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은행이 미국 거냐, 국제적 개혁 운동
    By
        2007년 06월 01일 11:51 오전

    Print Friendly

    지난 5월 중순 폴 울포위츠가 세계은행 총재직에서 사퇴를 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세계은행은 물론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전통적인 역할과 특히 그 기관들의 고위직 인사 선출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물론 세계무역기구를 통틀어 거론하면서 각 기관들의 전통적인 역할이 도처에서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고 공박하는 기사를 실은 데 이어(뉴욕 타임즈 5월 24일자 기사), 파이낸셜 타임즈도 “총재직 후보를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선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현 부시 행정부가 로버트 죌릭(Robert Zoellick) 전 미 국무부 차관을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 5월 28일자 기사).

       
     
     

    원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재건하고 안정된 통화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국제연합 주관 국제회의의 협정문을 기초로 각각 이듬해 4월과 12월 설립된 이후, 양 기관은 전후 유럽의 경제적 부흥과 원활한 국제금융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차관 및 금융 지원 등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이들 브레튼우즈 기관들이, 설립 이후 지금까지 통용되어 오고 있는 고위직 인사 임명 관행을 무기로, 애초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강대국의 기관 투자가 집단과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전개되고 있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 역할 – 잘못된 처방, 과도한 희생

    우선 탈냉전 이후 통화기금의 역할과 관련된 일련의 근본적인 비판이 전개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동아시아 외환위기였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이 ‘구조조정’과 ‘안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강요했던 일련의 잘못된 정책 처방에 놓여져 있다.

    우선, 주기적인 외채위기로 인해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경제 내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던 라틴 아메리카 주요 나라들과는 달리, 외환위기 직전 동아시아 각국의 거시경제적 상황은 양호한 편이었다.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수준도 평균 3~4%에 불과했고, 무역수지 적자 폭도 지역 평균 5~6% 정도에 머무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각국이 외채위기 이전 평균 20% 이상에 달하는 재정 및 무역적자를 경험하고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극심한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던 상황과 비교한다면 거의 무의미한 수치이다.

    더불어 외환위기를 경험한 동아시아 나라들과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 국가들을 구분 짓는 또 다른 차이는 동아시아의 경우 해외로부터 단기 금융자본을 빌렸던 당사자가 정부나 공적 기관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을 포함한 민간 경제 행위 주체였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차원의 금융시장 개방과정이 나라별로 약간 상이하고, 국내 은행들이 민간 산업자본의 단기 해외 자본 차입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중계 행위를 벌였는지, 그리고 이렇게 단기적으로 차입된 자금이 어떤 사업 영역에 어떻게 투자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아시아 각국별로 약간의 상이한 양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민간 경제 주체, 특히 산업 자본가들의 과도한 단기 차입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외환위기 국가들은, 방만한 정부 재정 적자와 한도를 넘은 무역 적자를 개선하고, 이와 동시에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채무위기 국가들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던 정책들과는 전혀 다른 외환위기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그것은 국제통화기금이 강요했던 ‘안정화’ 정책, 즉 해외 금융 자본의 신뢰를 확보한다는 미명하게 국내 이자율을 높이고,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개별 비금융 기업뿐만 아니라 은행산업 영역에 급속하게 강요하며, 이와 동시에 정부 재정 지출 규모를 급격하게 축소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전적인 무지와 정책 집행 결과에 대한 무책임성을 무기로, 라틴 아메리카의 한두 나라에서 그것도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까 말까 했던 ‘안정화’ 정책을 아시아 각국에 무매개적으로 강요했던 것, 그러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역내 정부 차원의 규제와 금융 및 비금융 산업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를 폐지하여 해외 금융자본가들의 잠재적 이익을 극대화시켰던 것이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이 긴급 금융지원을 대가로 벌인 일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아시아 경제 그리고 스티글리츠의 조언

    우리가 직접 체험했던 것처럼, 이와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대가는 매우 컸고 고통스러웠다.

