼이나 상투적인 것이 되었다. 2008년 9월 19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한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한다. 무한 공적자금 투입, 전방위 시장 개입을 통해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처를 두고 수많은 지식인은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 할 법한 미국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포기했다며 신자유주의에 종언을 고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신자유주의는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글로벌 경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셧다운과 국경 폐쇄가 이루어졌고,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가 위기를 모면하고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또다시 신자유주의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고, 너도나도 ‘포스트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그렇다면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새것이 오지 않는 이유가 낡은 것이 아직 저물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내전, 대중 혐오, 법치』는 파리 낭테르대학에 거점을 둔 네 명의 석학이 함께 쓴 책으로, 저자들은 여전히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배 방식에 주목한다. 푸코의 통치성 관점에서 이 체제가 취하는 전략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는 저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경제·정치 사상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바라본다. 이 명제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세 키워드로 꿰뚫는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진화

    저자 가운데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은 『새로운 세계합리성』(오르트망 옮김, 그린비)에서 신자유주의가 걸어온 궤적과 그 주창자들의 이론을 분석한 바 있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에서도 다른 두 명의 저자들과 함께 이 방법론을 채택해 신자유주의가 태동한 1938년 월터 리프먼 학술대회부터 오늘날까지, 사상사적 계보를 따라 이 체제에 내재한 특성을 밝혀낸다.

    저자들이 제기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자 특성은 ‘내전’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군사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벌이는 내전을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정의한 저자들은 칠레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부터 시작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수였던 대처와 레이건 집권기(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한 사회민주주의 좌파가 실각하고 패퇴한 시기)를 거쳐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세력이 부상한 지금 이 순간까지,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살피며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전’을 분석해 나간다. 내전에는 필연적으로 ‘내부의 적’이 상정되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혹은 ‘집산주의’가 적으로 지목되었고, 오늘날에는 인종주의 또는 보수주의와 결합해 새로운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복지 정책, 노동조합 등 ‘평등’을 추구하는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적으로 상정되었으며 오직 시장 질서와 경쟁만이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고유한 주요 속성 하나가 드러난다. 내부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법을 이용한 지배’, 즉 법치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법에 대한 선호는 반대파를 향한 폭력으로도 드러난다. 오늘날 지배 세력은―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반대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력과 사법 당국을 이용한다. 2018년 프랑스 정부의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탄압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국가는 ‘안전’을 이유로 반대 세력을 억압할 법을 제정하고,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 즉 반민주주의적 면모에 주목한다. 미제스는 “대중은 사유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인류를 지도하는 일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고, 하이에크는 민주주의를 ‘사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간주했다. 이들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정도나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인민주권’을 부정하며 인민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인민(대중)은 만족을 얻을수록 평등의 이름으로 더 많은 요구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때로는 독재를 이용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전은 ‘자유’를 앞세워 모든 ‘평등’ 요구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시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톺는 것에 관하여

    어느 세력이든 자기편만 극단적으로 챙기는 모습, 반대 세력에 대한 철저한 무시 혹은 탄압,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미끄러져 버린 법치주의, 갈라치기, 갈등, 분열, 혐오…. 눈 밝은 독자라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자, 저자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세 키워드가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묘하게 포개어지는 지점을 포착해냈을 것이다.

    다만 『내전, 대중 혐오, 법치』로 표면적인 정치 상황을 읽어내는 데 그친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계보와 역사적 사건을 샅샅이 분석하여 이 사상이 경제·정치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문화에까지 걸친 전 지구적 질서가 된 과정을 추적한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법과 노동을 재조직해 새로운 노동 규범을 강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방 혹은 자기실현이라는 매력적인 말로 포장하여 수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지, “여성의 권리를 문제 삼고, 동성 결혼을 반대하도록 대중을 선동”하는 ‘도덕적 십자군’의 형태를 취하는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기업가 정신 즉 ‘자기 경영자’ 모델을 내면화하도록 하는지, “어떻게 대립의 경계를 이동시켜 인구의 일부가 권위주의를 지지하게 만드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이 분석을 따른다면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경향이나 소수자를 향한 소위 ‘역차별’ 논란, 약자 혐오, ‘갓생’으로 표상되는 과도한 자기계발 담론, 극명하게 양분되는 정치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변형 혹은 발현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사건은 IMF 외환위기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계보를 근본에서부터 통찰한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체현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귀중한 렌즈가 될 수 있다.

    모든 대안을 봉쇄한 것으로 보이는 이 폭력적인 체제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전 지구적 질서가 될 수 있었을까? 우파는 물론 좌파 역시 신자유주의 통치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좌파 버전으로 선택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문화적, 도덕적 대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역사적 투쟁을 외면해왔”으며, “신자유주의가 집권하고, 사회를 변형시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은 우파의 반동적 버전과 좌파의 현대주의적 버전으로 이중화된 덕분에 가능했다”라는 저자들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러한 두 분파의 가치 전쟁 속에서 대중은 분열하고, 모든 대안은 가로막힌다. 신자유주의의 내전 전략은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and Rule)’라는 격언을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이항 대립에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내전 전략을 분쇄해야 한다. 저자들은 “오직 인민의 혁명만이, 시민들에 의해 전개되고 통제되는 혁명만이 신자유주의적 내전 전략에 대항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며 신자유주의가 짓밟고자 하는 것, 즉 평등과 민주주의만이 그 지배에서 벗어날 해법임을 분명히 제시한다.

    사회학자 장석준은 해제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결코 저절로 저물지 않는다”라며, “그에 필적할 또 다른 문명적 기획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장기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논설한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적인 통치성을 기원에서부터 꿰뚫는 이 책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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