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선거연합을 강력히 반대한다"
    [기고] 보수양당의 '하청정당'으로 귀결될 뿐
        2024년 02월 16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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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총선이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 있기에 긴 시간이고, 그동안 축적된 민의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보면 짧은 시간이다.

    이재명 대표가 연동형비례대표제로 마음을 굳히면서 신당들의 창당과 당 사이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와중에 참여연대와 민변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원로들은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합을 도모하면서 그 추진체로 ‘정치개혁과 연합정치를 위한 시민회의(연합정치시민회의)’를 구성하였다. 민주당은 녹색정의당, 진보당, 새진보연합 등 원내 진보 성향 3개 정당과 연합정치시민회의에 선거연합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가 ‘반윤 전선’을 형성하여 정책, 지역구, 비례대표에서 연합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9일에 전국비상시국회의와 한국진보연대의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 학계 대표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참석하여 홀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그날만큼은 유보된 안건인데 그 후에 다시 재추진되었다. 그때 말하였던 의견에 약간 첨언을 하여 이 지면에 올린다.

    촛불 이후에도 왜 한국 사회에 변화가 없고 오히려 윤석열 정권의 퇴행을 야기하였는가? 그것은 크게 네 가지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온존하고, 자본-국가-보수언론-사법부-종교권력층-전문가집단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카르텔이 조금도 균열되지 않았으며, 보수양당체제가 공고하고, 문재인 정권이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불평등의 극대화, 노동의 유연화와 탄압, 공공영역의 사영화, 금융자본의 수탈, 자본의 야만을 제한하던 온갖 규제의 철폐, 공론장의 붕괴, 다양한 경제 영역의 지대(rent)화를 야기하였다. 기득권 카르텔은 서민과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와 수탈을 합법화하고 제도화하면서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였는데, 민주당도 이의 한 축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보수양당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서민과 노동자, 농민, 빈민, 사회적 약자의 불만과 요청을 정치적으로 수렴하기는커녕 외면하거나 배제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촛불이 요청한 적폐청산의 핵심인 재벌과 미국에 종속적이었고, 사회대개혁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조국 사태와 부동산 사태 등으로 30년 집권은커녕 5년 만에 일개 검사와 국민의 힘에 정권을 내주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성찰과 쇄신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까지 안고 있다. 이 바람에 지금 국민의 70% 가량이 윤석열 대통령을 반대하는 구도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거의 70%에 근접한다.

    계급모순에 분단모순이 주요모순으로 겹쳐지고 민주당이 진보의 탈을 쓰고 있는 현실이기에 이 땅에서 진보정당이나 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민주당은 태생부터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로 한정해도 기득권의 이익에 충실한 부르주아 정당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이 요청한 대로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단행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파병,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을 진보진영의 반대에도 강력히 추진하였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시늉만 있었을 뿐이었고 불평등은 박근혜 정권 때보다 악화하였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의석 몇 자리의 유혹에 이끌려 민주당과 야합한다면 모두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함은 물론, 스스로 실질적인 위성정당의 구실을 하여 제 살을 깎아먹는 우매한 짓을 반복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9.7%의 지지를 얻고도 의석의 2%만 배 분받은 것을 상기해야 한다. 설혹 진보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보의 새로운 출발과 대통합의 기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민주당과 야합한다면 진보정당은 보수양당의 하청정당으로 귀속될 것이고 한국의 진보운동은 오랜 동안 괴멸 상태에 놓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 한국사회는 불평등의 극대화, 기후위기, 패권의 변화와 전쟁의 위기, 3차/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 등 복합위기를 가장 첨예하게 맞고 있다. 불평등은 미국 다음으로 심하고 멕시코 다음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미 기후 깡패국에 올랐는데 이 정권에서는 아예 퇴행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과는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로봇 대체는 1,012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국제로봇연맹 2024년 1월 12일) 자본의 언론 지배, 확증편향, 반향실효과로 공론장이 붕괴된 상황에서 이 정권은 검찰독재와 시행통치를 통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평화협정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사회공유소득, 탄소세, 로봇세 등의 진보적인 정책을 정거장으로 삼아 한 걸음이라도 새로운 사회를 향하여 전진하지 못하면 우리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이처럼 시대적 상황이 민주당 식의 자유주의를 넘어 훨씬 더 진보적인 의제와 정책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와 기득권 카르텔 해체와 자주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지향하는 운동과 정당, 정책만이 진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파국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그나마 이 땅의 진보적 성과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구속과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하여 얻은 것이다.

    전국비상시국회의와 한국진보연대의 원로, 시민사회단체의 몇몇 인사들이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에 기여하기는 하였지만 이들 진보의 성과들을 대신하거나 대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원로와 대다수 시민사회단체의 권위와 힘으로 진보정당, 그 정책과 의제를 보수양당체제에 귀속시키는 것은 피를 흘려 이룩한 진보운동의 성과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을 반대하는 국민이 70%에 이르는 좋은 구도에서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질 수도 있다. 반면에 민주당이 쇄신을 하고 무상급식처럼 사회공유소득 등 획기적인 정책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면 압승하여 윤석열을 레임덕에 놓이게 하거나 몰아낼 수 있다. 원로들이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으로 가서 당의 쇄신과 정책대결을 압박해야 한다. 더 나아가 원로와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인사들이 진정으로 서민과 노동자, 농민, 빈민, 사회적 약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고 불평등, 기후위기,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는 큰길로 나서주시기를 간절하게 요청한다. 진보정당 또한 민주당과 야합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담대하게 연합하여 시대정신을 담은 정책을 내걸고 국민의 변화와 지지를 요청해야 한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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