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와 만남 그리고 이별
    [그림책 이야기]『그레이엄 할아버지께』(크리스턴 에반스 글/ 봄날의곰)
        2024년 03월 01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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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메일도 편지입니다!

    저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입니다. 봄에는 <그림책의 이해>를, 그리고 가을에는 <그림책 스토리 워크숍>을 강의합니다. 그런데 사이버대학교이다 보니 강의도 동영상이나 줌으로 진행됩니다. 전 세계에 사는 학생들을 동영상이나 줌으로 만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교직원들과의 소통도 주로 이메일과 문자로 이루어집니다. 온라인으로 얼굴 한번 보는 일 없이 말입니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사람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박별님(가명) 직원은 제가 녹화한 줌 강의를 보내주면 확인하고 편집해서 강의실에 올리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물론 소통은 이메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별님의 이메일은 한 글자, 한 글자에 친절과 다정한 배려가 가득했습니다. 따뜻한 이메일에 감동한 저는, 언젠가 만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답장도 썼습니다.

    축구 소년 잭슨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 잭슨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집에는 장미를 좋아하는 그레이엄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편지로 아름다운 추억을 들려줍니다.

    그레이엄 할아버지께

    죄송해요. 축구하다가 공이 그만 할아버지 정원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막 열 번째 골을 넣으려던 때였는데요…. 정원의 장미가 무사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드리려고 엄마랑 스콘을 만들었어요. 맛있게 드세요.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해요.

    잭슨 올림

    잭슨에게

    스콘과 사과 편지 고맙구나. 나도 축구를 좋아했단다. 하지만 너처럼 하루에 열 골을 넣은 적은 없었어. 너는 축구를 정말 잘하는구나! 내 장미는 멀쩡하단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와보렴. 새 장미가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하는 것을 보여주마.

    마음을 담아, 그렘이엄 할아버지로부터

    이렇게 잭슨 어린이와 그레이엄 할아버지의 우정이 자라났습니다.

    생일 파티 그리고 이별

    곧이어 그레이엄 할아버지의 생일 파티가 열립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지요. 신기하게도 일주일 뒤에는 잭슨의 생일입니다. 바로 여덟 번째 생일이지요. 과연 그레이엄 할아버지는 몇 살일까요?

    하지만 생일 파티가 끝나고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탄 채, 아주 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잭슨은 멀리서 손 인사를 하지요. 그리고 얼마 뒤엔 어떤 아저씨가 할아버지 집 앞에 ‘팝니다!’라는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그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아끼던 장미를 아무렇지 않게 발로 밟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잭슨은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맛있는 점심 식사 그리고 새로운 만남

    학기가 끝나고 저는 박별님께 연락을 드리고 마침내 점심시간에 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동료 곽달님(가명)과 함께 박별님을 만났습니다. 학교 앞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그림책 수다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롭고 놀라운 일이 이어졌습니다. 곽달님에게서 전화가 온 것입니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분이 저와 이순영 번역가를 만나고 싶다며 연락처를 전해드려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이 서점에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태윤이의 이모님들이었습니다. 태윤이 이모님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순영 대표로부터 그림책을 추천받아 호주에 사는 조카 태윤이에게 선물했습니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태윤이는 그 그림책을 너무나 좋아했고, 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그 그림책을 읽어 주며 행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태윤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함께했던 모든 사람에게 그림책의 즐거움과 행복한 에너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모님들은 그림책과 행복했던 태윤이의 시간과 소중한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편지와 만남과 이별은 추억이 되고

    그레이엄 할아버지와 잭슨의 만남은 축구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잭슨이 찬 공이 그레이엄 할아버지의 정원으로 넘어가면서 인연이 얽힌 것입니다. 하지만 잭슨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레이엄 할아버지와 잭슨의 아름다운 우정은 자라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와 박별님의 만남은 대학교 강의로 시작되었고, 태윤이 이모님과 우리 부부의 만남은 우리가 만든 그림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박별님은 곽달님을, 그리고 곽달님은 태윤이 이모님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박별님의 다정한 이메일은 이 모든 놀라운 인연을 이어준 사랑의 다리였습니다.

    이제는 그레이엄 할아버지도 떠나고, 태윤이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엄 할아버지와 태윤이는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추억이라는 별이 되고 달이 되어 우리의 밤길을 밝혀줍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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