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뼈에는 색깔도 거짓도 없다"
    [책]『본 헌터』(고경태/ 한겨레출판)
        2024년 02월 03일 03:1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2023년 3월,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정체불명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양손이 ‘삐삐선(군용 전화선)’으로 묶인 채 일렬로 엎어져 쓰러진 유골들. 그 앞으로 역시 양손이 결박된 한 유골이 쪼그려 앉아 있다, 마치 잠에 든 듯한 모양새로. 그에게 ‘A4-5’라는 식별번호가 겨우 붙여진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본 헌터》는 뼈의 증언을 좇는 집념의 인류학자 선주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이 70여 년 세월을 초월해 만나는 스펙터클한 ‘유골 추적기’이자 생생한 역사 논픽션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한겨레에서 30여 년간 베테랑 기자로 일해온 고경태는 꾸준히 폭력과 억압의 흔적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전작에서 특히 베트남전쟁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면밀히 다룬 저자는 이번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과 국가폭력 피해자의 상흔을 심도 있게 다룬다.

    2023년 3월 아산에서 유골이 발굴된 직후, 한 주에도 몇 차례씩 아산의 발굴 현장과 청주에 위치한 선주의 연구소를 찾아 취재했다. 그렇게 〈한겨레〉에 6개월 동안 폭발적으로 써내려간 기획기사 ‘본 헌터’를 개고하고,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연표·이름 대조표·역사사회학자의 발문을 추가하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을 보강해 책으로 선보인다.

    이 책은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교차식 구성’을 따르며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의 참상과 땅속에 묻힌 진실을 추적한다. 먼저, 하나의 축은 민간인 학살사건 이야기로, 유골·생존 피해자·유가족·유품·관련 주변인·가해자 등 여러 화자의 시점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학살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현해낸다. 다른 하나는 인골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으로 한평생 유해가 남긴 진실을 좇아온 실존인물 ‘뼈 인류학자’ 선주의 이야기이다.

    영문도 모른 채 죽임 당한 이들과 집념의 인류학자,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던 두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결국 아산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만나게 된다. 발문을 집필한 역사사회학자 강성현이 언급한 바와 같이, 두 이야기가 교차하는 “일종의 ‘다크 투어’ 방식으로 죽음의 이유와 특징을 탐문”한다는 점은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여기에 생생한 현장 사진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에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국전쟁 취재의 축은 충남 아산이었다. 처음 그 작은 도시에서 1000명 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아산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한민국 지역 중에 전쟁과 학살의 광풍을 비껴간 곳이 거의 없다. 그 지명 뒤에 모두 ‘대학살’이라는 말을 붙여도 모자람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이고 죽었다는 말인가. _서문 중에서, 5~6쪽.

    ‘뼈에는 색깔도, 거짓도 없다’
    교차하는 두 시선을 따라 드러나는 민간인 학살의 은폐된 진실

    “나는 앉아 있었다. 얼마 동안 앉아 있었냐면, (중략) 63만 4560시간 이상 앉아 있었던 셈이다.”(15쪽) 이 책은 쪼그려 앉은 채로 발굴된 유골, A4-5의 건조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혹시 함께 나온 유품을 살피면 이 유골들의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삐삐선과 탄피 사이로 ‘중’ 자가 새겨진 단추들이 여럿 나온다. 중학생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왜 산속에 줄줄이 끌려와 죽었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글 〈사람을 할 결심〉은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었다.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들이 연도에 도열해 축하 박수를 쳐주는 기분이었다.”(21쪽)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앞둔 청년의 열망이 꿈틀거리다 못해 요동친다. 그의 부푼 마음처럼, 문장 곳곳이 생명력과 사랑으로 가득 차오른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인류학자 선주의 이야기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한 두 이야기는 언뜻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인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두 서사는 오로지 ‘뼈의 증언’을 따라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의 궤를 그리며 아이러니하게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 속 끔찍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구체적으로, 충남 아산 성재산 기슭에서 발굴된 유해 A4-5의 독백으로 시작한 아산의 이야기는,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계된 다양한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진행된다. 1부에서, A4-5 그리고 그와 함께 발굴된 ‘A5-4’. 이보다 앞선 1995년에 인근에서 비슷한 정체불명의 유골을 발견했던 건축 현장 담당자 인욱, 성재산으로부터 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지역 새지기의 유골 ‘새지기2-1’과 ‘새지기2-2’는 공통적으로 발굴 당시의 현장감과 유골 상태로부터 알 수 있는 학살사건의 진상들을 들려준다.

    이어 1부의 글 〈소리 없는 도망〉 〈사색 없이 사형, 사형〉의 화자이자 한국전쟁기 당시 판사였던 ‘병진’과 〈나는 프락치가 됐다〉의 화자 ‘용길’이 부역자 재판 전후의 맥락을 이야기하며 민간인 학살사건의 정치·사회적 맥락이 조금씩 짜맞춰진다. 더불어 아산의 설화산에서 머리카락에 꽂힌 채 발굴된 은비녀들,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주화’, 유가족 ‘장호’의 이야기는 민간인 학살이 부역자 개인을 처단하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넘어, 세대를 이어 일가족 전체를 집요하게 말살시키는 집단적 학살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1부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실은 2부로 넘어가, 유가족·생존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의 시선을 거치며 더 구체화되고 다면적으로 서술된다.

