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하고 색다른
    장학금과 인영장학회
    [기고] 이런 장학회가 더 많아지길...
        2024년 02월 22일 03: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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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 포근한 날씨 2. 18 인영장학금 수여식이 의정부에서 개최되었다. 인영장학회는 2015년 의정부시 최인영 당원이 노동당(현 정의당) 시절부터 자신의 사비를 출연하여 시작하였다. 진보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 자녀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장학회다.

    제9회 인영장학회 수상식 기념 사진

    보통 다른 장학회는 자녀의 학업 성적과 품행 등을 기준으로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 수상자로 선정하지만 인영장학금의 수상 자격은 성적과 무관하며 색다른 기준이다.

    우선 수상대상이 ①경기도 지역 중 ·고등학생 ②부모님이 좌파(진보)정당의 당원이어야 하고, ③부모님이 진보정당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여야 한다. 자녀의 기준은 중 고등학생이거나 그에 준하면 된다. 자녀의 학자금 지원이 목적이지만 부모의 조건을 우선적으로 살핀다.

    ‘노동이 아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인간이 인간답게,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겠다는 정신을 고스란히 장학회 정신으로 삼고 진보정당 활동가의 노력과 가치를 높이 칭찬하며 자녀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주고 귀감(龜鑑)으로 삼고자 합니다.’ 리플렛에 담긴 인영장학회의 정신이다.

    “진보정당 활동가, 당신을 칭찬합니다”

    학습지 노동자 최인영 장학회장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집시법으로 구속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한 586세대이다. 민주주의와 역사 발전에 헌신했던 그녀가 자신보다 다른 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이런 장학회를 시작한 것이다.

    인영장학회 최인영 회장

    2021년 ‘최인영장학회’에서 ‘인영장학회’로 명칭을 바꾸면서 뜻이 맞는 지역의 동지들의 기금 모금에 동참하고, 장학회의 정신에 공감하는 분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수상자도 매년 늘려가고 있다.

    “백기완 선생님 3주년 기일이 엊그제 2. 15 이었습니다. 다들 직간접으로 백기완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을것입니다. 약식으로 선생님과 선배 열사 동지들을 생각하며 민중의례로 시작합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그렇게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의미를 새기면서 시작된 인영장학회 아홉 번째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금년에는 5명(정의당 2, 노동당2, 특별장학생1)의 활동가 당원들의 자녀에게 수상했다.

    수상자의 부모 당원들 면면을 간략히 짚어보면, 비정규 지회 노조 활동가로 475일의 파업을 이끌고, 공공의료 운동에 매진하는 당원, 척박한 지역에서 지역위원회 진보정당 깃발을 들고 희생해온 당협위원장, 노동조합투쟁과 경기북부 노동인권과 노동공제 활동에 투신해온 분,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집중탄압에 굴하지 않고 노동권 보호에 투신하고 있는 당원, 접경지역 평화연대운동과 지역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당원 등 적게는 10년 내외부터 수십년 현장 속에서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세상에 헌신해온 분들이다. 장학증서를 읽어가면서 고통의 시간 꿋꿋하게 살아온 동지들의 삶이 고스란히 읽혀서 가슴이 울컥했다.

    장학회 출발의 동기가 뭔지 묻자 최인영 장학회장이 답한다. “엄마 아빠가 진보정당운동과 노동 환경 인권 사회 활동하느라 바쁘게 살았지만 막상 자녀들이 엄마 아빠가 어떤 일을 했는지, 부모님의 활동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활동가 동지들을 칭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이어지는 답변은 좀더 현실적이다.

    “실상 저를 포함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자녀들에게 소홀히 했을 거예요. 진보운동 하느라 비울 수밖에 없었던 빈 시간들, 자녀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그렇게 힘써온 동지들께 감사하다고 누군가는 칭찬해주었으면 싶었어요.” 실제 장학금을 수상한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자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아빠가 이제는 일찍 들어오고 술도 조금 덜 마셨으면 좋겠어요” 올해 수상소감에서 수상자 자녀가 참석자들을 웃음 짓게 한 말이다. 바쁘게 살면서 아빠가 뭘하는지도 모르고 매일 늦게 들어오는 모습이 싫었지만 오늘은 좀 이해가 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장학회 수여식 참여자들

    “인영장학회 관련된 자료들을 보고 나서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정말 고민이 됐습니다. 부끄럽고 부족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 비정규직 지부 파업은 475일 끝에 타결됐습니다. 그 속에서도 저는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조직적으로 저와 지금의 남편을 포함한 몇 명이 배제된 채 정규직 전환이 타결됐습니다. 저희의 투쟁에 결합한 활동가들은 보석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로또’와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사진 속에, 기사에 한 줄 안 나오는 ‘훌륭한’ 활동가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또 세상에는 감춰졌는지 보았습니다.” 지금은 의료 공공성 확대 운동을 하고 있는 정○열 당원의 수상소감이다.

    “장학금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라 후배 동지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감사하고 연대하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형식의 장학회가 전국 여러곳으로 퍼졌으면 좋겠네요” 장학회 김동열 운영위원의 소감이다.

    20여명의 참석자와 수상자 가족이 함께했던 본 행사가 끝나고 간단한 다과를 겸해 뒷담화를 나누는 시간도 화기애애했다.

    “결혼하고, 육아하고 작은책에서 일하면서, 또 미약하지만 단체활동을 하면서,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최인영 선생님의 [수상자 당선 소식을 알려주면서 하신] 그 말씀 한마디가 이상하게 계속 맴돌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참으로 고무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저도 마음 놓고 저를 칭찬하겠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수상자의 부모 정○열님께서 보내온 SNS 메시지다.

    탈 산업화 세계화의 구호속에 점점 경쟁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학교, 보수적인 교육 이념에 익숙해지는 교육현실, 불평등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점점 더 익명화하고 개별화, 비인간화를 강요당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그런 세상 바꿔보려고 애써온 세월을 알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 10주년 행사는 좀더 의미있게 진행할 것을 기약하며, 다시 새로운 첫발을 뗀다.

    “맨 첫발, 딱 한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벗이여 새날이 올때가지 흔들리지 말라”
    -백기완 선생님의 ‘묏비나리’에서-

    장학금 수여 장면
    필자소개
    의정부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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