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현재,
    냄비 시위와 쇼크 독트린
    [L/A 칼럼] 밀레이의 일방 독주와 저항의 확산
        2024년 01월 19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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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에 나온 나오미 클라인의 책 <쇼크 독트린>이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권력을 잡은 밀레이 정부는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아르헨티나,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쇼크와 흥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라크 시민들), 위협이 되는 사회의 특정의 부문과 요소들(반미선동을 일삼는 좌파 정치화된 이슬람주의 세력들) 또는 지도부(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이들이 미국에게 암적 요소이므로)에게 공포와 위험을 주고 걷잡을 수 없는 파괴가 일어나게 한다.

    –대 이라크 전쟁의 군사독트린에서 뽑은– 쇼크와 두려움: 신속한 지배를 위해(클라인 2007, 23).

    2003년 당시 대통령이던 아들 부시는 이라크에 전광석화와 같은 선제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자신만만하게 미국의 군함 위에서 ‘승리’의 성명을 발표했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미국의 위세 또는 헤게모니는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여러 지역(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 쇠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라크를 위시한 여러 나라들은 미국이 아닌데, 그걸 착각한 것 같기도 하다.

    작년, 2023. 10.22일 상, 하 양원의 일부를 교체하는 의원선거(총선)가 대선 일차투표와 같이 있었고 과반의 대선 득표자가 없어 2023.11. 19일 결선투표가 있어 56%를 얻은 극우 후보 밀레이가 44%를 얻은 페론주의 세력인 전임 정부의 경제상인 세르히오 마사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총선결과 의회 내 분포도가 제1당은 38%로 좌파, 제2당은 27%로 밀레이 파, 그리고 제3당은 26%로 마크리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우파다.

    하지만, 밀레이 정부가 의회권력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멋대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등의 ‘쇼크’에 대해, 사회운동세력은 신속하게 저항하고 있다. 마리오 에르난데스에 의하면, 12월 10일 취임했는데 불과 열흘만인 12월 20일, 27일에 ‘냄비 두드리기 시위’(cacerolazo)를 했고 2024년 1월 24일 전국노조인 CGT가 주도하는 총파업을 계획 중이다.

    우리와 달리 이들은 총파업을 하면 보통이 아니다. 특히 수도의 의회 건물 앞의 집회하기에 좋은 넓은광장을 점거하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2001년의 대규모 시위 때, 대부분 태어나지 않았거나 태어났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을 것이다.

    2001년의 시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9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악성 인플레를 잡기 위해 과격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시장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등을 집행하기 시작한 메넴 정부를 떠올려야 한다. 당시 1990년부터 약 3년 동안은 과격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통해 인플레를 잡아 국제적으로 칭송도 받았지만 시장의 과격한 개방, 노동자 구조조정과 급진적인 외국으로부터의 수입급증과 이들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내 산업을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수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1994년부터 전국적으로 피케테로스 운동(실업자들이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타이어를 태우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임)이 번져나갔고 그런 시위의 절정 사태가 바로 “모든 정치인들은 물러가라”고 2001년에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 냄비 두드리기 시위였다. 이 당시 주민총회운동과 물물교환을 통한 위기 극복을 위한 연대도 실천했다. 연배가 좀 되는 사람들은 그 시대(특히 경제적으로 참혹했던 시대와 동시에 적극적인 저항을 실천하던)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밀레이 정부는 왜 이렇게 큰 쇼크의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밀레이 개인의 심리적 일탈이나 또는 이데올로기적 변덕은 아닐 것이다. 아마 글로벌 노스 전체가 현재의 과도기적 혼란기에 어떤 초조함, 또는 불안감(세계 체제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신자유주의의 말기적)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현재 아르헨티나 우파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약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이미 조금 사회운동세력의 저항에 밀려 전략적으로 후퇴하는 기미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한번 터트려본 것일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견적이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알베르토 나드라(Alberto Nadra)에 의하면, 밀레이를 비롯한 정부의 고위직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라에 돈이 없다고 강조한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되는 일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구잡이로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는 일 등이다. 그리하여 국내와 외국계 대기업들의 부자들에게 이익이 가도록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이미 취임하기 전인 지난달부터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가격을 약 30% 인상시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해져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미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비는 인상되었고 전기, 가스등의 인상(3월에 시행 예상)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최저임금이고 뭐고 깡그리 엎어버리고 있다. 전임정부가 결정했던 연금소득자들에 대한 은행의 대출 완화정책(정확히는 모르겟지만 연금 수준이 낮아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이자를 낮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음)도 억제하는 등 아주 강한 소비의 위축이 닥쳐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알베르토 모야(Alberto Moya)에 의하면 페론주의자인 키칠로프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은 밀레이의 입법부 무시 정책에 대해 반대하여 야당과의 합의를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밀레이는 전광석화와 같이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들(경제의 규제,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국가를 철수시키는)을 마구 내쏟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사회운동세력도 만만치 않아 대규모 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냄비 두드리기 시위”(cacelorazo)이다. 그리고 해외에서도 강한 도덕적 지지를 받는 ‘5월광장의 어머니들’도 나이가 들었지만 힘든 몸을 일으키고 있다.

    밀레이의 다음 대응이 궁금하다. 정치적으로 볼 때, 밀레이는 의회 내의 순수 자신의 세력은 하원 총 257명중 39명으로 반대파인 페론주의 세력의 108명에 비해 약하지만 우파인 마크리의 세력 93명과 연합하면 좌파를 이긴다. 아마 대중(무정형의 흔들리는)이 자신의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계산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람 아로니안(Aram Aharonian)에 의하면, 밀레이가 대통령령에 의해 의회입법권을 대체하려는 추진이 잘 안 되고 있고 시장(마켓)도 이에 대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밀레이는 현재 국민 투표를 통해 난관을 돌파하려고 자신의 참모들에게 준비를 지시했다고 한다.

    최근 밀레이는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으로 사회주의를 강요하는 세력이 있고 서구가 위험하다고 연설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어떤 세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앞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사회운동세력의 저항 외에, 과연 사법부와 입법부가 정부여당의 지시대로 움직일지 어떨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대중의 기억이 과거 2001년의 역사를 두고 어떻게 움직일지도 궁금하다. 결국 좌파도 세계체제와 연동되어 아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경제위기의 딜레마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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