    한편, 결혼과 유학을 앞두고 열의로 가득 찼던 선주의 이야기는, 1부의 글 〈끈기의 합기도 소년〉 〈슬기슬기 손 선생〉 〈모란, 폐결핵, 사투〉로 이어지며 유년기·청년기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끈질기고 호기심이 강한 선주의 성정을 보여준다. 〈버클리의 두 얼굴〉은 본격적으로 선주가 한국의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미국 버클리대학 박사과정에서 체질인류학을 공부하며 인류학자로서 각양각색의 뼈들을 접하는 이야기로의 전환점이 된다. 〈뼈들에 압도당하다〉의 점말 동굴 동물 뼈, 〈아치섬에서 온 손님〉의 인골, 〈인류의 조상, 루시〉 〈흥수아이에 대한 추리〉의 학술적 가치가 높은 인골, 〈장 선생 뼈의 증언〉의 의문사한 장 선생 머리뼈 등을 다루며 선주는 점차 뼈에 남은 흔적·마모되고 손상된 정도·뼈의 크기와 길이 등의 정보를 살펴 진실을 도출해내는 ‘본 헌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국가 폭력과 집단 죽음의 현장으로 흘러간 선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선주를 분주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진실을 알고 싶다’는 학문적 호기심이었다. 선주의 눈에, 뼈에는 색깔도, 거짓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돋보였던 집요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선주의 이야기는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일본의 강제징용자 유해 발굴 현장과 전국 방방곡곡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평생 뼈의 증언을 좇아온 선주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A4-5와 마주하게 된다.

    선주는 늘 생각했다. ‘나는 아치섬 인골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 아치섬 인골이 없었다면….’ 그때 사람 뼈에 욕심을 갖고 경계를 넘어서는, 어쩌면 무리한 호기심의 광폭 질주가 선주의 오늘을 만들었다. 선주는 가끔 아치섬 인골 논문에 박힌 명백한 오류를 되새기기도 했다. 어금니에 홈처럼 난 선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논문을 쓸 땐 모래롤 양치질을 했다고 생각했다. 버클리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치섬 인골은 6세 전에 고열을 앓았던 거다. 영양 상태가 안 좋아 남은 흔적이었다. _103쪽.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이고 죽었다는 말인가”
    침통함을 넘어, 한국 사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죽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집을 차지했다. (중략) 인문 위원장을 지냈다 하여, 인민위원회를 위해 밥을 해줬다 하여, 아들이 좌익 운동을 한다고 소문이 났다 하여, 인민군 점령기에 완장을 차고 양반을 모욕했다 하여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겼다. 죽거나 쫓겨난 사람 집에 가해자 쪽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_80~81쪽.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부역자 처벌’이라는 명분하에 국가가 암묵적으로 승인한 사형(私刑)이었다는 점에서 그 양상이 매우 독특하다. 민간인 학살은 일차적으로 군·경찰의 지시와 집행으로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작전과 공식 명령계통으로 하달되어 조직적으로 ‘빨갱이’를 색출하고 부역자를 처형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사적 복수와 욕망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국가는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군·경은 방임하거나 외려 갈등을 부추겼다.

    “인민군 점령기에 완장을 차고 양반을 모욕했다 하여”(80~81쪽), “동네 목숨 줄을 쥐고 있는 향토방위대 부위원장 김 씨의 눈 밖에 완전히 나버려서”(189쪽), “얼마나 잘 먹었으면 이렇게 두드려 패도 안 죽는지”(80쪽) 질투가 나서, 잔존하던 “지주-소작 계급간 갈등”(366쪽)이 경찰의 부추김으로 불붙어서 사람들이 죽고, 죽고, 죽었다. 개인적 원한을 풀고, 집과 재산을 빼앗기 위한 집단 학살이 시작되니 부역 혐의를 받은 청년·남성뿐 아니라 갓난쟁이부터 아녀자, 노쇠한 부모까지 일가족 전원이 ‘처형’ 대상이었다. 사적인 복수를 위해 거짓 고발과 낙인, 극악무도한 색출과 매카시즘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끔찍한 학살사건으로 귀결됐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죽음의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특히,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아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9·28 수복 이후 국면과 1951년 1·4 후퇴 국면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들의 희생자로 77명의 최종 신원을 확인했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작성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연령 미상 32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 연령은 10세 미만으로, 총 14명이었다. 최소 800여 명이 아산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A4-5가 65만 시간의 기다림 끝에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역사학자 심용환은 이 책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의 존엄을 지키고자 만들어진 책. 침통함을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 한국전쟁은 때로 오늘날 우리와 관련 없는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전쟁기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피해 규모는 여전히 집계 중에 있다. 은폐된 폭력의 역사를 마주하고 집단적 차원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복원할 때, 그렇게 조각나고 파묻힌 것들을 다시 이어붙일 때, 한국 사회는 침통함을 넘어 비로소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증언도 잊히지 않는다. 갓난아기를 업고 일행과 함께 끌려가던 젊은 엄마가 어둠을 틈타 옆 콩밭에 잽싸게 숨었다. 갓난아이가 울면 끝장이었다. 그러나 아기조차 울지 않더라고 했다. 정적, 갓난아이조차 입을 닫게 만든 그 정적은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공포다. (중략)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_179쪽.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