    국제통화기금의 정책들은 (1) 공식 실업률은 말할 것도 없고 절대 빈곤률을 급격하게 상승시키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2) 생존을 위해 도시 거주민들이 퇴행적으로 농촌 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으며 (인도네시아, 태국 및 부분적으로 한국) (3) 미약하게나마 잔존하던 중소 규모의 산업적 경제기반을 와해시키면서 급격한 국내총생산의 후퇴를 야기하고 (자본 통제를 단행한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전체 동아시아 외환위기 국가들), 최악의 경우 (4) 인도네시아의 경우처럼 끊임없는 정치적 불안정성과 내전의 상황으로까지 인종 갈등이 비화되도록 국민경제의 상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의 모범생이라는 칭찬 아닌 조롱을 들으며 외환위기 국면에서 조기에 벗어났다고 말해지는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에 의해 강요된 정책들의 부정적 영향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1)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설비 투자율도 외환위기 이전의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 (2) 허깨비 같은 경제성장률조차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3) 국내 노동시장은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56% 이상이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대신 한국 경제 전반을 휘감고 있는 것은, 가까운 장래에는 도저히 정책 방향을 되돌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4) 금융 및 자본시장의 대외 종속과 수직적 통합, 그리고 이것이 야기하는 수많은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의 징후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비판의 선두에 섰던 사람은 동아시아 외환위기 전후 직접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직을 역임하기도 했던 조셉 스티글리츠 현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교수라는 점이다.

    그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궁극적으로는 ‘비대칭정보(asymmetric information)’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자체에 놓여 있고, 동아시아의 경우는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의 맹목적인 신앙과 추종에 입각한 급속한 국내외적 금융 및 자본시장 개방 과정에 놓여 있다고 비판해왔다.

    스티글리츠는 자본 및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정책 과정과 회계 감독 등의 영역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지만, 그와 같은 제도의 부분적인 개선이 단기 이자율과 환율 변동에 따른 시세 차액을 노리고 역내에 투자되는 금융자본과 이들이 야기하는 금융 불안정성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스티글리츠는 해외 자본의 단기화를 줄이고 이렇게 투자된 자본이 생산적인 장기 투자에 기여할 수 있도록 (칠레의 경우에서처럼) (1) 금융 투자 자본을 각국 중앙은행에 일정 기간 동안 예치해 두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2) 해외에서 단기 자금을 차입하는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수준을 조정하여 단기성 해외 차입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일 것을 제안하며, 더 나아가서는 (3)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말레이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금융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개별 국가들에게 부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더불어 (4) 기업 파산법을 대폭 수정하여 역내 정부가 채무 상환 재조정과 부채 탕감 등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여 국내 우량 기업들의 불필요한 연쇄파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비판들은 탈냉전 이후 국제통화기금이 전형적으로 취해왔던 안정화 정책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것들이며, 따라서 국제통화기금의 전통적인 역할과 위상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및 회의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들이다.

    세계은행의 이념적 편향성과 잘못된 대출행태

    한편, 세계은행의 역할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세계은행의 대출이 설립 당시의 목표였던 빈곤 퇴치와 경제부흥이라는 임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가들의 빈곤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차관의 압도적인 다수는 당연히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무상 지원금으로 할당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계은행 차관의 압도적인 금액이 이들 극빈국가들이 아니라 소위 ‘중간 소득 국가들’(middle-income countries)에게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해 기준으로 전체 차관 공여액 가운데 2/3 이상에 상당하는 $ 14 billion 이상의 세계은행 차관이 중국과 인도 그리고 브라질 등에 지급되었다.

    이것은 세계은행이 차관으로 지급된 대출금을 회수할 목적으로 극빈국가들의 빈곤 퇴치를 위해 필요한 차관 지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더불어 전후 세계은행이 공식적인 목표로 내걸었던 조직의 목표와는 달리 차관 지급에 앞서 대외무역개방과 무조건적인 시장 개방을 대외 원조의 중요한 요구조건(conditionality)으로 내걸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해 말 세계은행이 그동안 자체 내의 연구진과 대외 용역을 통해 발주한 연구 논문들의 주제와 연구 방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이 한때 경제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과 하버드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들의 자문과 직간적접인 참여 하에 작성된 ‘세계은행 연구 평가 보고서 1998-2005(World Bank Research Evaluation Report 1998-2005)’는 1998년부터 2005년 사이에 자체 내의 연구보고서와 단행본으로 출간된 총 4,000여 편의 글이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분석한 최초의 평가서였다.

    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성과의 질을 잠시 차치해 둔다면) 같은 기간 동안 세계은행은 세계화와 원조 및 빈곤의 상관 관계, 사회간접자본, 금융과 경제성장의 상관 관계라는 세계은행의 국제적 역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안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극히 편향된 분석 시각과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부분의 보고서들이 (1)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관세감축, 국내 산업 정책의 축소 등을 골자로 한)이 경제성장을 가져다 준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고 있거나 (2)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국가들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대외 원조가 지니는 상이한 경제적 성과를 아무런 경험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계량화된 수혜국 내의 ‘좋은 제도’(good institutions)가 존재하는가 여부를 가지고 평가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3) 경제성장률의 증가가 그에 따른 환경상의 외부효과나 국내적 차원의 분배구조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이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4) 금융시장의 개방과 대외적 통합이 경제발전 단계와 상관없이 무조건 빈곤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세계은행이 이와 같은 이념적 편향성을 고수하면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국제통화기금보다 먼저 철저한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세계은행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고위직 인사 개혁 촉구 서명운동

    이와 관련하여, 최근 호주, 남아프리카 그리고 브라질의 재무장관들이 각각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고위직 인사 선발 방식의 개혁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더불어 영미 학계와 연구소 그리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미국에서 이 서명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단체는 ‘국제금융의 새로운 질서(New Rules for Global Finance)’이다. 이 단체는 발전경제학자, 인권 운동가, 환경 및 노동운동가들은 물론 종교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최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고위직 관료 선출 방식을 개선하자는 취지의 서명운동문을 발표하면서, “폴 볼포위츠로 대변되는 세계은행의 문제는 그가 국제적 차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세계은행의 과제를 대변하기보다는 미국의 특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려고 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미국 행정부가 세계은행 총재를 지명해왔던 낡은 관례는 (1) “선발 절차의 투명성”과 (2) “국적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사를 충원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고위직 인사 선출 방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월 30일 현재 총 558명이 이 서명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이 서명운동에 참가할 수 있다. 이 서명운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하거나 (http://www.new-rules.org/index.htm) 다음의 이메일로 영문 이름과 소속기관을 보내면 된다: jbaker@new-rules.org (예, Moo-Hyun Roh, President, Republic of Korea). 

    아래는 이들이 전개하는 서명운동 취지문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고위직 인사 선발 절차에 대한 개혁을 촉구한다

    지금 현재 세계은행이 직면한 리더십 위기는 세계은행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국제통화기금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 이들 국제기관들이 자체의 목적을 잘 달성하고 건전하게 운영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폴 볼포위츠 문제로 대변되는 세계은행의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그가 국제적인 차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세계은행의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미국의 특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광범위한 인식에서 부분적으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1940년대부터 지속된 고위직 인사 지명과 관련된 비공식적인 관례, 즉 유럽 정부가 국제통화기금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대신 미국 정부는 세계은행의 총재를 지명한다는 비공식적인 관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낡은 관례는 당장 폐지되어야 하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핵심적인 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리더십 선출 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선발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국적에 상관없이 후보들의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선출 방식과 함께, 국제금융기관의 지도자들은 어느 한 나라나 특정 지역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관례가 폐지되지 않는다면, 폴 울포위츠가 사임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은행의 리더십 위기는 결코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고위급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개혁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미국의 현 행정부와 유럽 국가들이 1940년대 이래의 관례가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낡은 유제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새로운 형태의 선출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에 헌신적으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

    * 이 글의 필자 신희영은 현재 미국 뉴욕의 신사회과학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